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는 행정 효율성과 시민 신뢰도 모두에서 유럽 최상위권을 자랑하는 국가이다. 특히 지방정부의 자율성이 강하고, 공공정책의 설계 과정에서 ‘실증’과 ‘시민 참여’가 중시된다. 오르후스시는 이러한 덴마크 행정문화의 정수라 할 수 있는 ‘LAB@Aarhus(랩 앳 오르후스)’라는 실험 기반 행정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도시 전반의 정책 결정 과정을 실험 기반으로 구조화한 선도 사례다. 오르후스는 인구 약 35만 명의 중형 도시이지만, 덴마크 내에서 젊은 층 유입이 가장 활발하고 스타트업과 대학 연구기관이 밀집한 지역이다. 도시의 역동성은 행정 문제 해결 방식에도 유연함과 실험 정신을 요구했다. 기존의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형식적인 행정 체계로는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문제를 충분히 감당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그 결과 2014년부터 ‘LAB@Aarhus’가 본격 운영되기 시작했다. LAB@Aarhus는 단일한 부서가 아니라, 도시 내 다양한 부서, 대학, 시민단체, 디자인 전문가, 기술기업, 정책학자 등이 느슨하게 연결된 플랫폼이다. 이곳에서는 매년 수십건의 정책 실험이 기획되고, 실제로 짧게는 2주, 길게는 3개월에 걸쳐 제안 – 설
핀란드는 유엔아동권리협약(UNCRC)을 가장 철저히 이행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다. 그 중에서도 헬싱키시는 아동을 단순히 ‘정책 수혜자’가 아닌, ‘정책 결정과정의 공동 주체’로 보고 있으며, 이 철학을 기술과 결합하여 ‘디지털 아동권리 플랫폼’을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 시작은 매우 단순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는 곧 실질적인 정책 변화로 이어졌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도시에서 생활하지만, 그들이 느끼는 불편과 아이디어는 정책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인식이었다. 이를 위해 헬싱키시는 회의나 위원회에만 의존하는 기존 참여 모델을 넘어서, 디지털 기술 기반의 상시 참여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이 플랫폼은 단지 아이들의 의견을 모으는 공간이 아니라, 아이들이 제안한 내용이 실제 행정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처리되고 반영되는지를 모두 추적 가능하게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즉, 디지털 기반의 ‘아동 중심 의사결정 체계’인 셈이다. 이 플랫폼은 9살 이상 헬싱키 시민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제안은 단문 형식이거나 음성 녹음, 사진, 그림 첨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입력 가능해 어린이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이 과정은 누구나 열람 가능
2010년대 중반부터 암스테르담은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급부상하며, 단기 숙박과 차량 공유 서비스의 이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에어비앤비, 우버, 스냅카(SnappCar), 그린휠즈(Greenwheels) 등 다양한 플랫폼이 시민들의 일상 속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편의성과 유연성은 높았지만, 곧바로 도시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문제들이 드러났다. 특히 주거지역의 소음이나 쓰레기, 주택가격 및 임대료 상승, 상업용 전환으로 지역 상권의 공동화, 차량 공유의 증가로 도로 혼잡과 불법주차 등의 문제들이 심각하게 대두되었다. 도시는 더 이상 플랫폼 경제를 단순한 ‘혁신 서비스’로 바라볼 수 없었다. 암스테르담시는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공유경제 자체를 통제와 육성의 균형 속에서 제도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그 결과 2017년, 세계 최초 ‘공유경제 도시조례(Amsterdam Sharing Economy Ordinance)’를 발표하고 시행에 들어갔다. 암스테르담의 조례는 민간 플랫폼을 공공 규범 안으로 흡수하는 모델을 택했다. 조례의 핵심은 허가제, 세금 부과, 지역 환원, 환경 기준 이렇게 4가지 원칙이다. 허가제 (Licensing) 모든 공유경제 서비
2003년 여름, 프랑스를 덮친 유례없는 폭염은 전국적으로 약 15,000명, 파리에서만 4,800여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키며 국가적 충격을 안겼다. 사망자의 다수는 독거 노인, 저소득 가정의 고령자, 노숙인, 만성질환자 등 사회적 취약계층이었다. 당시 공공 보건체계는 극한 기후 상황에서 시민을 보호할 체계가 없었고, 고립된 노년층은 냉방이 되지 않는 밀폐된 공간에서 방치되었다. 이후 파리시는 매년 여름마다 ‘폭염 대응 계획(Plan Canicule)’을 시행했으나, 단발성 대책에 불과하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따라 2017년부터 본격화된 ‘쿨 맵(Cool Map)’ 공식명칭 Carte des îlots de fraîcheur (서늘한 공간 지도) 정책은 단순한 시설 목록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하나의 냉방 복지 네트워크로 설계하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쿨 맵이 단순한 정보 지도에서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기술과 실시간 데이터가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각 쉼터 공간에는 IoT 센서가 설치되어 현재 온도 및 습도, 내부/외부 냉방 작동 여부, 이용자 밀집도, 운영 가능 여부 및 개방 시간 등의 정보를 실시간 수집한다. 이 정보는 앱 사용자에게 ‘가장 가까운
기후 투자는 부담이 아닌 기회… 전 세계 GDP 최대 13% 증가 가능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정책이 단순한 환경보호를 넘어 경제 성장과 사회 발전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국제기구를 통해 공식화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유엔개발계획(UNDP)은 6월 10일 발표한 공동 보고서에서 “강화된 ‘국가별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와 이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이행·투자 계획은 경제적 기회를 창출하고, 포용적 성장을 가능케 한다”고 밝혔다. 보고서 「성장과 개발을 위한 기후에 대한 투자」는 기후 정책이 GDP 상승, 빈곤 완화, 에너지 안보 강화, 건강 개선 등 다양한 부문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데이터와 시나리오 분석을 통해 입증하고 있다. NDC 강화 시, 2050년 세계 GDP 최대 3%↑…2100년까지 13%↑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은 전 세계 탄소배출량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C를 넘긴 첫 해로, 기후 대응이 시급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OECD는 자체 모델링을 통해 “향후 각국이 보다 야심찬 NDC를 제출하고 이를
스위스는 국가 차원에서 이산화탄소세(Carbon Levy)를 도입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거둬들인 수익 중 약 ⅔를 모든 국민에게 균등하게 환급하는 기후배당제(Carbon Dividend)를 운영하고 있다. 이 제도는 기후변화 대응의 재정적 부담을 사회 전체에 공평하게 분담하고, 저소득층에는 실질적으로 혜택이 돌아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취리히주는 이러한 중앙 제도 위에 독자적인 ‘기후예산(Climate Budget)’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 구조는 지방정부가 예산을 편성할 때 연간 온실가스 허용 총량을 설정하고, 이를 초과하는 행정활동이나 사업에 대해 재정적 보완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것이다. 초과 배출량에 대해서는 해당 부서에 ‘탄소 벌금’을 부과하거나, 시민기후배당을 통해 지역주민에게 보상하는 방식이다. 2021년 기준, 스위스 전체 탄소세 수익은 약 12억 스위스프랑(약 1.8조 원) 규모이며, 개인에게는 1인당 평균 CHF 92(약 14만 원), 기업에는 에너지 효율 관련 보조금 형태로 분배되었다. 취리히는 이 환급 구조에 더해, 시민평의회(Bürgerrat)를 통해 탄소배당 구조에 대한 자문과 피드백을 수렴하고 있으며, 일부 시는 환급금 일부를 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는 시민이 직접 법률이나 조례를 발의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갖춘 세계적 사례로, 1995년 제정된 ‘Recall and Initiative Act’를 통해 법적으로 명문화되어 있다. 이 제도는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일반 시민도 입법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가장 핵심적인 요건은 서명 요건으로, 주 전역의 87개 선거구 각각에서 등록 유권자의 최소 10% 이상이 서명해야 조례 발의가 공식 검토 절차에 들어간다. 이는 절대 숫자로만 보면 약 32만 명 이상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고강도 기준이며, 단 한 지역이 기준 미달이면 전체가 무효 처리된다. 이처럼 높은 진입장벽에도 불구하고, 2010년 ‘조화세(HST: Harmonized Sales Tax)’ 폐지 발의는 서명 요건을 충족시켜 실제 주민투표를 이끌어낸 성공적 사례로 남아 있다. 해당 발의에는 총 705,643명의 서명이 모였으며, 주민투표에는 52%의 투표율 속에 54.73%가 폐지에 찬성하였다. 이에 따라 2013년 HST는 공식 철회되었고, 원래의 지방소비세 구조로 환원되었다. 이는 시민 주도의 입법 운동이 실제 제도 변화를 이끌어 낸 보기 드문
독일 바이에른주는 에너지 전환(Energiewende) 정책을 지방의제로 전환한 대표 사례로 평가받는다. 특히 주민이 출자하고 운영하는 ‘시민에너지 협동조합(Bürgerenergiegenossenschaft)’은 2023년 기준 바이에른 주에만 약 260여 개가 활동 중이며, 독일 전체 재생에너지 생산량의 약 45%를 시민·지자체 주체가 생산하고 있다. 대표 사례인 와일트폴즈리트(Wildpoldsried)는 인구 2,500명의 소도시임에도 불구하고 2022년 기준 연간 약 5만 메가와트시(MWh)의 전력을 생산하여 자체 소비의 321%를 초과 달성하였다. 마을에는 태양광 발전소 11개, 풍력 발전기 5기, 바이오가스 시설 3곳이 운영되고 있으며, 초과 전력 판매로 연간 약 600만 유로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 수익은 지역 공공시설, 마을 공동기금, 교육 및 복지 서비스에 재투자된다. 주정부는 2024년 ‘Bürgerenergiebeteiligungsgesetz’(주민에너지 참여법)을 통과시켜, 일정 규모 이상의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대해 주민 출자, 수익배당, 지자체 우선 협상권을 법적으로 보장하였다. 또한, 프로젝트 이익의 일정 비율(예: kWh당 0.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은 일반적으로 중앙정부(KELA) 주도 하에 전국 규모로 실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설계와 시행 과정에서 지방의 역할은 결코 작지 않았다. 핀란드 사회보장제도는 지방 자치단체와 긴밀히 연계되어 있으며, 실험 당시 복지서비스 제공과 피드백 수집은 지방 수준에서 이뤄졌다. 2017년부터 2018년까지 2년간 진행된 이 실험은 실업수당 수급자 중 2,000명을 무작위로 선정하여 매월 560유로를 조건 없이 지급하였다. 이들은 기존 복지제도의 각종 의무(예: 적극적 구직활동 보고)를 면제받으며, 자율적으로 생활 및 구직활동을 할수 있었다. 대조군은 기존 실업급여 체계에 남은 173,000명으로, 이들과의 비교를 통해 정책 효과가 분석되었다. 최종 보고서(2020년 발표)에 따르면, 기본소득 수령자 중 고용된 비율은 대조군보다 약간 높은 수준을 보였으며(고용일수 평균 78일 vs. 73일), 삶의 만족도는 6점 만점 기준 4.3점으로 대조군(3.9점)보다 높게 나타났다. 특히 스트레스, 신뢰감, 미래에 대한 전망 등 심리적 안정감 측면에서 유의미한 개선이 있었으며, 지방 행정기관을 통한 정성적 인터뷰에서도 수급자들의 사회참여 확대, 자기개
기후위기, 지역소멸, 청년유출, 복지재정 한계 등 대한민국 지방정부가 직면한 위기는 단순한 행정 효율성의 문제를 넘어, 기존 정부 모델의 근본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하위 집행기관이 아니라, 지역의 삶을 책임지는 실질적인 정책 설계자이자 실험자로서의 위상을 다시 정의해야 할 시점이다. 2025년 6월 이재명 정부는 기후위기 대응과 지방분권 강화 등을 핵심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이는 기존의 중앙집중형 모델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복합문제들을 지방 차원의 혁신과 실천을 통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여전히 지방정부는 실험과 참여를 위한 제도적 공간이 부족하고, 재정 및 권한의 비대칭 속에서 실행력이 제약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이야 말로 지방정부가 국제적 모범사례를 벤치마킹하고, 지역의 문제를 지역의 방식으로 풀어가는 혁신 생태계를 조성할 적기다. 특히 북유럽과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는 지방정부가 복지, 기후, 정부 전환을 선도하고 있으며, 중앙 정부는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구조를 구축해왔다. 정책 실험, 주민참여, 수익공유, 제도개혁 등 다양한 측면에 서 유의미한 접근들이 축적되고 있는 것이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