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많은 사람들이 대중을 유혹하기를 원한다. 소비자의 마음을, 유권자의 마음을, 국민의 마음을, 네티즌의 마음을, 시청자의 마음을…. 대중을 유혹하는 것은 요술도 마술도 아니다. 7가지로 정리한 대중유혹의 기술을 하나씩 소개하며 인간의 속성과 한계를 이야기 하고 있는 이 책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는 비법을 알아보자.
기획 편집부
EBS 다큐프라임 <한국인의 집단심리–우리We> 중 1, 2부에 해당하는 《대중 유혹의 기술》은 홍보, PR, 프로파간다 등의 메커니즘을 본격적으로 다룬 국내 최초의 다큐멘터리다. 기획 후 2014년 9월부터 미국, 프랑스, 태국, 오스트리아, 독일, 일본 등 총 6개국을 45일 동안 현지 취재하고, 노엄 촘스키MIT대 명예교수, 스튜어트 유엔 뉴욕시립대 교수, 문화평론가 로랑 제르브로, 클라우디아 쉬멜더스 등 세계적인 석학들을 만나 인터뷰를 담았고, 방송에 미처 담지 못한 상세한 이야기들을 이 책 속에 풀어냈다.
《대중 유혹의 기술》은 ‘유혹의 기술’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잘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 자체로 인간의 심리와 본성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1964년, 38명의 주민이 살인사건을 목격하고도 아무도 돕거나 신고하지 않았다는, ‘방관자 효과’의 예로 유명해진 키티 제노비즈 살인 사건이 《뉴욕타임스》 기자의 왜곡된 보도에 의한 것이었음을 미국까지 날아가 확인하면서, 사람들이 공포와 분노에 더 빨리 반응함을 보여준다.
태국 프라임 타임에 방영되는 TV드라마에 강간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는 다소 충격적인 사실을 현지 취재하여, 드라마가 현실 세계를 묘사하는 데 근본적으로 결함을 가지고 있으며 정치의식의 퇴행을 가져오는 기능을 하고 있다는 현지 평론가의 지적을 소개하기도 한다.
히틀러의 얼굴을 완성시킨 하인리히 호프만을 통해 히틀러가 대중의 아이콘으로 ‘만들어졌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며, 포토샵을 통한 이미지 조작이 가져오는 폐해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 밖에도 여성 흡연인구의 급격한 증가를 불러오고, 베이컨이 미국의 아침 식탁을 점령하게 만든 에드워드 버네이즈의 천재적인 대중홍보전략, 허니버터칩과 울트라뮤직페스티벌이 보여준, 마케팅을 자제하는 ‘무전략의 전략’ 그리고 전 세계의 이목을 끌어모으는 음료회사 레드불의 획기적인 이벤트 등 20세기 최고의 대중 유혹 기술을 다루며, 이들이 대중의 어떠한 속성을 이용하는지, 어느부분을 채워주는지 이야기한다.
여성들이여, 담배를 물어라
1923년 미국 내 흡연자 중 여성은 고작 6%였다. 1920년대 럭기 스트라이크라는 새로운 담배 브랜드로 재미를 보고 있던 아메리칸 토바코 컴퍼니의 회장 조지 워싱턴 힐은 이전보다 더 많은 고객, 더 많은 판매, 그리고 더 많은 사회적 평판을 원했다. 그렇다면 여성들을 새로운 담배 소비자로 끌어들이면 어떨까? 먼저 아메리칸 토바코 컴퍼니는 여성의 허리를 겨냥했다. 그들은 담배가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는 광고를 의사들의 조언, 유명 배우와 모델, 발레리나의 사진과 함께 실었다. 당연히 경쟁업체였던 설탕 회사, 땅콩버터 회사, 사탕 제조회사 등으로부터 비난과 비판이 쏟아졌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갔다. 그들은 단 음식을 줄이는 대신 ‘담배를 더 소비하는 것이 절제’라는 인식을 불어넣는 것이었다. 세 번째 전략으로 주목했던 것은 여성들의 흡연 습관이었다.
조지 워싱턴 힐 회장에게는 에드워드 버네이즈라는 걸출한 대중홍보 전략가가 있었다. … 여성을 공략하라는 힐 회장의 주문을 받은 버네이즈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그는 여성 잡지 《보그》에 있는 친구를 통해 사교계에 갓 입문한 젊고 매력적인 30여명의 여성 명단을 제공받는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의 비서 이름으로 선동적인 표현이 있는 전문을 보낸다. ‘길거리에서는 담배를 절대로 피울 수 없다는 세간의 편견에 맞서 싸우자. 담배를 피워 자유의 횃불을 올리자.’
1929년 부활절 퍼레이드는 버네이즈의 철저한 각본 하에서 이루어졌다. 그가 남긴 메모에는 ‘행진참가자들의 외모는 준수해야 하지만 홍보자료처럼 보이지 않도록 너무 모델 같아도 안 된다’, ‘퍼레이드를 하면서 지나가는 유명한 교회와 성당 앞에서 각각 3명씩 퍼레이드에 합류한다’, ‘다른 여자가 담배 피우는 것을 본 한 여자가 지갑을 열어 담배를 피우려 하지만 성냥이 없어 주위의 다른 여자에게 불을 부탁한다’, ‘언론사가 좋은 사진을 못 찍을 경우를 대비해 자체 사진사를 활용한다’는 등의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퍼레이드 다음 날 미국 내 여러 언론들이 급보로 신문 1면에 이 내용을 실었다. 그 목소리는 명백히 사회적 금기에 도전한 페미니스트나 여성해방론자들의 선언처럼 들렸다. 아무도 담배 회사인 아메리칸 토바코 컴퍼니가 만들어낸 작지만 강력한 연극이었다는 사실은 모르는 것 같았다. 뉴욕 퍼레이드 이후 보스턴, 디트로이트, 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서 담배를 입에 문 여자들이 행진하는 것이 보도되었다.
사람들은 PR이라는 단어를 언론 담당자, 홍보자료 배포 담당자로 잘못 써 왔다. 언론 담당자들은 단순히 고객들(언론)의 입맛에 맞는 정보를 제공하는 자들이다. 하지만 PR담당자들은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어떤 사회적 태도와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객이나 고용주에게 조언할 수 있는 응용사회과학자라고 나는 정의한다. 그 대중의 지지야말로 그들이 생존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PR담당자에 대한 버네이즈의 정의)
올 가을에는 녹색이 유행할 것이다
1930년대 중반, 아메리칸 토바코 컴퍼니의 회장 조지 워싱턴 힐은 다시 한 번 버네이즈를 시험에 들게 한다. 힐 회장은 럭키 스트라이크의 녹색 담뱃갑이 여성들이 좋아하는 옷 색깔에 잘 어울리지 않아 여성들이 럭키를 꺼려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받은 터였다.
힐 회장: 생각만큼 여자들이 럭키 스트라이크를 안 사고 있소. 어떻게 하면 좋겠소?
버네이즈: 담배 포장지 색을 무난한 색으로 바꾸시죠. 아무 옷에나 어울리는 그런 색으로.
힐 회장: 이미 이 담뱃갑 광고에 수백만 달러를 썼소. 그런데 지금 와서 바꾸라고? 말도 안 되는 조언이오.
버네이즈: 만일 담뱃갑 색을 바꾸지 않을 거라면 색을 유행시키죠. 녹색으로.
버네이즈는 곧바로 뉴욕 사교계 인물들을 초청해 녹색을 드레스 코드로 하는 ‘녹색 무도회’를 연다. 또한 ‘녹색 패션 가을 오찬’이라는 이름하에 같은 호텔로 패션잡지 편집자들을 초청했다. 그들의 식사 테이블에는 녹색 콩, 아스파라거스, 강낭콩 수프 등 온통 녹색 계열의 음식들이 올라갔다. 그 자리에 초청된 한 미대 학장은 ‘위대한 예술가들 작품에 나타난 녹색’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고, 한 심리학자는 녹색의 심리학적 의미를 전달했다.
결과는 대성공. 언론들은 녹색의 유행을 예견하는 기사를 실었고, 녹색은 아메리칸 토바코를 대표하는 색으로 자리를 잡았다. 품위를 원하는 곳에는 품위를, 허세를 원하는 곳에는 허세를, 정보를 원하는 곳에는 정보를 주는 버네이즈의 전략은 효과적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자신의 원하는 것을 살짝 얹었을 뿐이다.
Video Kill the Radio Star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얼굴이 곧 돈이고 권력이고 명예이기 때문이다. 얼굴은 사람 대 사람의 커뮤니케이션에서도 가장 강력한 요소다. 소개팅이나 상담, 면접을 해본 사람이라면 단번에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인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자. 현역 정치인 중 가장 잘생기거나 미모가 출중한 이는 누구인가? 얼굴도 정치권력의 한 요소인가? 적어도 확실한 것은 알려진 얼굴일수록, 호감이 가는 얼굴일수록 대중정치의 강자로 군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사회학자 마누엘 카스텔스의 날카로운 지적처럼 현대 정치 뉴스는 기존 TV나 라디오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터넷매체를 통해 광범위하게 전달되기 때문에 정치는 점점 미디어의 영역 안에 존재하게 된다. 정치는 이제 쇼 비즈니스의 한 부분이라는 말도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흔히 기존의 정치인들은 입에 승부를 거는 라디오 스타였다. 대중 선동의 화술이나 날카로운 질문에 대한 임기응변 능력이 관건이었다. 운동권이나 법조계에서 말을 잘하는 사람일수록 정치인이 될 확률은 확실히 높았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오늘날 정치에 있어서 중요해지는 것은 정치인 개개인이 가지는 스타일과 개성이다. 대중들은 점점 정당의 정책이나 원칙보다는 정치인 개인에 대한 호불호로 투표하고 있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정당보다는 명성있는 정치인에 의존해서 투표할 가능성이 높다. … 어느새 정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닮아가고 있다. 정당은 예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정치인의 얼굴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매력적인 인물을 발굴하여 정치계로 끌어들이고 대중의 아이콘으로 만드는 게 새로운 목표가 되었다.
당신도 대중을 유혹하고 싶은가?
하지만 여전히 대중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미디어와 자본에 조작당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상황을 능동적으로 이끌어가기도 한다. 허니버터칩의 열광에 부화뇌동하기도 하고 내 집 마련 광풍에 휩쓸리기도 하지만, 재난이 쓸고 간 폐허의 현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간성의 유대를 보여주기도 한다.
광고 및 홍보 전문가, 마케터, 정치인, 컨설턴트, 블로거, 정부기관 등 대중을 유혹하고자 하는 이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특히 광고 산업이 발전하고 IT기술이 눈부시게 성장하면서 대중을 유혹하는 기술은 점차 교묘해지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펼치는 기술이 다르고, 나라와 성별에 따라 기술이 다르게 적용되기도 한다. 최신 SNS를 이용한 기술이 있는가 하면, 전통적인 입소문이 가장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 어떤 이들은 ‘가만히 있는 것’을 전략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이는 매스미디어의 발전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는데, 저자는 미디어를 통해 개인의 영역으로 침투하여 개인을 집단으로 조직화하고 특정한 방향으로 은밀하게 이끄는 설득자들(hidden persuaders)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음에 주목한다. 문제는 대중이 설득자들의 기술에 점차 무감각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설득자들의 전략을 파헤치는 것은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지혜를 갖게 할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그 기술을 대중의 마음을 얻는 데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대의 미디어들은 끊임없이 개인의 영역에 침투하고 유혹의 메시지를 실어 나른다. 하지만 미디어는 단순히 홍보 문구, 상품 정보, 개인의 의견 같은 내용을 전달하는 매개체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아주 은밀하게 미디어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의식구조를 변화시키고 세계관에 영향을 준다. 미디어가 내뿜는 이미지로 우리는 사회적 현실을 직조한다. 그리고 그것을 내가 살고 있고, 내게 의미를 주는 나만의 세계라고 믿는다. 어느새 그들의 유혹은 나의 신념이 된다. 그렇다면 그들의 작전은 성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