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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건축, 건립 혹은 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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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역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 역임
새건축사협의회 회장 역임
건원건축, 선진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역임

 

한 해 5,000여 동이 세워지는 공공건축물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민간 건축보다 후지다. 절차적 공정성을 이유로 좋은 건축가들을 선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건축적 가치가 있고 품격 있는 공공건축을 얻을 수 있을까?

 

‘밥을 하다’와 ‘밥을 짓다’의 속뜻은 사뭇 다르다. 그저 한 끼 때우고자들이는 수고와 누군가에게 올릴 상을 위한 공들임의 차이라고 할까?
옷도 마찬가지다. ‘옷을 짓다’라고 하면 남편, 자식을 위해 호롱불 아래서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는 어머니가 떠오른다. ‘짓다’라는 말을 씀으로써 뜻이 달라지는 대상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의식주의 남은 하나, ‘집’이다. ‘집 만들기’가 집장사의 몫이라면 ‘집짓기’는 내 식구들이나 소중한 건축주의 온 살림을 위해 바치는 거룩한 노동이다.


한 해 공공건축물이 5,000여 동 세워지고 있다. 이 중 몇 개나 공공을 위한 ‘집짓기’의 마음으로 건축되고 있을까? 2013년에 동아일보와 《월간 SPACE》가 공동으로 Best/Worst 현대 건축 20선을 선정한 적이 있었다. 최악 20개 중 1위 서울시청사를 비롯해 14개가 공공건축물이고 최고 20개 중에서 공공건축은 4개밖에 없다.


전국 동네마다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파출소, 우체국, 동사무소들을 보시라. 붕어빵 찍어내듯 대량생산으로 ‘건립, 건설된 건물(building)’일지언정 그곳의 정체성과 지역성을 담아 ‘지은 건축(architecture)’이라 할 수는 없다. 품격과 개성을 상실한 공공건축들이 만드는 동네의 풍경은 우리 삶을 더 삭막하게 만든다. 브로치나스카프 하나가 옷맵시를 완성시키듯 보석같이 빛나는 공공건축물 하나가 동네 전체를 빛나게 할 수 있으련만.


민간보다 오히려 더 나은 설계비와 건설비를 들이면서도 왜 공공건축은 더 못난 것들만 얻고 있을까? 바로 ‘절차적 공정성’이라는 고약한 관습과 제도 때문이다. 최근까지도 설계비 입찰 방식으로 설계자를 선정하는 비율이 80% 이상이었다. 가격경쟁력으로 선정된 설계자에게 ‘집짓기’의 마음을 기대하는 것은 과욕이다.


공공건축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많이 나아져 관련 법과 규정들이 정비되고 있다.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의 개정으로 설계비 1억 이상의 공공건축은 설계공모를 의무화했고 사전 기획 및 발주 심의를 해야 한다. 국토교통부 지침은 심사위원 사전 공개와 비전문가의 심사 배제를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작 중요한 심사위원 선정 방식의 문제는 아직이다.

 


대개 자천한 이들 중에서 추첨으로 심사위원을 선정하는 것이 공정한 줄 안다. 그러나 내가 살 집이면 그렇게 하겠는가? 아마도 능력 있는 건축가를 찾아 의뢰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제도는 명목적 공정성을 앞세워 이를 막는다. 이 문제는 설계안이 잘못 뽑힐 수 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전 공개된 심사위원 명단은 당해 프로젝트에 대한 발주처의 의지를 보여주는 시그널이다. 우수한 건축가들은 자신의 창의성을 읽지 못할 심사위원들의 공모에는 아예 참가를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뽑힐 정도의 무난한 안을 내놓는다. 우리의 공공건축이 다 그만그만한 범작들이고 민간 건축보다 후진 이유이기도 하다.

 

필자가 경험한 사례는 심사위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지난해 총괄건축가로 광주광역시 대표도서관 설계공모를 주관했다. 담당 공무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내외 명망과 신망이 높은 심사위
원을 삼고초려로 모셨고 명단을 사전에 공개했다. 그러자 전 세계 61개국 817팀이 참가 신청을 했고 세르비아 건축가 브라니슬라프 레딕의 작품이 선정됐다.

 

 

1980년대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은 공공건축 프로젝트인 ‘그랑 프로제(Grand Project)’를 추진했다. 역사와 전통의 도시 파리에 대규모 현대적 건축물을 조화시켜 프랑스의 위상을 높이고 파리를 다시금 세계의 문화 수도로 만들자는 기획이었다. 특이하게도 대통령이 최종 심사를 했다. 이 덕에 많은 반대에도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가 지어졌고 30대 초반의 젊은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의 국립도서관도 빛을 볼 수 있었다. 이제 파리와 이들 건축물은 세계인들이 반드시 보아야 할 명소가 됐다.

 

욕 먹고 오해를 받더라도 공공(公共)의 선을 위해 책임지는 것이 공복의 태도다. 그러나 우리의 관료주의는 공정성에 대한 알리바이로 공공(公空)의 익명성 뒤로 숨게 만든다. 내 집 짓는 마음으로 공공건축을 짓는 것이 오히려 공정이다.


발행인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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