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도의 개선
우리나라의 선거법은 선거운동의 자유에 있어서 너무나도 규제적이다. 정당이나 후보자, 유권자들이 자유롭게 선택하여 전개할 수 있는 선거운동 방법이 거의 없다. 공영제적 요소가 너무 많고 강한 것도 문제이지만 선거운동을 하려는 자에게 선택지가 없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선거운동의 자유가 지나치게 규제를 받으면 결국은 다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으며 가장 손쉬운 방법인 후보자 비방이나 흑색선전 또는 유권자 매수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아진다.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할 공직선거에서 오히려 말 못하게 하고 못 움직이게 하는 것은 1994년 통합선거법의 ‘돈은 묶고 입은 푼다’는 제정 정신에도 부합되지 않는다.
당시의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 지법’은 이러한 정신에 입각하여 제정한다고 하였지만, 구체적으로는 여전히 선거운동의 자유는 규제적이며 선거운동 방법은 다양하지 못하다. 물론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의 엄격한 선거운동제도보다는 규제의 강도가 조금은 덜한 게 사실이다. 또한 수차례의 개정을 통하여 선거운동의 규제를 완화하는 조치가 있었으나 근본적인 규제 태도는 변하지 않고 있어 선거 부패의 위험성을 높이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공직선거에서 선거법 위반행위가 많이 발생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후보자나 정당, 유권자들이 정책을 포함하여 후보자 등의 장점을 국민에게 알릴 수 있는 시간과 방법이 너무 제약되어 있고, 정책 대결이 안 되기 때문이다. 정책선거가 안 되기 때문에 유권자에게 환심을 사기 위한 활동을 금품 제공 등으로 하는 것이며, 이러한 경쟁문화는 경쟁자 간에 상승효과를 가져와 더욱 타락하는 문제점이 있게 된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의 경우는 출발부터 문제였다. 즉 제헌의회의원선거에서 후보자들은 경쟁하는 방법을 잘 몰라서 상대 후보자에 대한 흑색선전, 허위사실 유포 등이 난무했으며, 확고한 정치적 이념이나 가치에 입각한 정책 경쟁이 아니라 흑백논리가 지배적이고 명망가 중심의 정치가 되어 그 출발부터 정책선거에 의한 공정선거는 기대할 수 없었다.
그 이후 권위주의 정권이 등장함 으로써 민주와 반민주로 나뉨에 따라 정책선거다운 선거는 존재하지도 못했고 존재할 수도 없었다. 오늘날의 정당은 선거운동에 있어서는 적극적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있어 공직선거에서 정당간의 가치와 철학, 정책 대결은 잘 보이지 않고 있다. 정당정치의 덜 성숙함도 문제이지만, 공직선거에서의 정당 간 정책 대결의 실종은 선거 부패를 상존시키는 동인의 하나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한편 국민들의 선거에 대한 회의나 무관심은 선거 부패의 주요 원인 중의 하나다. 유권자의 선거 참여 의지와 관련하여 정치에 대해 소외감을 느끼거나 선거를 통한 정치 변화와 발전에 대해 효능감을 느끼지 못하고 냉소할 경우 선거에 대한 참여 의지는 감소하고 결과적으로 투표율은 하락하게 된다. 유권자들이 보기에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원하는 바를 알지 못하고 있고 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또 어떤 사람을 선택해도 정치인이 되고 나면 결국 무능하고 부패하게 된다고 생각하게 되면 많은 정치 후보자 중에서 누군가를 고민하여 선택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이런 정치적 냉소 상태에 빠지면 역시나 쉽게 금품이나 향응 제공과 같은 선거 부패의 대상이 될 수 있다.
1. 선거운동 및 선거비용제도
선거운동의 자유를 규제하는 현행 선거운동제도는 선거운동의 종류를 다양화하고 그 기간을 더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국민의 입과 발을 푸는 방법으로 선거운동의 기회가 자유로워 지면 금권선거는 어느 정도 차단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선거운동의 기회가 확대되면 돈이 더 많이 든다. 따라서 선거운동 제도는 반드시 선거비용제한제도와 함께 개선되어야 한다. 선거비용의 제한으로 그 범위 내에서 후보자 간 또는 정당 간, 제3자(단체도 포함) 간의 기회 균등이 보장되 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선거운동제도와 선거비용제도에 관한 시각이 완전하게 바뀌어야 한다. 선거운동 방법의 규제로 선거운동의 공정을 담보하지 말고 그 전체 비용을 규제해 그 범위 내에서 선거 운동 주체들이 선택적으로 선거운동을 전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선거운동의 자유는 국민에게 되돌려 주고 대신에 선거비용을 제한하여 선거의 공정을 달성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선거운동 기간이 짧고 그 방법이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어서 국민인 유권자와 후보자간의 대면 기회가 턱없이 부족하고, 자신의 정책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없어 금품 제공 등으로 유권자를 매수하면 선거에서 승리할 수있다는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후보자와 그 가족 등의 ‘자산 변동에 대한 공개제도’ 도입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후보자등이 선거 부패행위를 하려면 본인이나 그 가족의 자산을 가지고 하거나 제3자의 도움을 받는 방법으로 하기 때문에 통제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후보자가 정해진 기간에 1000만원 이상의 현금을 거래 하거나 부동산을 처분하여 현금화하는 경우에는 이를 공개하거나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도록 하는 방안이 실시된다면, 선거 부패는 어느 정도 자제될 가능성이 있다.
2. 기부행위의 합리적 제한
현행 공직선거법에서는 기부행위 제한에 대하여 자세히 규정하고 있다. 즉 공직선거법 제112조에서 기부행위의 정의를, 제113조 이하에서 행위자별로 기부행위 제한규정을 두고 있다. 이러한 기부 행위 제한규정은 논리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현행 기부행위 제한규정은 포괄적인 제한금지규정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즉 모든 기부행위를 제한하면서 그 중에서 가능한 것을 열거하는 방식으로 법조를 만들어 놓았다. 이러한 규정 방식의 단점은 행위 주체의 모든 행위를 제한 금지하는 오류를 가져오고 그 범위가 너무 커서 형법상의 죄형법정주의 원칙에도 벗어나는 문제점을 안게 된다.
현행제도를 유지할 시 기부행위의 방식이 늘어나면 계속적으로 법률을 개정해야 하고 그 수는 엄청나게 많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따라서 현행의 포괄적 제한 금지 원칙에서 제한·금지할 행위를 열거하는 방식으로 제한규정을 바꿔야 한다. 그래야만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행위만을 규제할 뿐 나머지는 모두 허용되는 것으로 할 수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금권선거의 차단에 일정한 효과를 거두 고 있는 과태료제도, 포상금제도 등은 계속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
3. 정책선거 활성화
현행 공직선거법에서는 선거운동의 정의규정(제58조)을 두면서 포괄적으로 광범위하게 선거운동을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규제 위주의 현행 제도에 의하면 정책선거를 지향하는 어떠한 행위도 위법 행위가 될 소지가 많다. 한 마디로 현행 제도는 정책선거를 지향하고 있지 않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행제도에서 정책선거가 될 수 있도록 하려면 공직선거법 제 58조에서 ‘당선되지 못하게 하는 행위’는 삭제하고, 정책활동에 대하여는 정치행위로서 가능하도록동 조항의 각 호에 관련 규정을 신설하여야 한다. 전문가가 참여하는 ‘정치인 정책연구소’를 설치하는 것도 제도화하고 언론과 시민 단체 등의 참여하에 지역 단위에서도 정책 발표회 또는 정책 토론회가 활성화되도록 하는 제도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4. 선거 부패행위자에 대한 처벌 강화 및 신고 활성화
현행 공직선거법에서는 선거 부패 행위자가 공직선거에서 완벽하게 격리되지 않고 있다. 즉 선거범으로서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의 선고를 받고 그 형이 확정된 후 5년 또는 형의 집행유예의 선고를 받고 그 형이 확정된 후 10년을 경과하지 아니하거나 징역형의 선고를 받고 그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된 후 또는 그 형의 집행이 종료되거나 면제된 후 10년을 경과하지 아니한 자(형이 실효된 자도 포함)에 한하여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없게 되는데(공직선거법 제18조, 제19조), 이 경우 100만원 미만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자에 대하여는 처벌이 안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공직선거법상 매수 및 이해유도죄 위반인 경우 5 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고 (법 제230조), 기부행위의 금지 제한 등 위반죄의 경우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에 처하도록 하고 있어(법 제257조), 언제든지 100만원 미만의 벌금형이 부과될 수 있다.
따라서 선거 부패행위자와 흑색선전 등 허위사실 유포 행위자 등 중대범죄에 해당하는 선거범에 대하여는 위 대상에서 제외하여 해당 선거 범죄를 행한 경우에는 확실하게 격리 되도록 제도적 장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인 입법방법으로는 선거범으로서 선거 부패 사범인 경우에는 선거권이 없는 자로 규정 하거나 100만원 미만의 벌금을 받더라도 선거 부패 사범의 경우에는 선거권이 없도록 관계 규정을 개정하면 된다. 물론 이 경우 흑색 선전 등 중대 선거사범의 경우도 같은 방법으로 규제하면 선거 범죄의 규제는 일관성을 갖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처벌규정을 강화하는 경우에는 선거 부패 사범은 현재에 비하여 획기적으로 줄어 들 수 있다. 왜냐하면 한 번이라도 발각되면 공직선거에 나설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당선인의 선거 범죄로 인한 당선 무효(법 제264조)인 경우에도 선거 부패로 인한 100만 이하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때에도 포함되도록 하고, 선거 사무장 등의 선거 범죄로 인한 당선 무효(법 제 265조)의 경우에도 선거 부패로 인한 경우에는 똑같은 방법으로 포함하여야 한다. 이 경우 비용반환도 예외가 아니다(법 제265조).
선거 부패 사범에 대한 신고의 활성화를 통한 선거 부패를 예방 및 방지하기 위해서는 현행의 포상금 제도에 대하여 그 규모(최대 10 억원) 및 그 지급 대상을 더 확대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 금품선거 관련 인터뷰 조사 결과에 의하면 응답자의 대부분이 포상제도의 활성화를 주장하고 있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선거 부패에 대한 정당의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서 정치자금법상 정당에 지급하는 보조금의 감액제도를 신설할 필요가 있다. 즉 정당 추천 후보자가 선거 부패행위로 당선 무효 된 경우를 포함하여 정당의 당원이 공직선거에서 선거 부패 사범으로 확정된 경우 에는 그에 해당되는 금액의 10 배를 해당 정당에 지급하는 보조금에서 감액하도록 한다. 이상의 제도 개선안을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위 원고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위탁 연구를 통해 (사)한국정치법학연구소에서 발표한 내용을 일부 발췌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