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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현상’, 더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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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도 반성하고 ‘제왕적 대통령제’ 부작용 함께 고민해야

‘윤석열 현상’, 우리는 놓치고 있다.

지난주 뉴스는 ‘윤석열 여론조사 1위’가 휩쓸었다.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24.7%의 지지도를 얻은 것이다. 이낙연 더민주 대표 22.2%, 이재명 경기도지사 18.4%보다 높았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반복되는 갈등으로 언론에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고, 일부 보수층 지지자가 국정감사 기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 ‘윤석열 힘내라’ 응원 화환을 단체로 보내는 등 남한 사법기관 수장이 대중의 이목을 끌었던 결과로 보인다. 며칠 뒤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윤 총장 지지율이 11%로 나와 조사방법과 신뢰도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일부에서 윤 총장을 잠재적인 ‘야권 잠룡’으로 여기고 있음은 명확하다.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윤 총장도 정치를 한 일은 없으니 ‘아웃사이더’라고 할 수 있겠다. 모든 후보가 국회의원이나 당대표를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제도권 출신 정치인은 적어도 자신의 사상과 신념, 정책에 대한 어젠다를 유권자로부터 지속적으로 검증받고 평가받아 왔다는 점에서 책임정치 구현 모델에 비교적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안철수 현상’이 한때 한국을 휩쓸었지만 지금은 안철수가 관심에서 멀어진 이유도 그가 ‘인지도’만 있었지 ‘계획’과 ‘프로그램’은 없다는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윤석열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지지도’ 보다는 수많은 뉴스를 통해 형성된 ‘인지도’가 높다고 해야 맞는다.

 

1980년대 민주정부가 수립된 이래 법무부와 검찰 사이 갈등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참여정부 때는 천정배 당시 법무부 장관이 강정구 동국대학교 교수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구속영장 청구를 철회하라는 수사지휘권을 검찰에 발동했고, 당시 김종빈 검찰총장은 이를 수용하는 대신 항의성 사표를 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에도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에 엮인 갈등이 지속됐고 고위공직자수사처는 진통 끝에 국회를 통과했으나 처장 후보자 추천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주요 여야 정치인들은 유불리만 따지고 있다. 소속을 불문하고 다소 당혹스러운 모양새가 됐단 것이 언론의 대체적 논평이다. 더민주 박상혁 원내부대표는 11월 12일 오전 정책조정회의에서 “유력 언론사 사주를 만나러 다니고 국정감사장에서 정치적 발언을 쏟아내고 자기 조직을 챙긴 결과”라며 “그러나 검찰총장은 결코 정치를 하라는 자리가 아니고, 대선주자 1위가 검찰총장 하는 것 자체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라고 깎아내렸다. 제1야당 국민의힘 소속 김종인 비상대책 위원장, 주호영 원내대표 모두 여론조사일 뿐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모습을 보였고, 일부 국민의힘 의원은 ‘우리의 무능을 반성할 일”이라고 했다.

 

원인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중앙일보』는 11월12일 목요일 치 1면에서 ‘윤석열 현상’을 크게 다루고, 사설을 통해 “갑갑하고 마땅한 출구 하나 없는 현실 속에서 새 정치를 원하는 유권자 기대가 섞인 희망 찾기”라고 평가했다. 진보적 성향의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정계진출 가능성을 시사한 순간 윤 총장은 검찰총장이기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하며 추 장관과 윤 총장을 함께 비판했다. “두 사람의 이런 행동거지를 시민들이 언제까지 보고 있어야 하는가”라고도 했다. 『한겨레』도 비슷한 논조였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자숙해야 한다”며 “대선후보로 대접받고 싶다면 총장직을 내려놓는 게 합당한 처사”라고 했다.

 

어떤 경우든 간에 소위 ‘윤석열 현상’은 우리 사회 갈등 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본래 대의제 민주주의는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이슈에 대한 견해 차이 같은 이념 대립을 일정한 제도와 경쟁을 통해 적절하게 흡수하고 안정적으로 사회를 유지한다는 목적으로 설계됐다. 민주정에도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등 다양한 형태가 있지만 남한은 1987년 민주화 과정에서 미국식에 가까운 대통령제를 채택했다. 그러나 치열한 토론을 거친 결과라기보단 김대중-김영삼이라는 두 정치인이 집권 민주정의당과 타협한 결과였다. 그들은 대통령 임기가 제한되고, 자신들이 정치인으로서 계속해서 일정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다면 한두번 떨어져도 다음번에 당선될 가능성이 있단 계산에서 헌법 개정에 합의했다.

 

하지만 5년마다 치러지는 남한 대통령 선거는 매번 너무 큰 상처를 남기고 있다. 선거철이 되면 사회의 엄청난 에너지가 투입되고 다른 모든 이슈보다 그 후보가 ‘우리 편’인지 아닌지, 어디 출신인지가 가장 중요해진다. 정치인과 지식인, 언론이 합세하여 모든 자원을 동원하고 유권자 또한 충실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해 ‘번호만 보고’, ‘인물만 보고’ 사람을 찍게 된다. 그러다 어느 한쪽이 이기면 진 쪽은 이를 갈게 되고, 5년 뒤 있을 선거를 기약하는 것이 최우선 순위로 작동한다. 그렇게 여야가 ‘죽기 살기’로 싸운 결과 민주화 이후 대통령이 모두 좋지 않은 결말을 맞았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친인척 비리, 비선실세, 뇌물수수 등 죄목도 다양하다.

 

모든 문제는 한국 대통령이 너무 많은 권한을 가진다는 데서 나온다. 보수든 진보든, 대통령에 당선되면 직간접적으로 ‘개국공신’들에게 ‘자리’를 나눠주거나 사업을 떼어주는 식으로 보상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과정에서 끊임없는 정쟁이 야기된다. 나라의 경제적·정치적 자원이 비효율적으로 배분되고 시민들의 사회적 후생과 정치체제에 대한 신뢰도가 저하되는 직접적 원인이다. ‘콩고물’을 받지 못했다고 믿는 사람들은 제도적 해결책이 아니라 폭력적이거나 일탈적인 수단을 찾아 거리로 나가거나 부정적 인식을 갖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된다. 모든 국민이 상대편 사람을 ‘죽일 듯이’ 노려보면서 살다보면 좋은 사회가 만들어질 리 없음도 자명하다.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는 그러나 민주주의의 전부가 아니다. 대통령제는 민주정이 작동하기 위한 여러 제도의 일부일 뿐이다. 행정부뿐 아니라 입법부와 사법부도 중요하며, 뻔한 말이지만 시민의 정치참여나 지방자치제의 실질적 구현, ‘노동존중 사회’를 만들어 나가려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윤석열 현상’은 그러므로 우리 정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으며, 제도적 차원의 신뢰도와 안정성이 확보되는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자체가 정상적 현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야당만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 국민께 죄송하다’며 반성할 일이 아니다.

 

언론 또한 본분을 새길 필요가 있다. 추미애-윤석열 갈등은 미디어에 의해 과열된 측면이 분명 적지 않다. 국회에서 각 기관 수장들이 서로를 일러바치듯이 회의를 활용하는 현상은 낯부끄러운 일이다. 언론이 지적해야 한다. 페이스북 포스트나 검찰 내부망 게시글을 중계하듯 보도하고, 검증되지 않은 법무부-검찰 발 소문을 받아적는다. 진영논리를 떠난 근본적 구조개혁과 시민의 정치참여를 보장할 제도적 장치, 언론의 줏대 있는 감시가 작동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시민들이 자유롭게 토론하고 스스로를 다스린다는 민주주의의 근본 정신의 실현은 요원할 것이다.
 

[티비유=선승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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