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고시촌이던 신림동이 연령대를 불문하고 몰려드는 ‘솔로’들로 ‘1인 가구의 메카’가 되고 있다. 1인 가구 정책 수립 시 참고하기 좋은, 신림동의 사회문화적 변화양상을 다큐멘터리와 함께 살펴봤다.
기획 정우진 기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발표에 따른 2015년 우리나라 1인 가구는 506만 1000가구. 1인 가구는 더 이상 이웃나라 일본에서 발생한 특수 사례가 아닌 시대적 대세가 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지방자치단체의 주거·가족 정책은 부부로 구성된 2인 이상 가구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 1인 가구는 만성화된 경제 불황 때문에 앞으로도 지속 증가할 추세다. 각 지자체에도 맞춤형 정책 수립이 시급한 상황. 그럴 때 참고하면 좋을 만한 지역이 바로 신림동이다. 신림동의 문화적 변화는, 다큐 ‘1인가구의 천국, 신림동’에서도 다룬바대로 새롭고 색다르다.
신림동은 77%가 혼자 사는 사람들
그 때문에 문화도 다른 동네와 달라
사람들이 ‘신림동’이라 일컫는 지역은 난곡동, 난향동, 대학동, 미성동 등 11개의 행정동으로 구성된 법정동 지역이며 2015년 12월 기준 이 지역 인구는 13만 496명이다. 특히 인구 중 77%가 1인 가구로 구성돼 있어 대한민국 1인 가구의 최대 메카라고 할 수 있다. 지역의 대부분이 1인 가구로 구성돼있는 만큼 이 지역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나 문화는 타 지역과 크게 다르다. 아무래도 혼자 살면 외로움도 많이 타고 자기관리에 느슨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 신림동의 1인 가구 거주민들은 그를 보완하기 위한 다양한 문화적 장치를 많이 만들어왔다. 그를 따라 지역의 자영업자들 또한 그들에게 맞춘 다양한 의식주 서비스를 내놓고 영업을 하고 있다.
신림동 1인 가구 거주민들 이렇게 ‘혼자 잘 산다’
신림동에서 9급 공무원시험을 준비 중인 안세연(28) 씨는 아침마다 ‘출첵스터디’를 한다. 1인 가구 수험생들이 아침마다 지정된 시간에 지정된 장소에서 모여 서로 인사하는 것. 안 씨는 “혼자 생활하면 의지박약도 생기고 하니까, 수험생은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그러니까 이렇게라도 해보자 해서 출첵스터디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출첵스터디원은 온라인 카페나 각종 커뮤니티 어플리케이션 등을 통해 모집하며, 지정된 시간에 인사하지 않을 경우 벌금을 매기는 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한편 신림동에는 안 씨와 같은 1인 가구를 위한 ‘뷔페’가 성행하고 있다. 싼 음식 값도 특징이지만 무엇보다 혼자서도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편한 분위기가 특징.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을 아랑곳하지 않고 편하게 밥을 먹는 것은 신림동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밤이 되면 ‘혼밥’ 뿐만 아니라 ‘혼술’도 가능하다. 신림동에 위치한 한 ‘튀김포차’에서는 혼자 술 먹는 사람들을 위한 1인 안주 세트를 판매하고 있다. 국물떡볶이와 각종 튀김으로 이뤄진 세트의 가격은 주점 안주치고는 저렴한 6000원. 이 주점 손님 대부분은 혼자서 와서 혼자서 술을 먹고 가는, 말 그대로 ‘1인 전문 술집’이다. 이 같은 주점에서 혼자서 맥주를 자주 먹는다는 직장인 김명희(38) 씨는 “사람들이 혼자 술을 먹어도 시선을 주지 않아서 편하다”며 “신림동에서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혼자서 가볍게 즐길 수 있어 부담도 없고 좋다”고 말했다.
그래도 외로운 사람들 혼자 생활 지키며 커뮤니티 만들기도 해
한편 혼자 사는 외로움으로 사람들은 종종 ‘공동체’를 갈망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동네 1인 가구들 사이에는 함께 저녁밥을 먹는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고 있다. 그런 커뮤니티 중 한 곳인 ‘작은따옴표’의 장서영(24) 대표는 “이 동네 같은 경우는 1인 가구가 굉장히 많고 그 사람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장이 거의 없다”며 “큰 네트워크 안에서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준다면 좋지 않을까 해서 모임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작은따옴표 회원들은 시장에서 많은 양의 반찬과 재료를 사다가 공동 주방에서 함께 요리를 해먹는다. 그들은 이 ‘저녁식탁’을 매개로 밴드도 같이 하고 맥주 한잔 마시고 싶을 때 불러낼 수 있는 친구도 만든다. 공동주방은 외로워하는 그들에게 마음의 안식처이자 아지트기도 하다. 혼자서 종종 맥주를 먹곤 했던 직장인 김명희 씨도 동네 친구들을 모아서 주말 플리마켓을 열기 시작했다. 중고 카메라부터 책, 이어폰, 머리띠, 1인용 선풍기까지. ‘혼자 사는 사람들’이 모여 다른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해 물건을 팔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신림동은 아직은 정착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현재 1인 가구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긴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은 1인 가구를, 신림동을 ‘꿈을 실현하기 위해 현재의 고난을 잠시 참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앞으로 1인 가구가 ‘거쳐 가는 곳’이 아닌 ‘주거의 일반적 형태’가 될 것이라고 공통 예측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따라 우리 지자체들도 얼른 1인 가구 대책을 수립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려면 먼저 1인 가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문화를 알아야 한다. 이 다큐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우리 공무원들에게 꼭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