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U 해외

완벽한 수도 이전은 없다 주요국 수도 이전의 득과 실

URL복사

여권에서 행정수도 세종시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주요국의 수도 이전 역사와 사례를 살펴본다.

 

장기간 논의와 치밀한 계획 필요 
수도를 이전했거나 추진 중인 다른 나라의 사례는 수도 이전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오랜 기간 수도에 집중된 행정 기능과 자본을 인위적으로 이동하기가 쉽지 않고, 국토의 균형 발전을 꾀하고 권력의 과도한 집중을 방지한다는 수도 이전의 긍정적 측면보다 부작용이 더 클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의 한 전문가는 “새로 계획된 도시가 성공하려면 최소 100년이 걸린다. 1790년 미국의 수도가 된 워싱턴도 20세기가 다 돼서야 제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터키 앙카라는 1923년 수도 이전 후 90년이 지났지만, 명목상 수도일 뿐이다. 지리 사회적·경제적 면에서 이스탄불이 수도로서 최적이었지만, 정치적 목적으로 이전한 앙카라는 정치 행정적 수도의 기능만을 유지하고 있다. 앙카라는 도시계획을 네 차례나 수정하며 개발에 시행착오를 겪었고 주택난, 상수도 보급 체계 부족, 난개발 등으로 아직까지 후유증을 앓는다. 수도 이전이 장기간에 걸친 치밀한 계획과 비전 없이 정치적·군사적 목적에 따라 진행될 때 그 부작용은 엄청난 기회비용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터키의 사례에서 알 수 있다.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는 자족 기능의 취약으로 도시 공동화 현상을 극복하지 못했다. 중부 내륙 지역 개발 유도라는 당초 목적은 달성했지만, 도시 지원 기능 및 산업 기능이 여전히 부족했다. 이 때문에 상당수 공무원이 상파울루 등 동부 해안에 거주, 주말엔 도시 공동화 현상이 나타났다. 

 

1927년 캔버라로 수도를 이전한 호주 역시 수도 이전의 성공작은 아니었다. 쾌적한 환경은 갖췄지만 산업 기능이 약해 일자리 창출, 자족성, 발전 가능성에서 한계를 노출했다.

 

독일은 수도 이전 후 극심한 행정 비효율이 문제로 지적된다. 1990년 통일 후 10개 부처는 베를린으로 이전하고 6개 부처는 옛 서독 수도인 본에 남았다. 하지만 공무원들이 부처 간 정책조정 등을 위해 600㎞에 달하는 베를린과 본을 수시로 왕복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수도를 행정수도(프리토리아), 사법수도(블룸폰테인), 입법수도(케이프타운) 3곳으로 분할했다. 신생 국가의 정치적 안정을 최우선 가치로 둬 수도를 나눈 것일 뿐 국가 균형 발전과 경제적 효율성과는 거리가 있다. 


호주 캔버라와 독일 베를린의 사례는 행정수도가 지역사회 계층 간 통합과 국가적 선도성을 잘 표현하며, 정는 교훈을 준다.


독일
독일 의회는 1991년 6월 20일 독일 통일의 마지막 단계로 수도를 본에서 베를린으로 옮기기로 의결했다. 
정확하게는 이보다 앞서 1990년 체결된 통일조약에서 베를린은 이미 독일연방공화국의 수도로 명기됐다. 베를린은 이미 1871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의 수도였다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수도의 기능을 상실했다. 


서독의 수도 본이 독일에서 가장 부유하고 인구가 많은 지역에 있었던 것과 대조적으로 새 수도인 베를린과 주변 지역은 경제적으로 침체하고 인구 밀집도가 낮았다. 독일 의회는 10여 시간이 넘는 토론 끝에 찬성 338표, 반대 320표로 베를린을 수도로 결정했다. 
수도가 베를린으로 원상 회복됐지만, 1949년에서 1990년까지 서독의 임시 수도였던 본에는 여전히 정부 청사가 남아 있다. 


의회 결정 후 수도 이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후속 조치가 뒤따랐다. 총리실, 연방 홍보국, 외무부, 내무부, 재정부, 법무부, 경제기술부, 노동사회부, 교통·건설·도시개발부, 여성·가족·노인·청년부가 베를린에 새로 터를 잡고 식량·농업·소비자보호부, 국방부, 건강부, 환경·자연보호·핵안전부, 교육연구부, 경제협력개발부, 우편통신부 등 나머지 부서는 본에 그대로 남고 베를린에 제2의 부처 사무실을 뒀다. 독일 정부는 본의 지역 침체를 우려해 20개 부처 중 8개 부처를 본에 잔류시켰다. 

 

베를린은 천도 후 새 건물을 신축하는 대신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지속 가능한 환경보호와 정주 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했다. 독일의 사례는 행정의 효율성과 형평성, 경제적 안정 없이 일방적인 천도가 불황과 실업률을 높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독일은 수도 이전 과정에서 다양한 논의와 합리적인 분석,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문제점을 최소화했다. 


수도 이전 후 베를린은 유럽에서 가장 활기찬 정치도시가 됐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유럽을 대표할 도시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베를린이 경기 불황과 높은 실업률, 중앙기관의 분산 배치 후유증으로 수많은 공무원이 본에서 베를린까지 이동해야 하는 비효율의 상징이라고 혹평한다. 

 

호주
호주의 수도 캔버라는 영국으로부터 자치권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국가 통합과 상징성을 부각할 행정수도 건설의 필요성이 제기돼 연방의회는 10여 년의 논란 끝에 1908년 캔버라로 수도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연방 수도를 시드니로 하느냐 멜버른으로 하느냐를 놓고 오랫동안 논의가 이어지다가 새 수도는 시드니에서 160㎞ 이내의 뉴사우스웨일스에 건설하되 건설 기간에는 임시로 정부 청사를 멜버른에 두기로 타협안이 마련됐다. 뉴사우스웨일스의 몇 군데 후보지를 놓고 설문조사가 진행됐다.

 

호주 연방의회는 달게티를 후보지로 결정하고 달게티를 수도로 하는 정부청사법을 1904년 통과시켰다. 그러나 뉴사우스웨일스 정부는 이에 반대해 수도로 들어설 곳의 토지 이양을 거부했다. 1906년 최종적으로 뉴사우스웨일스 정부는 시드니에서 더 가까운 야스-캔버라 지역에 수도를 건설하는 조건으로 토지 이양에 동의했다. 1908년 캔버라가 최종적으로 수도 후보지로 결정되고 뉴사우스웨일스 정부는 이 지역을 1911년 연방정부에 이양해 연방 수도지역(ACT:Australian Capital Territory)이 창설됐다. 뉴사우스웨일스의 시골 마을이 호주의 수도로 바뀌게 된 것이다. 


2016 센서스에 따르면 캔버라 주민의 32%가 해외 이민자들이다. 해외 이민자의 출신 국가는 영국, 중국, 인도, 뉴질랜드, 필리핀 순으로 많았다. 


캔버라는 1911년 국제 현상 공모를 통해 건설된 도시로 월터 그리핀이 설계했다. 물, 공공 기관, 녹지 등 3개의 중심 축 선상에 도시를 계획적으로 배치해 캔버라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도로 일컬어진다. 
하지만 중추 관리 기능 위주로 계획돼 도시민들을 위한 문화 기능이 부족하며, 주말에는 시민 대부분이 시드니로 나가고 정년퇴직한 공무원들은 캔버라를 떠나는 문제점도 드러낸다.


그러나 캔버라는 정보기술(IT)과 생명공학 기술(BT)을 포함한 과학 문화 네트워크로 발전을 주도하며 호주 최고의 교육과 취업, 문화 지수를 자랑하는 도시로 성장했다. 

 

브라질
브라질은 식민지 시절부터 동부 해안에 위치한 리우데자네이루, 상파울루를 중심으로 경제 활동이 밀집해 
있었다. 브라질 정부는 내륙을 개발하고 심각한 수도 과밀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해안에서 965㎞ 떨어진 땅에 계획도시 브라질리아를 건설하기로 했다.


브라질이 행정수도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브라질리아로 이전한 것은 가장 성공적인 수도 이전 사례로 꼽힌다. 브라질리아는 1956년부터 41개월간의 공사를 거쳐 황량한 고원지대에서 수도로 재탄생했다. 현재 인
구 300만의 대도시로 발전한 브라질리아는 중남미 도시 중 1인당 GDP가 가장 높다. 대통령 관저, 국회의사당, 최고재판소 등 행정부·입법부·사법부 핵심 기관이 모여 있어 브라질의 행정 중심지 역할을 한다.

 

브라질리아로의 수도 이전이 성공 사례로 꼽히는 첫째가 경제적 이유이다. 1961년 인구 과밀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계획도시 브라질리아로 수도가 이전된후 브라질리아는 급속한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급격한 도시 팽창으로 삶의 질이 크게 떨어졌다는 비판을 받는다. 도로, 하수 처리 시설, 거주지 등 기반 시설이 부족하고 관공서가 몰린 도시 중앙에만 일자리가 밀집해 있는 것이 문제로 지적된다.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26일 수도를 자바섬 자카르타에서 보르네오섬 동칼리만탄으로 옮기겠다고 발표했다. 


수도 후보지는 자카르타에서 약 1,400㎞ 떨어진 동칼리만탄주에 있는 북프나잠 파세르군이 수도의 핵심 지역이고 인근 코타이 카르타느가라군이 포함된다. 


신수도 총면적 25만 6,000㏊ 가운데 5,600㏊에 정부 청사가 들어선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2021년 중반 정부 청사 건설을 시작해 2023년 완공할 방침이다. 


인도네시아 수도 이전 계획 배경은 심각한 수준의 자카르타의 인구 과밀과 혼잡, 지반 침해이다. 위도도 대통령은 정치·행정(워싱턴)과 경제·금융(뉴욕)으로 나뉜 미국처럼 자카르타를 경제수도로 남기고 새 도읍은 행정수도로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신행정수도 건설에는 최소 330억 달러(40조 원)가 들 것으로 추산된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1703년부터 1918년까지 러시아의 수도로, 이탈리아와 독일의 건축가들이 건설해 서유럽의 발달한 문물이 유입되는 도시로 번성했다. 1918년 레닌은 볼셰비키 혁명 후 숙고 끝에 수도를 모스크바로 다시 이전하기로 했다. 모스크바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이전 약 500년 동안 러시아의 수도였다. 


레닌은 1870년 파리 코뮌이 독일군의 지원으로 붕괴한 것처럼 서구 열강들이 개입해 러시아의 공산주의 혁명을 진압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되돌아보면 모스크바로의 수도 이전은 철의 장막 건설을 향한 첫걸음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경제적·정치적·문화적 침체는 러시아의 고립주의로 이어졌다. 소련 붕괴 후 모스크바는 번성했다. 모스크바는 전체 러시아 인구의 7%가 살지만, 국부의 80% 이상이 집중됐다는 분석이 있다. 모스크바는 천도 후 10년도 안 돼 뉴욕, 런던, 도쿄 같은 대도시로 발전했다.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와 독일은 수도의 행정 기능을 이원화한 경우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말레이시아는 1993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20㎞가량 떨어진 곳에 푸트라자야를 건설해 행정 중심지로 만들기로 계획했다. 


2010년까지 주요 행정기관과 공공기관 이전을 완료했으나 입법부인 의회와 왕실, 외교 사절과 공관은 여전히 쿠알라룸푸르에 남아 있다.


외국의 수도 이전 사례를 볼 때 수도 이전에는 어떤 것도 정답이 없는 것 같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 어떤 수도 이전이라도 완벽할 수는 없다. 


문제는 수도 이전으로 추구할 최우선적 가치와 목표를 어디에 두는가이다. 국토 균형발전, 국방, 도시 안전, 환경보호, 인구 분산, 권력 분산 등 여러 가치 중 어떤 것에 우선순위를 두느냐에 달려 있으며, 최우선에 둘 가치는 국민 다수가 참여하는 민주주의적 방법으로 정해야 할 것이다. 


발행인의 글


대량해고 노동자 640명, 국회 앞 무기한 단식 돌입

"이스타항공에서 대량 정리해고된 노동자들이 37일째 단식 투쟁 중이다. 현재 국토교통위원회의 가장 큰 민생 현안이 이스타항공 문제라고 본다." 16일 세종시에서 진행 중인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스타항공 사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심상정 의원(정의당/경기고양시갑)은 국토위의 가장 큰 민생 현안으로 이스타항공 노동자 대량 해고 사태의 해결을 손꼽았다. 심상정 의원은 "공공산업인 항공산업에서 항공사가 공중분해되고 있는 상황인데 실소유주를 국감 증인으로 못 부르고 있는 현 상황이 유감스럽다"며 "이상직 의원의 아들 이원준 씨가 16살, 미성년자 신분으로 대주주가 됐는데 이 문제는 국토교통부 책임도 크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대주주 관련 현재 법은 외국인만 확인하도록 돼 있다"며 "외국 자본의 지배를 받는지 아닌지, 이것만 보는 현 규정에 한계가 있다고 본다"고 답변했다. 논란이 됐던 보잉 737 맥스 항공기 관련 질의도 이어졌다. "2018년 12월, 추락 사고 등으로 기체결함 이슈가 있던 '보잉 737 맥스' 2대를 3,000억원에 임차한 것이 재무상태를 악화시킨 큰 요인"이라는 지적에 대해 김현미 장관은 "사고나기 이

미국 뉴욕시 코로나19 확산으로 탈뉴욕 열풍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도심을 벗어나 외곽으로 이주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도시 코로나19 사태에 탈(脫)뉴욕 ‘러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도심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외곽 지역으로 대거 이동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가 보도했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한때 많은 이들이 거주를 꿈꿨던 뉴욕이 이제 ‘탈출’을 꿈꾸는 곳으로 변해가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도심 번화가에 살던 이들이 더 넓은 공간을 누릴 수 있는 교외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브루클린의 한 이사업체에 따르면 지난 5~6월 뉴욕에서 다른 주로 이주하기 위한 이사 견적이 전년 동기 대비 200% 이상 늘었고, 지난달에는 165% 이상 증가했다. 이들 상당수가 뉴욕시 인근 교외로 이주하려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시 북부 웨스트체스터의 주택 거래량은 전년보다 112% 늘어나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뉴욕주와 접한 코네티컷주 페어필드 카운티에서도 72% 상승했다. 같은 기간 뉴욕 도심 맨해튼의 부동산 매매는 전년보다 56%나 줄었다. 반면 뉴욕시 인근 뉴저지주, 웨스트체스터 카운티, 코네티컷, 롱아일랜드 등 교외의 주택 수요는 급증했다. 한 부동산 감정평가업체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