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25일 제44차 국민시대포럼에서는 신영증권 리서치 센터의 김학균 센터장이 ‘주식시장과 한국 경제’를 주제로 강연했다. 김 센터장의 강연 내용을 요약·정리했다.
요즘 시장을 보면 많은 이들이 같은 의문을 품는다. 경기는 분명 녹록지 않은데 왜 주가는 오르느냐는 것이다. 자영업은 어렵고 소비는 살아나지 못하며 성장률도 낮다. 그런데도 자산시장은 예상보다 강하다. 이 괴리를 단순한 낙관이나 비관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것은 경기의 일시적 등락이 아니라, 지난 수십 년간 당연하게 여겨온 경제 질서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익숙했던 저금리·저물가의 시대는 끝나고 있다
우리가 익숙했던 시대는 금리가 내려가고 물가가 안정되며 세계화가 확장되던 시기였다. 많은 사람들은 이 흐름이 정상이라고 여겼지만, 길게 보면 오히려 예외적인 시기였을 수 있다. 1980년대 이후의 저금리와 저물가, 글로벌 공급망의 확대는 인류사적으로 드문 호황의 조건이었다. 그러나 최근 3년은 금리가 다시 오르는 국면으로 돌아섰고, 이는 단순한 정책 변화가 아니라 생산과 물가, 국제질서가 함께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30년의 질서를 떠받친 중국이 달라졌다
이 점을 이해하려면 지난 30년을 떠받친 축이 무엇이었는지 먼저 돌아봐야 한다. 그 중심에는 중국이 있었다. 중국은 값싼 노동력으로 전 세계 물가를 낮췄고, 높은 저축률로 세계 금융시장에 자금을 공급했다. 저물가와 저금리, 그리고 세계화의 결합은 상당 부분 중국이라는 변수 위에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이제 중국은 더 이상 단순한 저임금 생산기지가 아니다. 임금은 올랐고, 산업은 고도화됐으며, 기술과 공급망에서 미국과 경쟁하는 단계로 올라섰다. 과거의 세계화 체제가 같은 방식으로 복원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이 변화를 20세기 초 유럽의 벨 에포크와 겹쳐 보곤 한다. 그 시기 유럽은 전쟁이 사라지고 번영이 지속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평화와 번영이 영원할 것이라는 확신은 결국 1차 세계대전 앞에서 무너졌다. 당시 전쟁은 우연한 사건 하나로 터진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구조적 긴장이 이미 누적돼 있었다. 오늘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눈앞의 시장 강세만 보고 과거의 질서가 계속될 것이라 믿는다면, 우리는 구조 변화의 신호를 놓칠 수 있다.
중국의 동원력과 미·중 경쟁은 새 질서를 만들고 있다
중국 경제를 바라볼 때도 단순한 낙관이나 비관은 모두 위험하다. 중국 전체 경제는 부동산과 소비 부진, 디플레이션 압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개별 산업과 기업은 강한 돌파력을 보인다. 이는 중국이 서구식 의미의 효율성보다 국가의 동원력으로 경쟁하기 때문이다. 수익률만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정하면 대규모 자원을 오랫동안 투입한다. 과정의 효율은 낮아 보여도 결과의 규모는 압도적일 수 있다. 한국이 중국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미·중 갈등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나는 이 갈등이 끝없는 정면충돌보다는 강약을 조절하며 이어지는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미국도 중국을 무작정 밀어붙이면 물가와 금리, 정치적 부담이 커진다. 중국 역시 봉쇄 속에서 나름의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세계화의 시대로 완전히 되돌아가기는 어렵겠지만, 앞으로의 경쟁은 단절보다 관리의 양상을 더 띨 가능성이 있다.
한국 경제를 흔드는 핵심 변수는 전쟁과 에너지다
이 과정에서 한국이 가장 민감하게 봐야 할 변수는 전쟁과 에너지다. 한국은 여전히 원유 의존도가 높고, 중동산 원유 비중도 크다. 이런 구조에서는 중동 불안이나 전쟁 장기화가 곧바로 유가 상승과 물가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공급 충격으로 생긴 인플레이션은 중앙은행이 다루기 가장 어려운 유형이다. 금리를 올리면 경기가 더 위축되고, 올리지 않으면 물가가 버틴다. 결국 전쟁은 군사 뉴스가 아니라 가격의 문제이며, 그 가격이 경제와 정치를 흔든다.
주가는 경기보다 유동성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렇다면 왜 경기는 좋지 않은데 주가는 오를까. 나는 그 배경에 유동성이 있다고 본다. 금융위기와 코로나를 거치며 주요국 중앙은행은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규모의 돈을 풀었다. 실물경제보다 훨씬 빠르게 증가한 이 유동성이 자산시장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결국 오늘의 시장은 경기의 온도보다 돈의 총량과 흐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독일이나 일본처럼 성장 정체 속에서도 증시가 버티는 현상도 이 틀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이것이 한국 내수가 강하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의 민간소비는 최근 몇 년간 매우 부진했다. 나는 그 배경 가운데 하나로 부동산 중심의 자산구조를 본다. 돈이 생산적 소비로 흐르기보다 부동산에 묶이면서 가처분 여력이 약해지고, 자산가격 상승이 곧 생활의 여유로 이어지지 않는다. 집값이 오르면 기분은 좋아질 수 있지만, 그 자산이 곧바로 소비를 늘리는 구조는 아니다. 그래서 지금 오르는 주식들은 내
수 업종이 아니라 수출형 기업인 경우가 많다. 주가와 체감경기를 같은 것으로 보면 안 되는 이유다.
결국 필요한 것은 예측이 아니라 구조를 읽는 힘이다
이 대목에서 투자에 대한 시각도 달라져야 한다. 시장을 단기적으로 맞히는 일은 매우 어렵다. 사람들은 대개 오를 때 더 오를 것 같아 사고, 떨어질 때 더 떨어질 것 같아 판다. 그렇게 고가 매수와 저가 매도를 반복한다. 그래서 나는 일반 투자자일수록 자기 예측 능력을 과신하기보다, 지수 중심의 장기 투자 원칙을 갖는 편이 현실적이라고 본다. 주가는 장기적으로 명목성장률을 반영하는 경향이 있고, 개별 종목보다 지수는 시대에 따라 승자를 교체하며 살아남는다. 결국 투자는 미래를 맞히는 게임이 아니라, 시간을 사는 일에 가깝다.
결론은 분명하다. 저금리, 저물가, 무한한 세계화의 시대는 이미 흔들리고 있다. 앞으로의 경제는 금리와 공급망, 에너지와 유동성, 그리고 미·중 경쟁이 동시에 작동하는 복합의 질서 속에서 움직일 것이다. 이럴수록 우리는 주가를 경기로 오해해서도 안 되고, 단기 지표를 현실 전체로 착각해서도 안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낙관도 비관도 아니다. 달라진 구조를 정확히 읽고, 그 안에서 원칙을 세우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개별 종목보다 주가 지수에 투자하라”는 것이다.
[지방정부티비유=한승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