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계동 경기도 국장
우연히 1960년대 발간된 철도청 책자에서 ‘참여’와 ‘혁신’이라는 용어를 발견하고, 참여와 혁신은 어느 시기에만 특별히 요구되는 것이 아닌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꾸준히 추구해야 할 가치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아니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더 중요시될 가치일 것이다.
페이스북, 유튜브, 구글 등 세계를 주도해 나가고 있는 기업들이 자신들의 플랫폼을 구축하여 세상과 사람, 사물을 연결하는 ‘방식의 혁신’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이다.
얼마 전 중앙부처 자문회의에 참석하였는데 논의되었던 주제는 크게 세 가지로 ‘국민참여 플랫폼 활성화’, ‘공공서비스 재능봉사 활성화’, ‘크라우드펀딩·사회성과 연계채권(Social Impact Bond)을 통한 지역문제 해결’로 우리 사회가 직면한 과제에 대한 해결방법을 얻고자 함이었다.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지자체 공무원 입장에 서 정부의 역할과 역량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주제에서 알 수 있듯이 행정 역시 국민 참여를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다양한 ‘방식의 혁신’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저성장, 고령화, 저출산, 고실업률, 규제강화, 복지비 증가에 따른 재정부담 등 공공분야의 뉴노멀 시대를 맞이하여 행정의 영역보다 역할과 역량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민간 부문의 참여와 협업 없이는 사회 문제 해결이 어려워졌다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중앙부처의 방향과 접근방식은 큰 틀에서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러한 혁신적인 방식이 실행되는 현장의 모습은 어떠할까?
행정 현장에서는 때때로 목적과 수단이 전도될 때가 있다. 참여를 통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본질적인 가치는 희석되고, 도입하려는 제도 자체를 성공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플랫폼의 시대를 맞아 중앙과 지방 정부, 정부 산하 공공기관 할 것 없이 각자 그들만의 플랫폼을 만들어 참여를 제고하고, 소통하려고 한다.
엄청나게 많은 플랫폼을 만들고 있지만, 겉모양만 예쁘지 아직도 정부 3.0에서 말하는 맞춤형 소통이 아닌 일방 홍보적 성격에 머물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국민들이 찾아와 주기를 바라고 있으나, 정작 대다수 국민들은 그것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가수 싸이는 CD를 판매하는 기존의 방식을 버리고, 음원을 유튜브에 무료로 공개함으로써 공연이나 광고를 통해 더 많은 수익을 올리는 한편,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하였다.
플랫폼의 혁신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마케팅 전략을 짠 것이다. 몇 년 전 페이스북에서 한 미국여성이 ‘Help me!’라는 팻말 하나를 들고 ‘좋아요’를 많이 눌러주면 엄마가 담배를 끊는다고 약속했다고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이제 누구라도 비용을 들이지 않고 간편하게 세계인들과 소통할 수 있고 참여할 수 있는 시대이다.
정부도 굳이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기보다는 잘 만들어놓은 민간의 플랫폼을 사용하면 된다. 민간에서 일어나고 있는 방식의 혁신을 ‘활용’하여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목표와 가치에 집중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자원봉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원봉사 제도가 많이 활성화되고 있 지만, 한편에서는 스펙을 쌓기 위한 시간 채우기 도구로 이용되고 있으 며, 자원봉사자가 주체가 되어야 하는데 공공기관 직원들의 허드렛일 이나 귀찮은 일을 대신 처리해 주는 경우도 있다.
시군 자원봉사 시스템을 들여다 보면 자원봉사시간과 자원봉사자 숫자도 부풀려지고 있다. 아직도 공직사회가 본질과 가치보다는 수단과 형식, 그리고 실적과 건수 중심의 기존 관행을 쉽게 버리지 못한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제점이다.
시흥시 자원봉사센터가 학생들과 단순 노력봉사가 아닌 ‘기획봉사’ 라는 관점에서 접근한 사례를 들어 보겠다. 불법주차가 심각한 지역에 사는 학생들이 스티커 대신 정성들여 쓴 ‘손편지’를 자동차 앞창에 놓은 것이다.
거기에서 어린 학생들의 따뜻한 감성과 창의적인 기획을 통해 지역의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았다.
한국 사회도 선진국의 문턱에 있다. 진정성을 기반으로 한 참여를 통해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자원봉사시간과 자원봉사자 수 등 양적인 측면으로 치우쳐 가고 있는 제도와 시스템의 질적인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공공부문에서 다양한 방식의 혁신을 통해 본래의 목적인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부 역할에 대한 인식변화가 선행 되어야 한다.
공공서비스의 직접 제공자가 아닌 민간부문이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에 더해 하드웨어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소프트파워 시대에 어울리는 시스템과 제도로 혁신해 나가야 한다.
앞서 언급한 크라우드 펀딩은 민간에서 활발하게 진행 중이나 행 에서는 아직도 낯선 제도이며, SIB(사회성과연계채권)는 많은 공무원들이 용어조차 들어보지 못한 제도일 것이다.
플랫폼과 소프트파워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통해 자신의 분야에 적용시킬 수 있는 행정전문가가 많지 않다. 공무원 채용방식의 혁신이 요구되고, 우수한 전문가가 행정에 들어와서 성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하는 이유이다. 소프트파워 시대에 핵심은 사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