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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 해외사례

에스토니아, 서류를 다시 내지 않는 나라 [월간 지방정부 8월호 기획]

AI 데이터 연결로 행정 시간 줄인 디지털 정부

 

행정서비스 99%를 온라인으로 바꾼 나라

에스토니아는 세계를 대표하는 디지털 행정 국가로 꼽힌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2024년 말 모든 정부 서비스를 온라인으로 이용할 수 있는 체계를 갖췄다고 밝혔다. 혼인과 이혼도 신청 절차가 온라인화됐으며, 각 기관의 데이터는 국가 데이터 교환망인 X-Road를 통해 연결된다. 에스토니아는 디지털 서명의 공동 활용으로 국내총생산(GDP)의 최소 2%에 해당하는 비용을 절감하고, 근로자 1인당 연간 약 5일의 시간을 아끼는 것으로 추산한다. 데이터 연계로 절약되는 노동시간도 초기에는 연간 820년 이상으로 평가됐으며, 최근 공식 자료에서는 2,000년 이상으로 제시된다. 개인의 온라인 세금 신고에는 약 3분이 걸리고, 기업도 통상 2~4시간 안에 온라인으로 설립할 수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발간한 「2023 디지털 공공행정 팩트시트: 에스토니아」도 에스토니아가 상호운용성 분야에서 강한 성과를 내고 있다고 평가한다. 상호운용성이란 부처와 기관이 서로 다른 정보시스템을 사용하더라도 필요한 데이터와 서비스를 연결해 함께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에스토니아는 법적·조직 적·의미론적·기술적 상호운용성 등 대부분의 평가 영역에서 최고점을 받았고, 효과성·효율성 평가에서도 유럽연합의 평균을 웃돌았다. 이는 디지털 행정이 온라인 민원 창구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기관 간 데이터와 업무 절차를 연결해 행정의 작동 방식을 바꾸는 일임을 보여준다.

 

한 번 낸 자료는 다시 요구하지 않는다

에스토니아의 경쟁력은 기술 자체보다 데이터 구조와 행정 원칙에 있다. 핵심은 한 번 제출한 자료를 다시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처와 기관이 기본 데이터를 공동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기 때문에, 시민과 기업은 같은 정보를 여러 번 제출할 필요가 줄었다. 공무원도 부서마다 비슷한 서식을 반복 작성하거나 같은 자료를 다시 입력하는 비효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전자화보다 중요한 것은 데이터 연결이다

에스토니아는 기존의 종이 문서를 전제로 설계된 행정 절차를 디지털 기준으로 다시 짰다. 종이 없는 행정과 전자결재가 예외가 아니라 기본이 되었고, 민원인은 한 번의 신청으로 여러 서비스를 처리하는 원스톱 경험을 얻었다. 공무원은 반복 입력과 단순 처리에 쓰던 시간을 줄이고, 정책 분석과 문제 해결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할 수 있게 됐다. 결국 빠른 행정은 친절한 직원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같은 데이터를 다시 만들지 않게 하는 시스템에서 나온다.
 

한국 지방정부에 주는 시사점

에스토니아에서 배워야 할 것은 분명하다. 행정 속도는 직원의 헌신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시스템이 느리면 공무원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민원인은 기다릴 수밖에 없다. 먼저 해야 할 일은 부서별 중복 보고 서와 중복 입력 항목을 줄이는 것이다. 한 번 입력한 자료를 여러 부서가 함께 쓰고, 같은 증빙서류를 반복 제출하지 않도록 행정 데이터의 연결 기준을 세워야 한다.

 

종이 없는 회의와 전자결재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존의 복잡한 절차를 그대로 둔 채 문서만 전자화하면 속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행정절차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민원인 이 무엇을 여러 번 제출하는지, 공무원이 어떤 자료를 반복 입력하는지, 부서 간 어떤 정보가 막혀 있는지부터 찾아야 한다.

 

지방정부는 우선 인허가, 복지, 보조금, 세금, 민원 처리처럼 반복 자료 제출이 많은 분야부터 점검할 수 있다. 부서별로 흩어진 데이터를 연결하고, 공동으로 활용 가능한 표준 항목을 만들며, 한 번 접수된 자료를 공유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에스토니아 사례는 디지털 행정의 핵심이 홈페이지를 잘 만드는 데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진짜 혁신은 시민과 공무원 모두에게 같은 일을 다시 하지 않게 만드는 데 있다.


[지방정부티비유=최원경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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