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불거진 가습기 살균제 논란은 사회에 많은 움직임을 가져왔다. 대기업에 맞서 불매운동이 벌어졌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이 화학제품을 쓰지 않는 ‘노케미족’이다.
기획 황진아 기자
아침에 일어나 샴푸로 머리를 감고, 스킨과 선크림을 얼굴에 바르고, 탈취제를 뿌린 옷을 입고 나온다. 집 밖에서도 자주 사용하는 치약, 손 세정제, 물티슈, 집에 돌아와 피로를 풀기 위해 쓰는 향초와 클렌징 제품, 세탁에 사용하는 섬유유연제까지…. 우리의 삶은 아침에 눈을 뜨면서 다시 잠이 들때까지 화학제품에 둘러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화학제품. 그러나 최근 가습기 살균제 파동으로 인해 화학제품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 때문에 함께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바로 ‘노케미족(Nochemi族)’이다. 노케미족은 화학물질이 들어간 제품에 거부감을 느끼며 친환경 제품만 사용하거나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실제로 최근 마트에서 화학성분 표백제의 매출은 작년보다 40% 가까이 줄어든 반면 친환경 세제의 매출은 163%로 늘었다. 세재나 탈취제 대신 사용할 수 있는 베이킹소다와 구연산의 판매량도 45% 늘어났다.
화학제품, 버리는게 능사는 아니다
화학제품의 유해성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화장품 하나도 꼼꼼히 따진다. 우리가 매일 바르는 화장품에는 화학성분이 수없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자외선을 차단하는 옥시벤존, 화장품의 부패를 막는 데 주로 사용되는 파라벤, 소독·항균 역할을 해 여드름 치료제, 데오드란트 등으로 사용되는 트리클로산, 향수에 많이 쓰이는 프탈레이트와 헤어제품에 사용되는 디메치콘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그 위험성에 따라 사용량을 제한하고는 있지만 알고 난 이상 사용하기 찝찝한 것은 사실. 그렇다고 사용하던 화장품을 당장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화학제품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서는 내가 사용하는 화장품에 어떤 성분이 들어가는지 확인하고, 적정량을 사용하는 것이 최선이다. 화장품에 사용된 성분을 분석해주는 어플리케이션인 ‘화해(화장품을 해석하다)’는 다운로드 수가 200만 건을 넘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샤워를 할 때 샴푸를 사용하지 않는 ‘노푸(No Shampoo의 줄임말)’, 스킨케어 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물로만 세안하거나 화학제품을 대체할 수 있는 천연제품을 직접 만들고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못 믿겠다’ 직접 만들어 쓰는 사람들
최근 인터넷에서 집에서 쉽게 만들어 쓸 수 있는 세제에 대한 정보가 활발히 공유되고 있다. 화학성분이 들어있지 않은 이른바 ‘천연 세제’다. 베이킹소다, 구연산, 과탄산소다 이 세 가지만 있으면 집에서 쓰는 대부분의 화학세제를 대체할 수 있다. 천연 세제로 가장 많이 쓰이는 베이킹 소다는 물때나 찌든 때를 제거하고 탈취효과도 있어 화장실과 욕실청소, 플라스틱이나 비닐 소재의 장난감 등을 세척할 때 사용하면 좋다. 베이킹 소다에 구연산을 섞으면 세정력이 더 강해져 도마나 행주를 소독하고 배수구를 청소할 때도 효과적이다. 옷에 묻은 얼룩은 따뜻한 물에 과탄산소다를 풀어 씻으면 없어진다.
이미 많이 사용하고 있는 EM발효액은 물에 희석해 사용하면 집먼지 진드기를 제거하고 설거지와 빨래 등을 할 때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옷감을 부드럽게 해주는 섬유유연제를 대신할 때는 식초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식초의 산성은 세제의 알칼리성을 중화시켜 옷감을 부드럽게 하는데, 빨래를 행굴 때 식초 한두 방울을 넣으면 섬유의 손상을 줄이고 정전기도 예방된다.
천연제품 사용만이 답일까?
이 밖에도 향초나 디퓨저 등의 방향제를 대신하고, 옷이나 신발, 이불 등의 악취를 없애기 위해 과일 껍질, 커피 원두 찌꺼기, 천연오일 등을 이용해 직접 천연 방향제와 탈취제를 만들고, 반찬통과 조리도구, 침구 등을 천연, 친환경 제품으로 바꾸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러나 무조건 화학제품을 천연제품으로 바꾸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노케미족의 증가’와 ‘천연·친환경 제품의 인기’는 더 이상 사람들이 그 기업과 제품에 대한 신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이면에 숨겨진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업과 제품이 더 이상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