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으로 세상을 피곤하게 살아가기

2020.12.26 15:31:39

어느 날 동생이 데려온 강아지 한 마리
내가 동물을, 고기를, 주변을,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바꿔…
서로 평등하게 의견 나누고 ‘불편함’ 함께 고민하게 돼
세상 바꾸기, 작은 것부터 다시 바라보는 데서 시작

 

 

글_ 이문경 (출판 편집자)

 

2년 전 가을, 동생이 빨간 코트 안 깊숙이 강아지를 품고 집으로 돌아왔다. 박스에 갓 태어난 새끼들을 두고 팔던 한 할머니를 지하철역 앞에서 만났다고 했다. 동생은 박스 옆에 쭈그리고 앉아 꼬물거리던 강아지들이 한 마리씩 사라지는 것을 구경했다. 해가 지기 시직하면서 박스 안이 점점 비어 가더니 나중에는 한 마리만 혼자 남아 추위에 낑낑거렸다고 한다. 주변이 꽤 어둑해진 상황이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호객하는 일도 이제는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할머니는 동생을 타깃으로 삼았다. 5만 원인데 3만 원에 가져가라고, 얼마나 영특한 놈인지 이 좁은 박스 안에서도 오줌은 구석에만 눈다고 했다. 동생은 동물이라면 가리지 않고 좋아했지만, 간호사로 근무하며 병원 앞 작은 고시원에서 살고 있는 상황이었다. 도무지 키울 수 없는 환경 탓에 두 손을 저으며 사양하자 3만 원이 2만 원으로, 2만 원이 1만 원으로 줄어들었다. 그때까지도 동생은 이 ‘작은 털뭉치’를 데려올 생각을 하진 않았다. 자리를 뜨려는 그때, 할머니가 박스 안에서 개를 꺼내 동생에게 안겼다. “그럼 공짜로 가지든가!” 당황한 동생이 채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할머니는 지하철역 계단을 황급히 내려갔다. 태어난 지 얼마 안된 그 개는 그렇게 우리 집에 왔다.

 

작은 새 식구가 가져온 변화

개를 만난 후로부터 내 삶은 천천히, 하지만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바뀌었다. 거실에 굴러다니던 플라스틱 조각을 개가 먹은 걸 알게 된 날, 개를 안고 동물병원에 달려가야 했다. 누군가가 죽을까봐 불안하고 걱정되어 엉엉 울어 본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산책하며 길바닥을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개의 관심을 살 만한 담배꽁초나 비닐들, 상한 음식물은 곳곳에 흩어져 있었고, 실제로 개는 그 쓰레기들을 눈 깜짝할 사이에 먹어 버려 내 속을 태웠다. 강아지는 동생의 남자친구 집과 나의 집을 오고가며 지냈는데, 그러다 우리 세 사람은 함께 살기 시작했다. 개가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서였다. 반려견에 관한 책을 읽고,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았다. 개에 대한 관심은 길고양이에게, 소와 돼지, 닭, 오리, 사슴과 늑대, 새, 수많은 해양생물에게로 옮겨 갔다. 인간의 것이 아닌 동물의 언어가 궁금해졌고, 그들의 표정과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렇게 개 한 마리를 만나고 사는 곳, 생활 방식, 관점 등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하지만 개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불편함에 대한 감각이다. 고기를 먹으면 미각이 살아나는 게 아니라 도살을 목적으로 동물이 사육되고 있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육식을 주식으로 하는 주변인들과 이야기할 때나 SNS에서 음식 사진을 마주할 때는 ‘내가 혹시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다. 같은 음식이나 제품도 비건 옵션이 들어간 것은 좀 더 비싸니,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우유나 계란이 들어간 음식이나 플라스틱 제품을 선택하게 될 때도 있다. 사회초년생으로서 회사에 요구할 수 있는 적정 선도 있다. 가까운 이들은 나의 상황을 이미 충분히 존중해주는 데, 지금보다 더 자주 비건 음식점을 가자거나 함께 채식을 실천해보자고 말하는 것이 어렵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은데 그것마저 제대로 하지 못할 때. 그럴 때면 마음에 까끌한 돌 하나를 넣어 놓은 것 같다. 이번 달은 지출이 많으니 비건 제품 구매를 다음 달로 미룰 때, 나는 고기를 빼고 먹으면 된다고,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종이컵을 쓰겠다고 말할 때마다 마음에서 이 돌이 덜그럭거린다. 돌에 부딪혀 긁히고 너덜너덜해졌다. 낯설고 또 날선 이 불편한 감각. 그것이 나를 어제보다 오늘을, 오늘보다 내일을 더 피곤하게 만들었다.

 

일상에서 하나씩 윤리적 실천… 점진적 채식 지향하는 ‘세미 비건’도 방법

때마침 동물권에 관심이 있고 채식을 실천하는 친구들이 주변에서 늘어났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비건(Vegan; 육류와 유제품 등을 먹지 않고 현재의 산업구조에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는 사람들)에 대해 알아갔다. 흔히 ‘유연한 채식주의’로 분류되는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 비건이지만 종종 육식도 병행하는 경우)에서 폴로 베지테리언(Pollo-vegetarian; 유제품과 일부 가금류, 달걀, 생선은 먹는 사람)으로, 이제는 우유 대신 두유를 먹으며 페스코 베지테리언(Pesco-Vegetarian; 닭고기 같은 가금류를 가급적 배제하고 해산물만 먹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불편함이 생활의 기준이 되기 시작할 즈음, 내가 원한 것은 이해와 공감이었다. 동물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환경, 완전한 채식주의자를 꿈꾸는 이유에 대해 귀를 열어주고 함께 서로를 끌고 나갈 사람이 절실했다. 그제야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살장에 들어가기 직전 트럭에 실린 돼지들에게 물과 삶은 알감자를 주고, 환경보호와 동물보호를 위해 팝업스토어를 열어 한식(韓食) 비건 음식을 선보이고, 마트나 음식점, 아쿠아리움에서 종차별주의(speciesism; 인간에 의해 동물들의 차별이나 착취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는 사고방식. 윤리학자 피터 싱어는 동물도 고통을 느낀다면 인간과 도덕적으로 평등하다고 주장함)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기후위기의 경각심을 알리고자 혼자 또는 다른 이들과 함께 피켓을 든 사람들. 그들은 대체로 나보다 어리거나 또래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에 관한 글을 쓰고 SNS에 소식을 올리는 이들도 눈에 들어왔다.

 

같은 고민 나누는 사람들… 실천할 수 있는 힘 받는다

동물권, 기후위기에 주목하는 비정부기구(NGO)의 단톡방에 입장하고 SNS와 유튜브 채널을 팔로우 하기 시작했다. 채식에 필요한 팁을 서로 공유하고, 종차별주의를 논의하는 소모임을 꾸리고, 시위 참여를 독려했다. 한 주제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이 있을 때는 상대방의 입장을 충분히 들어주었다. 그곳에서 나는 나처럼 동물을 만나고 채식을 시작하고, 지금 환경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이야기를 듣고, 나랑 함께 고민하고, 같은 방향의 고민을 공유했다. 마음에 같은 흠집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의 시선을 넓혀주었다. 어제보다 오늘 더 실천할 수 있는 힘을 나는 그곳에서 얻었다.


오늘도 나는 개와 산책하고, 개와 부딪히며 놀고, 함께 자고 깬다. 개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필요하거나 필요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개의 언어를 읽기 위해 더 노력하고 싶다. 자연과 인간의 평등한 공존, 종차별주의 철폐를 위해 더욱 더 동물권과 환경보호, 기후위기에 대해 알아가고 실천하려 한다. 그때 ‘불편함’이 필요하다. 나는 왜 고기를 먹으며 불편한가? 나는 왜 트럭에 실려가는 소와 돼지가 불편한가? 나는 왜 해양생물이 수조에서 피 흘리는 모습이 불편한가? 나는 왜 도살 장면이 불편한가? 나는 왜 가른 새의 배에 담긴 쓰레기들이 불편한가? 나는 왜 기후위기 운동가들의 말이, 동물도 생명이라는 활동가들의 말이 불편한가? 반문하다 보면 나름의 답을 찾아가게 된다. 그 과정 자체가 우리를 만들어 준다. 그리고 행동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이렇게 묻는다. 그들의 행동을 사람들은 왜 불편해하는가? 그럼에도 그들은 왜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는가? 그래야만 그들의 행동과 연대에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고 함께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한참이나 부족한 나는 앞으로도 이 불편함의 감각을 더 날 서게 만들고 싶다. 다시 질문하고 또 답을 찾고 행동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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