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직사회에는 오랫동안 익숙한 말이 있었다.“규정대로 했습니다.” 이 말은 한때 공무원을 지켜주는 방패였다. 규정은 행정의 기준이었고, 절차는 책임을 나누는 장치였다. 법령과 지침을 따르는 것은 공무원의 기본이었다.
그러나 지금 현장은 달라졌다. 민원은 단순하지 않고, 지역 문제는 한 가지 원인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인구는 줄고, 예산은 한정돼 있으며, 주민 요구는 더 구체적이고 빠르다. 이제 행정은 정답지를 보고 푸는 시험이 아니다. 공무원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을 외우는 능력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해답을 만들어내는 힘이다.
정답은 하나지만, 해답은 현장에서 달라진다
정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법령, 조례, 지침, 매뉴얼, 예산 기준, 감사 기준이 그것이다. 행정은 이 기준 위에서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해답은 다르다. 해답은 지역의 조건, 주민의 상황, 정책의 목적, 실행 가능성을 함께 보며 찾아야 한다. 같은 사업이라도 농촌과 도시는 다르게 설계돼야 하고, 같은 복지정책이라도 지역의
인구 구조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문제는 많은 행정이 아직도 정답을 찾는 방식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규정상 어렵습니다.”
“전례가 없습니다.”
“다른 부서 소관입니다.”
이 말들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이 말에서 행정이 멈추면 주민의 문제도 멈춘다. 정답을 확인한 뒤부터 해답을 찾는 일이 시작돼야 한다.
행정의 실력은 예외 상황에서 드러난다
평소에는 누구나 매뉴얼대로 일할 수 있다. 진짜 실력은 예외 상황에서 드러난다. 기준은 있지만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고, 주민의 요구는 타당하지만 제도 안에 담기지 않으며, 예산은 부족한데 문제는 당장 해결해야 할 때다.
그때 공무원의 태도가 갈린다. 한 사람은 “안 된다”고 말한다.다른 한 사람은 “어떻게 하면 가능할지 보자”고 말한다. 두 사람 모두 규정을 어기지 않는다. 그러나 결과는 다르다. 앞의 사람은 행정을 멈추게 하고, 뒤의 사람은 행정을 움직이게 한다.
해답을 만드는 공무원은 무리하게 예외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기준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 안에서 가능한 길을 찾는 사람이다. 법의 취지와 제도의 목적을 함께 읽고, 문제를 부서의 경계 안에 가두지 않는다.
주민은 절차보다 결과를 기억한다
행정 내부에서는 절차가 중요하다. 문서가 맞아야 하고, 결재선이 맞아야 하며, 예산 집행 근거가 분명해야 한다. 이것은 공공조직의 기본이다. 그러나 주민은 절차만으로 행정을 평가하지 않는다. 주민이 기억하는 것은 결국 달라진 삶이다.
● 불편이 줄었는가.
● 위험이 사라졌는가.
● 서비스가 빨라졌는가.
● 지역에 필요한 변화가 실제로 일어났는가.
주민에게 행정은 문서가 아니라 경험이다. 그래서 해답을 만드는 공무원은 주민의 말을 단순한 요구로 듣지 않는다. 그 안에 숨어 있는 문제의 구조를 본다. 민원이 반복되면 개인의 불만이 아니라 제도의 틈을 의심한다.
공무원에게 필요한 세 가지 전환
이제 공무원에게 필요한 것은 일하는 방식의 전환이다..
① 규정 확인에서 문제 해결로
규정을 확인하는 일은 출발점이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추면 행정은 수동적 조직이 된다. 규정의 목적을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지까지 보아야 한다.
② 부서 중심에서 주민 중심으로
주민의 문제는 부서별로 나뉘어 있지 않다. 복지, 주거, 일자리, 교통, 안전이 한 사람의 삶 안에서 동시에 작동한다. 행정도 문제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
③ 처리 속도에서 변화의 지속성으로
빨리 처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같은 민원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해결이 아니다. 해답은 한 번의 처리보다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해답을 만드는 사람은 질문이 다르다
정답을 찾는 공무원은 이렇게 묻는다.
“이 업무는 우리 부서 일인가?”
“규정과 기준에 맞는가?”
“전례가 있는가?”
해답을 만드는 공무원은 다르게 묻는다.
“이 문제가 왜 반복되는가?”
“주민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지금 제도 안에서 가능한 방법은 무엇인가?”
질문이 바뀌면 행정의 방향도 바뀐다. 질문이 좁으면 답도 좁아진다. 질문이 현장을 향하면 해답도 현장 가까이에서 나온다.
이제 공무원은 ‘처리자’를 넘어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과거의 공무원은 주어진 일을 정확히 처리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공무원은 지역의 문제를 읽고, 정책의 방향을 만들며, 주민의 삶을 설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물론 모든 공무원이 거대한 정책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공무원은 자기 자리에서 행정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민원 한 건을 대하는 방식, 보고서 한 줄을 쓰는 태도, 사업 하나를 설계하는 기준이 행정의 품질을 결정한다. 작은 판단이 쌓여 조직의 문화가 된다. 조직의 문화가 쌓여 지역의 신뢰가 된다.
정답은 필요하다. 행정은 법과 기준 위에 서야 한다. 그러나 정답만으로는 지역의 문제를 풀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공무원은 정답을 외우는 사람이 아니라, 기준을 이해하고 현실 속에서 해답을 만드는 사람이다. 규정을 핑계로 멈추는 사람이 아니라, 규정의 취지를 살려 길을 찾는 사람이다.
공직은 결국 사람의 삶을 다루는 일이다. 삶은 매뉴얼처럼 정리되지 않는다. 그래서 공무원에게는 더 깊은 판단, 더 넓은 시야, 더 단단한 책임감이 필요하다.
공무원은 정답을 제출하는 사람이 아니다.지역의 내일을 함께 풀어가는 사람이다. 좋은 행정은 언제나 그 질문에서 시작된다.
“규정상 가능한가?”가 아니라,“주민을 위해 무엇이 가능한가?”
그 물음 앞에서 공무원의 진짜 실력이 드러난다.
[지방정부티비유=티비유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