종로구 도시디자인과 ' 대한민국 보행로 1번지 종로구를 가다'

2020.12.04 10:06:18

종로구는 근시안적인 생각으로 분별 없이 마구 설치해온 공공시설물을 걷어내고 아름답고 쾌적한 인간친화적인 도시를 만들어내고 있다.

 

 

장애인은 물론 보행자가 마음껏 편하게 걸을 수 있는 보행로를 갖춘 곳이 진정한 선진국이다. 한국의 보행로 수준은 선진국일까? 답은 No이다. 보도블록은 울퉁불퉁하고 상인들은 채소, 오토바이, 에어라이트 광고물 등을 인도에 비치한다. 이런 물건 때문에 보행자는 차도로 가야 한다.

 

인도 위의 주차는 어떠한가? 그 정도가 지나쳐 민망할 정도이다. 휠체어는 물론 시각장애인은 도저히 지나갈 수 없다. 사진 1은 어느 도시의 인도를 찍은 것인데 상점의 간판, 전력 배전함, 차량이 완전 인도를 점하고 있어 보행자가 힘겹게 피해가고 있다. 오른쪽에 있는 화단도 불필요하다.

 

 

종로구를 ‘정치1번지’라고들 하는데, ‘대한민국 보행로 1번지’가 더 올바른 메타포이다.

종로구는 2015년 12월 31일 ‘도시비우기사업 조례’를 제정해 보행권 되찾기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조례 제1조는 “주민이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쾌적한 보행환경을 조성해 주민의 보행권을 보장하고 도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도시비우기 사업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을 분석하면 조례의 제정 목적은 쾌적한 보행환경 조성이고, 수단은 도시 비우기 사업임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지자체가 도시디자인은 무엇을 만들어 걸고 설치하고 칠하는 것으로 잘못 알아왔다. 도시디자인 공공시설물의 편익과 실용성보다도 예술성을 더 중시하고 반영해온 것이 사실이다.

 

2011년 광주비엔날레 표어인 ‘도가도비상도(圖可圖非常圖)’가 공공디자인의 야전교범이라는 것이 필자의 확고한 신념이다. 이 말은 ‘디자인이 디자인이면 디자인이 아니다’라는 뜻으로 노자 도덕경의 문구인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에서 모티브를 삼아 “디자인이 단순히 감상하고 미적인 요소에만 치중하면 참된 디자인이 아니며, 삶의 터전을 중심으로 사람과 장소의 관계를 대상으로 디자인이 만들어질 때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아름답고 쾌적하며 인간친화적인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종로구 사례처럼 지금까지 근시안적인 생각으로 분별 없이 마구 설치해온 공공시설물을 걷어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진2는 인도 위에 왜 이런 시설물을 설치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차량을 주차하지 못하게 하고 보행자를 보호하기 위함으로 보이는데 오히려 이러한 시설물이 보행하는 데 장애가 돼 사람이 차도를 걷는 아이러니가 연출된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종로구의 사례를 보자. 사진3과 같이 보도와 횡단보도 경계 지점(curb)에 소화전과 배전함이 나란히 설치돼 있다. 보행자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이 행위는 말의 차안대(blinder on a horse)를 눈에 건 사람이 아니고는 도저히 이뤄질 수 없는 일이다. 종로구는 보행자의 편의를 위해 사진4와 같이 이 2개 시설을 지중화했다.

 

사진3. 전력 배전함 및 소화전 지중화 철거 전                사진4. 전력 배전함 및 소화전 지중화 철거 후  


또 다른 사례를 보자. 사진5는 인도 중앙에 설치된 가로등 분전함이다. 보행자의 통행에 지장이 있을 뿐 아니라 스몸비, 술에 취한 사람들, 시각장애인들이 부딪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특히 야간에는 더 위험하다). 장애물을 알리는 점자블록조차 없다. 종로구는 사진6과 같이 지중화했다. 과감하고 획기적인 개선이었다.

 

사진 5. 가로등 분전함 전                                  사진 6. 가로등 분전함 지중화 후  

 

종로구는 조례 개정 이후 지금까지 6년간 불필요하거나 기능을 상실한 도시시설물을 철거하는 ‘비우기’ 5,283건, 유사한 기능을 가진 도시시설물을 통합하는 ‘줄이기’ 260건, 도시미관을 저해하는 노후·훼손된 시설물 정비하는 ‘정리하기’ 15,839건 등의 실적을 올렸다.

 

이런 사업은 한전, 군부대, 소방서 등 유관기관과의 협조가 절대적이다. 종로구는 유관기관과의 협력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도시비우기 협의회’와 ‘실무협의회’를 구성 운영했다. ‘실무협의회’ 개최는 100회에 이른다. 사진7과 사진8은 오래전 청와대를 경호한다는 명분으로 군부대가 연막탄·조명탄 지주를 다수 설치했는데 골목길 안에 있는 것 하나를 군부대와 협의해 제거한 사례이다. 종로구는 2014년부터 2020년까지 7년 연속 ‘대한민국도시대상’도 수상했다.

 

도시시설물의 가장 큰 문제는 설치 후 곧 필요가 없어지는 지속성의 한계, 저효용성, 자연과 인간과의 비관계성이다. 일단 시설물을 구축하면 처리하기가 매우 곤란하다. 애물단지가 되는 것이다. 종로구는 ‘비우기’뿐만 아니라 신규 시설물을 사전 철저한 심의를 거쳐 설치함으로써 6억 2,983만 원을 절감했다. 종로구는 욕망보다 절제가 더 우선하는 가치임을 정책과 실천으로 보여줬다. 이러한 성과의 일등 공신은 김영종종로구청장의 강력한 의지와 3선 경력이었다. 톱다운(top-down) 접근 방식과 장기간이 소요되는 정책에서 정책 결정자, 즉 톱 플래너(top planner)가 10여 년을 재직했기에 가능했다. 좋은 정책이 좋은 주인을 만난 것이다. 구청장의 의지를 뒷받침하고 말없이 사무실과 현장을 오가며 일해준 공무원과 유관기관 직원들도 영웅(unsung hero)들이다.


종로는 필자가 학창 시절과 초임 공무원 재직 시 청운의 뜻을 품고 대학 입시와 외국 유학 준비를 위해 자주 걷던 곳이다. 영화 마니아로서 피카디리 극장, 단성사 극장도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찾아갔다. 지금도 가끔 종로를 간다. 지금까지도 종로의 지하를 힘차게 달리는 1호선 지하철에 큰 빚을 지고 있다. 탑골공원에 모여 있는 노인들을 보아왔는데, 필자도 어느덧 그 나이가 돼가고 있다.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에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인왕산 아랫길을 걸어봐야겠다. 애창곡 김종환의 ‘종로에서’를 부르며. 흰 눈이 내리면 더욱 좋고.

 

문의 사항은 도시디자인과 02-2148-2722

이세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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