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시즌 2: 스가 요시히데

2020.10.04 11:40:19

 

퇴근 후 편의점에 들러 맥주 한 캔과 주전부리를 사는 것은 마치 하루를 마무리하는 신성한 행위였다. 귀갓길에 집 앞 미니스톱에 들러 아사히 맥주와 그날그날 당기는 과자를 사면 열심히 보낸 하루가 보상되는 것 같은 기분이 절로 든다. 하지만 작년 일본 불매운동이 발발한 이후 집과 가까운 미니스톱 편의점을 가지도,아사히 맥주를 사지도 않는다. 그 이유는 바로 얄미운 일본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일본 정부가 반도체·디스플레이 등의 생산에 필수적인 품목의 한국 수출규제를 강화하는 조치를 시행한 데 이어, 지난해 8월 2일에는 한국을 일본의 백색국가 명단(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시켰다. 이에 우리나라 국민은 분노하며 ‘No Japan’이라는 불매운동을 시작했고, 일본 제품은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심지어 우리나라 정부도 이를 거들면서 한일 관계는 깊은 골짜기에 빠지기 시작했다.

 

일본 우파 성향이 짙은 아베 총리는 정권을 잡은 뒤부터 지속적으로 한국에 강경한 대응을 했다. 2013년에는 야스쿠니 참배를 강행했고,지속적인 독도 영유권 주장 및 독도 이야기를 교과서에 넣기도 했다. 심지어 2014년에는 일본 정부가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말해 한국 정부는 이례적으로 강한 어조를 써 비판했다. 이러한 태도에 대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대다수 일본 언론은 아베 내각은 보수 유권자의 결집을 노리고 있으며, 이를 위해 활용되는 수단이 바로 ‘한국 때리기’라고 말했다. 지난해 일본에 ‘대한경제제제’도 일제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대한민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이해되고 있다.

 

궤양성 대장염! 아베 시즌1 종료 
이렇게 우리의 골머리를 앓게 한 아베가 임기를 약 1년 앞두고 오래도록 앓던 지병 궤양성 대장염을 이유로 지지난달 사임 의사를 밝혔다. 이후 일본 정부는 즉각적으로 차기 총리 선출 절차에 돌입했고 9월 14일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대한민국 정부의 대통령비서실장 및 국무총리, 국무조정실장, 그리고 청와대 대표대변인을 합한 직책)이 아베 총리의 후임으로 자민당 신임 총재에 선출됐다고 NHK가 보도했다. 한일 관계를 망가뜨린 아베가 사임한다는 소식에 한일 관계 회복이라는 희망의 꽃이 잠시 피었지만, 신임 총리로 선출된 스가 요시히데는 외교에 있어 아베를 따르겠다고 발언했다. 일본의 새로운 리더 스가 요시히데, 그는 과연 누구이고 아베와는 어떻게 다를까?

 

아베 VS 스가
스가 요시히데와 아베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먼저 아베는 강한 카리스마와 집안 배경을 앞세워 어린 나이에 정치적 입지를 굳혔는데, 외할아버지는 일본 제1당인 자민당 체제를 확립한 인물이고 친할아버지는 중의원, 아버지는 유력한 총리 후보기도 했던 외무장관이었다. 아베는 아버지 아베 신타로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의 지역구인 야무구치현 제1선거구에 출마해 당선하며 국회 입성했다. 


초엘리트 코스를 밟은 아베와 달리 스가의 집안은 정치적 배경이 없다. 아버지는 농부였고 어머니는 교사였다. 시골 아키타 출신의 스가는 고등학교 때 도쿄로 와 판지를 만드는 공장과 어시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또 돈이 없다는 이유로 대학 진학을 2년 늦추기도 했는데 대학을 가서도 꾸준히 아르바이트했다. 이후 스가는 정치에 뜻을 품고 법정대학 선배의 인맥으로 자유민주당 중의원의 비서가 돼 11년 동안 근무하면서 차근차근 정치 경력을 쌓았다.

 

아베는 대중에게 강하게 어필해 일 처리를 하는 반면 스가는 은밀한 협상가이다. 철저한 표정 관리로 속마음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으며 위기 관리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이 자자하다. 실제로 민감한 질문을 받아도 동요하는 법 없이 “논평을 삼가겠다”, “말하는 것을 삼가고 싶다”고 일축하거나,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도 질문의 핵심과 거리가 있는 답변으로 대신하면서 기자들의 진을 빼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또 그는 엄청난 노력파인데, 요코하마 시장에 출마했을 때는 유세를 너무 많이 다녀 구두를 세 켤레나 바꿔야 했다.

 

아베=스가, 아베 시즌2 시작!
대다수 일본 정론가는 스가가 정치가 집안의 배경 없이 꿋꿋이 일어섰고 또 오랜 정치 활동 중에도 특별히 한 파벌에 속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자신의 입지를 굳혀갔다고 칭찬하는 것을 보면 스가는 아베와 확실히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가 총리가 되면 한일 관계도 바뀔까? 답은 ‘No!’이다. 스가는 아베의 아바타일 가능성이 크며, 실제로 이번 내각 인사에서 아베 내각 장관들을 대부분 유임시켰고, 심지어 방위상에는 2차 아베 정권 출범 이후 외무부(副)대신을 거쳐 방위대신 정무관(차관급)과 중의원 안보위원장 등을 역임한 아베 전 총리의 친동생인 기시 노부오(岸信夫·61세) 자민당 중의원 의원이 발탁됐다.

 

8월 6일 산케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스가는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 문제와 관련해 아베 내각의 강경 입장을 반복했고 한국에서 강제 징용 사건 관련 대법원 판결에 따른 조치가 들어갈 시 모든 보복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발언했다. 이 추세를 보면 한일 관계가 악화되면 더 악화되지 호전될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호전되지 않는 한일 관계는 분명 우리에게도 큰 피해를 주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총 교역의 15.2%는 일본과 이뤄졌고, 일본의 총 교역 중 11.4%는 한국과 이뤄졌다. 양국이 이처럼 긴밀한 경제 관계를 맺고 있는 상황에서 무역 보복전을 벌이는 것은 양측 다 상당한 피해를 입는 것이 불가피하다.


밉지만 함께 가야 하는 이웃, 일본
복잡한 국제사회에 사는 일본과 우리는 이웃사촌이다. 이제는 양국이 서로 품어주면서 정치적 갈등이 경제적 갈등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도록 노력해야 한다.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한일 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밤은 오랜만에 아사히 맥주로 하루를 마무리하려 한다.

최원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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