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볼 게 뭐 있어? 좋아서 좋아하는 건데

2020.12.11 15:08:15

취미생활 통한 자아실현 욕구 높아진 요즘 2030…
모르는 이들과 취향 주고받으며 새로운 관계 형성
하는 일 별개로 ‘부캐’ 만들어 ‘1일 1문화’ 어떤가요

 

글 김보준 (사이드 프로젝트 ‘1일 1문화’ 방장)

 

※ 편집자 주: ‘1일 1문화(https://bit.ly/3oxIWkv)’ 프로젝트를 통해 청년 회원들이 서로 부담없이 취향을 공유하는 온라인 공간을 운영하는 김보준 씨는 아래 글에서 ‘좋아하는 것을 통한 선한 영향력’을 말한다. 그는 MZ세대가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만들어 나가는 느슨한 공동체의 새로운 가능성을 꿈꾼다.

 

바야흐로 ‘부캐’ 전성시대다. ‘부캐’란 원래 ‘본(本) 캐릭터’와 별개로 만들어둔 ‘부(sub) 캐릭터’를 일컫는 말이다. 최근 방송에서 이효리, 유재석 등이 ‘부캐’를 내세우며 널리 알려졌다. 직장에서 나, 퇴근 후의 나, 온라인의 나 모두 다른 자아를 갖고 있는 셈이다.

 

나도 부캐를 갖고 있다. 내가 운영하는 <1일 1문화>라는 이름의 사이드 프로젝트에서 직업과 별개로 새로운 자아를 만든 것이다.

 

서로 취향 공유하고 알려주는 ‘1일 1문화’ 프로젝트
<1일 1문화>는 자신이 좋아하고 즐기는 걸 부담 없이 소개하고 취향을 공유하는 온라인 모임이다. 참가자들은 2주에 한 번 꼴로 두 달 동안 자신이 관심 있는 문화 콘텐츠를 소개한다. 내가 모임을 꾸려가며 알게 된 것을 공유하고자 한다.

 

첫째, 사람들은 기존 취향을 유지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색다른’ 무언가에 굶주려 있다. 문득, 듣던 음악만 듣고 같은 장르의 영화만 소비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러한 흐름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사람들이 원하는 건 전혀 새로운 무엇이라기보다 낯익지만 낯선, 익숙하지만 새로운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재즈를 좋아했지만 비슷한 음반만 반복해서 듣던 친구가, 펑크적 요소가 함께 담긴 재즈 퓨전 밴드 ‘스나키 퍼피(Snarky Puppy)’의 앨범을 추천받은 것은 말 그대로 ‘취향저격’이었다.

 

콘텐츠 통해 넓혀가는 안목…온라인 관계는 ‘선 안 넘게’
자신의 취향을 공유하면 사람들은 비슷한 결의 콘텐츠를 추천해주곤 한다. 내가 아일랜드 출신 싱어송라이터 아우스게일(Asgeir)을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한 참가자는 미국 인디 포크 밴드 본 이베어(Bon Iver)를 추천해줬고 나도 이후 열혈팬이 되어 본 이베어의 내한공연에 가기도 했다. 아녜스 바르다의 2017년 다큐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의 팬이었던 한 참가자는 모임에서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를 발견했다. 최애 가수가 피처링으로 참여한 곡에서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기도 하고, 혼자서는 발견하지 못했던 그의 유튜브 영상을 추천받아 즐기기도 한다.

 

둘째, 사람들은 느슨한 관계를 원한다. 주로 관태기(관계+권태기)를 느끼는 이들이 가입과 탈퇴가 자유롭고 주변 사람의 눈치 볼 필요 없는 모임에 몰리고 있다. 특히, MZ세대는 관계에 대한 기대치가 높지 않아 온라인 상의 누구와도 서슴없이 관계를 잘 맺는다.

 

과거 ‘통기타’, ‘청바지’ 낭만이 아니다. 나다움의 느슨한 연대가 우리다움으로 나아가고 있다. 정해진 틀에 갇히지 않고, 소규모로 쪼개져 고유의 문화를 형성해 간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이런 말을 남겼다. ‘전통’이란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지금 우리는 개개인이 문화를 발전시키는 주체가 되어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MZ세대가 주축이 된 <1일 1문화>에서 사람들은 세 가지 약속을 지키고 있다. ①자기소개 하지 않기 ②채팅창 답변 의무감 느끼지 않기 ③오프라인 모임 지양. 실제로 참가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걸 부담 없이 소개하고, 굳이 반응하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를 큰 장점으로 꼽는다.

 

활발한 ‘취향공유 플랫폼’
셋째, 사람들은 취향을 공유하고 싶어 한다.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취향이 잘 맞는 사람과 만날 때 즐거움을 느끼는 건 시대와 사회를 초월해 공통으로 나타나는 문화 특성이다. 21세기형 문화살롱은 이러한 특징을 반영한 트렌드로서, 함께 관심사를 나누고 즐기는 크고 작은 모임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1일 1문화>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을 소개하며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고민하고, 타인의 취향을 구경하며 내 취향을 발견하기도 한다. 누구도 취향을 강요하거나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타인의 추천콘텐츠를 이용할지 여부는 자기 마음이지 필수가 아니며, 각자의 에너지를 100%라 가정할 때 1%만 이곳에 쓴다. 남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고민하기보다 온전히 내가 요즘 끌리는 것, 지금 좋은 것에 집중하게 된다.

 

*

이러한  <1일 1문화>를 지속하는 가장 큰 힘을 꼽는다면, 좋아하는 것으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이걸 싫어해’라 말하며 반목하지 않고, 타인의 취향을 깎아내리며 자기 취향의 우월함을 선전하지 않는다.

 

사회에서 이러한 표현과 마음들이 얼마나 많은 갈등을 만들어내는지 생각해보자. 자신의 선택이 아닌 결과를 두고 서로가 상처를 주고받는다. 출신 지역에 따라 성격이나 기질에 차이가 있다고 말하며, ‘난 그쪽 사람들이 싫어’라고 쉽게 말한다. 키를 키우는 특별한 해결책이 있는 게 아닌데, 키 작은 사람이 싫다고 서슴없이 내뱉는다.

 

예민함과 섬세함으로 세상을 더 낫게 만들자
사람들에게 배제되지 않는 특성, 그러니까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는 유리한 조건이나 혜택을 우린 ‘특권’이라 부른다.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저자 김지혜 씨는 특권을 가졌다는 신호로 ‘큰 노력 없이 신뢰를 얻고, 나를 있는 그대로 표현해도 안전하다고 느끼며,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할 수 있다는 느낌’을 언급한다.

 

특권을 가진 이들은 자신의 편견을 쉽게 내뱉고, 편견의 피해자는 무기력이나 분노의 감정을 느낀다. 그렇게 갈등이 깊어진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예민함을 사람들과 벽을 쌓는 데 낭비하기도 한다. 예민함을 더 좋은 무엇을 발견하는데 사용하지 않고, 자신이 느끼는 불편함을 토로하는 데 사용한다. ‘프로불편러’란 단어는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게 아닐까. 예민하게 불편함을 감지하고 해결책을 마련해낼 수 있는 힘이 언젠가부터 혐오와 배제를 위한 무기로 바뀐 것 같다.

 

내가 꿈꾸는 <1일 1문화>의 모습은 스스로 좋아하는 것들을 꾸준히 좋아하며 그 결을 잘 다듬어 나가는 문화다. 나의 바람처럼 우리 사회도 좋아하는 것으로 자신의 취향을 이야기해 나갈 수 있길. 싫어하는 것을 많이 말하기보다, 좋아하는 것으로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 나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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