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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디자인의 대가 한기웅 전 강원대 교수가 고향 서산에 내려간 이유는?

산업디자이너에서 이젠 농업디자이너로 이론에 멈추지 않고 현장을 직접 경험하며 살아있는 디자이너의 참된 삶을 보여주고 있다. 지역소멸위기시대를 타개할 차별화된 전략 제시, 농업디자인을 통해 지역 활성화 롤모델 제시하고 있는 한기웅 교수를 만났다.

 

한기웅 교수는 (사)내포디자인포럼 이사장으로 여미오미 로컬푸드 센터 고문으로 강원대 디자인학과 교수를 역임하는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해왔다. 현재는 오직 농촌, 농산업의 선진화에 올인하며 4년 전에 오픈한 '여미오미로컬푸드'의 상임고문 겸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농민이 주인인 협동조합의 발전을 위해 협동조합원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문제점과 개선점을 찾아내느라 정신이 없다. 

특히 2021년 세한대학교와 협업으로 국내 최초로 6차산업디자인 전공을 AI콘텐츠디자인학과에 개설하고 여미오미로컬푸드의 실습장과 별도의 창업농장에서 교수, 학생들이 새로운 창조 농업을 일구어내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한마디로 자칭 브랜드 농업을 선도하고 있다.

자신만의 융복합 농업을 디자인과 적극적인 협업을 통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차별화된 농산업을 일구어내는 일에 선도하고 있다. 그를 여미오미 로컬푸드 센터에서 만났다. 

 

한국산업디자이너협회장 시절

농식품부 6차산업 심사 평가 후 관심을 갖게 된 농업 디자인

Q) 언제부터 농업분야 6차산업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A) 저는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소셜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대한민국의 가장 대표적인 디자인협회인 한국산업디자이너협회에서 회장을 맡기도 했는데 그때 마음을 먹었어요. 도시에서는 디자인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디자인이 가장 절실한 곳은 낙후된 농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 최초로 한국과 일본, 대만 3개국의 젊은 디자이너들이 5일 동안 모여 진행하는 ‘아시아 영 디자인 워크숍’을 이곳 서산에 유치했어요. 산업디자인협회장을 하면서 당시 이완섭 서산시장과 한서대에 제안했습니다. 농촌의 정체성과 문제점을 찾아내고 새로운 제안점을 제시하는 현장 워크숍을 진행해 농촌에서의 새로운 물결을 이끌어내는 실험을 진행한 것이 시초였죠.  당시 이완섭 서산시장과 한서대학교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 서산으로 유치가 가능했고, 2009년 여미리를 농식품부가 공무한 '신문화공간 마을조성' 사업에 도전해 전국 6개 마을 중 하나로 선정되도록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어요. 여미리가 문화마을로 성장하는데 초석을 놓은 것이죠. 

 

 

Q) 정말 의미있는 워크숍이었을 것 같습니다.

A) 그때부터 농업에 디자인을 접목시키려는 노력을 시작했지요. 특히 산업디자인협회장을 하다보니 중요한 분들을 많이 만날 기회가 있었어요. 농림축산식품부의 6차 산업 심사를 하는데, 전국을 다니며 디자이너의 눈으로 농업의 6차산업을 심사할 기회가 있었어요. 저만 빼고는 다들 농업 분야의 전문가였죠. 그때 대한민국 최고의 6차 산업 브레인들을 만나고 그분들과 같이 먹고 자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그러면서 디자이너로서 농촌의 6차 산업에 디자인을 접목해야 겠다는 강한 신념이 생겼지요. 곧바로 제 고향 서산에 와서 ‘한기웅의 6차산업디자인아카데미’를 개설해 1년 코스로 주말마다 무료로 수업을 진행했어요. 면에서 공간을 공짜로 빌려주었는데, 서산의 리더 15명을 대상으로 농산업에 디자인을 접목한 사례를 강의했지요.

일본에 가면 ‘목구목구’ 농장이 있는데, 그곳을 직접 방문해 벤치마킹하여 협동조합도 만들었어요. 저에게 배운 제자 15명 중 6명이 3,000만 원을 내놓아 빨리 조합이 만들어졌지요. 이 협동조합은 2017년 72명이 시작해 민자 5억 6,000만 원을 만들었어요.  

 

 

Q) 현장에 바로 접목하려는 실천력이 대단하시네요.

A) 제가 강원대 교수를 하기 전 삼성전자에 근무했었는데요. 농부의 자식이다보니 전자제품이나 자동차에 디자인을 연결하듯 농업에도 디자인을 적극 접목해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어요. 경쟁력있는 농산업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농업에도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거죠. 그렇게 고민하면서 혼자 커리큘럼을 만들고 2021년 지역에 있는 세한대학에 제안을 했어요. 농촌에 있는 대학에는 농촌다운 학문이 있어야 한다면서 농업에도 자동차나 전자제품처럼 디자인을 접목해야 한다고 강조했지요. 덕분에 세한대에 국내최초로 디자인과 안에 6차산업디자인이 만들어졌어요. 그 과목을 가지고 농업디자인에 대해 강의를 시작했어요. 올해 학교와 협의해 디자인과 내에 제대로 6차산업 디자인 전공이 생길 것 같아요. 농업에 디자인을 접목하는 학교로 로컬푸드를 잘 만들어 지역의 롤모델을 만들려 한 거죠. 2018년에는 순수 민간인들이 중심이 되어 100% 민간자본으로 지금의 '여미오미로컬푸드'를 오픈해 로컬푸드-농가레스토랑-가공공장과 체험센터와 세한대 6차산업디자인 실습장까지 오픈하는 명실상부 '농업의 융복합화'와 '신농업 학문의 요람'으로 발돋움하게 했어요. 여러 노력 덕분에 여미리가 전국적으로 많이 알려졌고, 2022년 충남도 최우수 수익 및 체험마을로 선정되기도 했어요. 로컬푸드가 조금씩 경쟁력을 갖춰 앞으로 2차 산업 확장을 통해 농민들의 땀과 열정으로 수확한 농산물을 좋은 가격으로 항상 예측이 가능한 가격으로 매입되도록 보탬이 되는 기업으로 만들어나갈 것입니다. 

 

 

여미오미 로컬푸드, 1차 생산에 그치지 않고 2차 가공 후 3차 체험관광까지

흑자의 원동력! 찹쌀떡과 우리콩두부 

Q) 너무 좋습니다. 무엇보다 협동조합이 민간인들로 구성돼 있어서 자유롭게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A)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는 만큼 어려움이 많지요. 자금이 너무 부족해서 디자인 영역에서 ‘빈티지 디자인’도 아니고 ‘가난한 디자인’이라고 해야 할까요? 없는 것을 가지고 디자인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하나 하나 만들었습니다. 보시다시피 로컬푸드매장도 다 창고형이에요. 창고형으로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돈이 없어서 그랬지요. 대신 나중에 2층으로 만들 수 있도록 높게 지었어요. 밖에 있는 농가레스토랑도 상당히 높게 지었습니다. 나중에 여유가 되면 2층을 반 정도만 바닥을 만들어 밑부분이 다 뚫어져 보이도록 하여 퓨전 뷔페, 퓨전 레스토랑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와서 우리 지역에서 나는 한돈과 한우로 직접 스테이크도 해먹고 다양한 요리를 하도록 하려고 합니다. 없는 돈으로 시작하다보니 많이 어려워요. 그래도 1차생산에만 멈추지 않고 2차 가공을 거쳐 체험관광인 3차산업까지 융복합하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사실 저희 로컬푸드 매장은 충남에서 가장 작은 곳이에요. 다른 곳은 축협이나 농협 혹은 지자체에서 운영하니까요. 그렇지만 저희처럼 1+2+3=6차산업 융복합 매장은 없어요. 2년 전부터 가공공장에서 찹쌀떡과 우리콩두부를 생산하는데, 이게 흑자의 원동력이에요.

(여미오미 건물들의 내부를 세밀히 보면 유니버설 디자인 개념이 녹아있다. 즉 남녀노소,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에게 다가서려는 장벽없는 디자인인 것이다. 모든 공간은 장애인이 접근하기에 용이하도록 단차를 없앴고, 누구나 쉽게 인식할 수 있는 선명한 색상의 사인 등이 잘 설계되어 있다. 특히 농촌의 전원과 조화되도록 건물 디자인을 고려하고 건물의 색상도 조금씩 차이를 두어 단조로움을 없애는 데 역점을 두었다. 무엇보다 부족한 비용이지만 지진에도 끄덕없는 견고함으로 설계돼 후세에게 물려주어도 문제가 없는 탄탄한 디자인이 배어 있다. )

 

로컬푸드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는 찹살떡(좌)과 우리콩두부(우) 

 

Q) 그렇군요. 마을기업에서 하는 건가요?

A) 네, 마을기업에서 하는 겁니다. 덕분에 조합원들이 좀 자신감을 가졌다고나 할까요? 사실 로컬푸드매장만 운영해서는 남는 게 없어요. 저희가 13% 수수료를 떼는데, 나머지는 다 농민들에게 되돌려줍니다. 1천만원 팔아봐야 130만원 남아요. 수수료로 전기세, 수도세, 인건비를 충당하면 수익이 남질 않죠. 그래서 저는 이 매장은 수입과 지출이 같으면 그게 가장 잘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해요. 대신 농가레스토랑이 흑자이고, 가공공장과 체험센터를 통해 돈을 벌면 돼요. 이제 운영한지 4년이 되었고, 5년차인데, 좀 자신감이 생겼어요. 다만 이 매장을 일구느라고 아주 고생을 한 사무국장이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제가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데 이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Q) 그러니까요. 아까 물건을 받으러가셨다고 들었습니다.

A)  서산축협에서 고기를 가져온 거예요. 보통 가져다 주는 데 바쁠 때는 우리 보고 가져가라고 합니다.

 

 

차별화된 마을 스토리텔링 구상하며

아로니아를 먹는 닭도 키우고 사회적농장 도전할 예정 

Q) 이번 기회에서 여미오미 로컬푸드 매장을 한번 제대로 홍보해 하시지요.

A) 토요일마다 다문화가정이나 결손가정 아이들 그리고 우리 지역의 유치원과 초등학교, 중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무료 체험학교를 운영합니다. 기본 강사비와 재료비는 시에서 제공해주는데 올해로 벌써 3년째에요. 그리고 전국에 있는 마을 주민들도 이곳을 벤치마킹하러 많이 오세요. 특히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돼 검색해서 오시더라고요. 이곳에 와서 로컬푸드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직접 제 강의를 듣거나 전통떡만들기와 두부 만들기 체험을 하고 가시기도 해요. 우리 마을은 조선 2대 임금의 넷째 아들 사당을 모시는 왕손 마을이에요. 관련 문화가 많은데, 이걸 마을투어 프로그램에 넣어 1박 2일 코스로 만들어 볼거리와 체험거리를 다양하게 하고 있어요. 현재 학생 및 교수, 그리고 지역 주민들이 함께 농업회사법인인 꿈샘농원을 창업해 6차산업디자인의 롤모델을 구축해 나가는데 전력하고 있어요. 농업회사법인 소유의 2,000평의 땅에 시험용 아로니아 닭을 방목해서 키우고 있어요. 닭이 먹는 물에 아로니아 찌꺼기를 짠 물을 넣었지요. 닭들이 아로니아를 먹고 싶지 않아도 물을 먹어야 하니 어쩔 수 없게 먹게 되지요. 올 6월이면 1년인데, 1년 동안 닭의 체내에 아로니아가 가진 좋은 성분 중 하나인 루테인 성분이 어느 정도 함유하는지 시험하고 있어요. 이게 성공하면 본격적으로 논을 임대해 대단위로 닭을 방목해 키우려고 합니다.

 

여미오미로컬푸드의 특징은 농업의 융복합화와 디자인 특성을 가미한 차별화된 로컬푸드로 거듭나고 있다는 것! 규모는 작지만 1,2,3차 산업을 착실히 추진해 전국 융복합농업의 롤모델로 부상

 

Q) 그게 성공하면 대박이 날 것 같은데요.

A) 네, 맞습니다. 그 다음 저희가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선정하는 사회적농장을 모색하고 있어요. 올해 정부사업으로는 사회적농장에 도전합니다. 서산에 사시는 어르신들 중 초기 치매 어르신들을 모아 노인회와 협력해 일주일에 한 두 번 이곳에 오시게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꽃을 가꾸도록 합니다. 채소나 과일나무도 기르게 하는데 오랜 시간 하지 않고 1시간 30분 정도만 합니다. 또 직접 생산한 딸기나 아로니아를 가공하는 것인데요. 작년에는 아로니아 수제비를 해먹었는데, 정말 좋아하셨어요. 자신들이 딴 열매들은 별도로 저장하고 분말로도 만들어놓기도 했어요. 그러니 어르신들이 옛날 생각이 많이 나신다면서 정말 좋아하셨어요. 이런 사회적농업을 적극 해보려고 합니다. 나이 75~80세 되신 어르신들은 밭농사를 짓지 못하세요. 논농사도 기계가 다 합니다. 이런 사회적 농장이 어르신들이 건강을 다지며 새로운 일자리가 될 수 있어요. 제가 건강이 받혀주는 날까지 정부 사업을 적극 유치하고 싶고, 노인들의 케어타운을 만들어 그분들이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그냥 갇혀서 지내면서 피동적인 삶을 살도록 하지 않게 해드리고 싶어요.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하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Q) 교수님께서 추진하시고자 하는 사업의 모델이 있나요?

A) 네, 독일에 유명한 치유농업학교가 있는데요. 저희 강의에 나오시는 교사분이 그곳에서 6개월간 정식으로 배워 자격증을 따오셨어요. 그 농업학교는 장단지 정도의 물이 찰 정도로 졸졸졸 흐르는 도랑을 만들었어요. 인공으로 만들어 바닥에는 조약돌이 놓여져 있어 물리치료도 되는데요. 물속을 건강하게 걸을 수 있도록 했어요. 농촌이 점점 고령화되는데 어르신들이 재미있게 농사를 짓고 수확한 걸 가지고 용돈도 벌면서 오후에는 건강도 다지게 하는 일종의 치료라고 할 수 있지요. 저는 카톨릭신자인데요. 서울 성모 병원의 부원장님이 신부님이신데, 그분이 의사들이 하루 이틀 머물 수 있는 기숙사를 만들라는 거예요. 그러면 자신이 정년퇴임한 의사들을 다 모셔오겠다는 거예요. 그런 분들은 의료봉사에 굉장히 보람을 느끼시는데, 이런 기숙사를 하루 빨리 만들어 서산의 어르신들이 와서 케어도 받고 자신들이 원하는 농사도 지으며 용돈도 벌수 있는 관광농원을 만들고 싶어요.

 

Q)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많으시네요.

A) 네, 매주 지금 학생들과 수업을 하는데요. 상추에도 6차산업디자인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동안 상추를 그냥 재배만 해왔지만 국내 조사만 해봐도 상추환이 만들어져요. 상추를 먹으면 졸리잖아요. 그 성분을 이용해 수면제 상추환을 만든거죠. 이런 사례 연구를 통해서 하찮은 상추가지고도 2, 3차 산업을 연구하는데, 정말 다양한 농산물을 활용할 수 있어요. 이런 것을 제가 교육하는데, 사회적농장이 잘되면 농촌활성화에 분명히 기여할 겁니다. 노인들에게도 생기있는 삶을 유지하게 할 거에요.

 

올해부터는 지역의 스토리가 담긴 

임금님이 드셨던 '창출주' 민속주도 만든다 

Q) 정부의 지원으로 운영되다보면 영속성에 문제가 있지요?

A) 맞아요. 정부의 지원이 끝나고 나면 사양화되는 것 같아요. 저희 경우에도 3년 전 마을기업으로 선정되었는데, 15명의 상임이사 중 몇 분이 마을기업에 대해 반대했어요. 국가에서 4억원을 지원해주는 대신 우리가 1억원을 자부담해야 하거든요. 당시 우리의 운영비만 1억원 조금 넘은 상태라 그 돈을 여기에 다 투입하기가 위험 부담이 있었지요. 운영비는 기본적으로 또 들어가야 하니까요. 제가 이사님들을 설득해 정말 운영비가 없다면 우리가 1,000만원씩 더 걷자고 했어요. 그럼 1억5,000만원이니 충당할 수 있다고 봤지요. 제 생각에 로컬푸드만 운영해서는 만년 그 타령이라고 생각했어요. 꼭 가공식품을 만들어 제조해야 한다고 설득했지요. 볼란 듯이 4년 만에 가공공장이 흑자를 냈어요. 아직 소기업이지만 제대로 활성화시키려고 합니다. 특히 올해부터 민속주 술을 만들려고 하는데요. 문헌에 보니 조선 임금이 서산에 자주 왔더라고요.

 

 

Q) 이거 스토리텔링이 되겠는데요.

A) 서산이 바닷가니까요. 해안 순찰은 온거죠. 세종대왕의 아버지가 무관들을 700명씩 데리고 서산 도비산으로 왔대요. 산에서 사냥을 하는데, 이게 곧 군사훈련인거죠. 그리고 해미읍성에서 주무시는데, 관가도 그렇고 읍성 백성들에게도 비상인거죠. 그때 임금님의 과음과식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창출주를 만들었대요. 창출이 한약재인데, 소화기능에 도움을 주고 우위를 돕는 성분이 많대요. 그런데 문헌에는 이런 내용이 없어요. 이 이야기를 서산에서 3대째 한의원을 하시는 분이 계신데, 그 아들이 우리나라의 유명한 향토학 1인자예요. 이분이 자신의 할아버지때부터 들은 이야기라고 하더라고요. 옛날에 임금님한테 진상한 술이 바로 창출주라고 말이지요. 그러면서 저에게 창출주를 한번 만들어보라고 제안을 하셨어요. 그래서 여기에도 창출을 심었습니다.

 

Q) 창출이 어떤 열매인가요?

A) 뿌리도 먹고 줄기와 열매도 먹는 산에서 자라는 약초 식물이에요. 찹쌀떡과 우리콩두부가 잘 팔리고 있는데, 이제 민속주까지 생간하면 어느 정도 가공공장이 커질 거에요. 사실 농부들에게는 안정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판로를 만들어주는게 최고의 정책 같아요. 예를 들어 서산은 전국 달래 생산의 65%를 차지하는데, 한관에 19만원 하던 달래가 어느 날에는 3~4만원으로 확 떨어집니다. 그래서 달래를 항상 9만원 정도 선에서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면 농민들도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거에요. 달래를 가공해서 가공식품도 만들고 축제도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 것을 아주 적극적으로 해볼 생각입니다.

 

Q) 이사장님께서 이렇게 열정적으로 일을 추진하시게 된 근원적인 이유가 궁금합니다.

A) 제 밑바탕에는 아주 가난한 농부의 자식이라는 게 깔려 있어요. 4남 1녀 5남매의 막내인데 형제자매들이 다 공부를 잘했어요. 저보다 다 잘 했어요. 그런데도 가난 때문에 대학에 나온 사람은 오로지 저 혼자입니다. 이분들이 사회에 나가서 고생을 하면서도 못 배웠으니까 막내만은 잘 가르치자고 해서 저를 뒷바라지 해주셨지요. 그래서 항상 저는 빚진 마음으로 살아왔어요. 제 아버지께서 중학교 2학년때 돌아가셨어요. 큰형님과 큰형수가 저를 가르치겠다는 마음이 없었다면 제가 대학에 못다녔지요. 그것도 당시 미대를 말이지요. 우리 큰 형수께서 당신 딸을 재수시켜도 저를 대학에 보내주셨어요. 조카하고 제가 7살차이에 불과합니다. 그러면서 군대에 다녀온 후 대학에 졸업한 후 항상 그런 빚진 마음이 자리하고 있었어요. 가난한 빈농의 자식으로 이런 좋은 혜택을 받고 국립대학에서 호위호강하고 자식들도 아무 걱정없이 잘 가르쳐 출가시키고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했어요. 국립대학에서 정년퇴임을 한 후 편하게 살 수 있었지요. 아내가 반대하지 않아 40대 초반에 고향 서산에 '마애환경조형연구소'를 1997년에 설립하고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내려와 고향 후배들에게 그림 그리는 것과 예술가 정신을 만 6년간 무보수로 가르쳤어요. 그리고 2002년부터 2003년 1월까지 호주 모나시 대학에 교환교수로 재직한 후 지금까지 농촌과 농산업에 디자인을 접목하는 연구와 실천 운동인 내포디자인포럼과 농촌재생축제를 앞장서서 추진해 왔습니다. 

저희 집사람도 여기 조합장인데, 말이 조합장이지 식모예요. 식모. 그런데 이걸 하겠다고 뛰어들어서 하고 있는 이유는 정말 농부들도 이제는 좀 잘 살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제가 할 역할을 찾은 거지요. 제가 잘 할 수 있는게 디자인밖에 또 뭐가 더 있겠어요? 농업과 디자인을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 고민하고 실천한 거죠. 더군다나 농업만 임시로 막아놓은 FTA체결상황에서 만약 중국과 FTA로 관세가 철폐되고 자유개방된다면 우리 농업은 견디기 힘들어집니다. 나름대로 정부가 노력을 하고 정책도 만들지만 그것만 가지고서는 안됩니다. 당사자인 농부들이 자구책을 만들고 어떻게 하면 경쟁력있는 농업을 만들지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농부들은 그런 능력과 의지가 별로 없고 지원받는데만 너무 익숙해져 있어요.

 

 

김대중 대통령이 잘 한 일 중 하나

중소중견기업에 디자인지원사업을 진행한 것 

Q) 한기웅 교수님의 역할이 정말 좋은 선례가 될 것 같습니다.

A)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저도 진짜 하반기에는 국회의원을 찾아가려고 그래요. 내포권에 이런 신농업을 꼭 한 번 성공시키자고요. 내포권에서 농업의 6차산업디자인 접목이 성공한다면 전국적으로 확산되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자주하는데요. 제가 삼성에 나왔을때가 김대중 대통령때입니다. 당시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에는 디자인실이 없었어요. 그래서 김대중 정부가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에 디자인 태스크포스('디자인 기업 자문단')를 만들어 지원하라고 했어요. 저도 삼성에 나와 그 태스크포스의 일원으로 인켈에 오디오를 개발하는데 디자인을 지원한 적이 있어요. 그때 디자인을 하여 1,000만 원이 들면 정부가 800만 원을 지원하고 중소기업은 200만 원만 내면 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진행한게 전국적으로 굉장한 촉진제가 되었어요. 그런걸 통해 한두번 혜택을 본 후 상품을 내놓으니 효과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중견기업부터 디자인실이 만들어지고 나중에는 웬만한 중소기업들도 디자이너들을 채용했습니다. 이처럼 농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Q) 그런데 공산품과 달리 농업에 디자이너를 투입하는 건 다른 점이 있을 것 같은데요.

A) 물론입니다. 농업 디자인을 하려면 농업을 좀 알아야 해요. 디자이너가 그냥 디자인만 전공했다고 농업 디자인을 할 수 있는게 아닙니다. 비근한 예로 개인 농기구를 디자인한다고 하더라도 만약 호미를 한다고 하면 호미로 농사를 지을 때 어떻게 뭘 할 때 쓰는지 주로 손목으로 작업을 하다보니 손의 어느 부위에 무리가 오는지 쪼그리고 앉아서 해야 하니 어떤 것이 불편한지 등을 알아야 개선할 수 있는 호미로 만들 수 있어요. 전국에 산업디자인이 막 유행할 때가 있었는데요. 제가 산업디자인 2기인데요. 농업디자인도 초창기에 어느 정도만 잘 롤모델링화되면 전국 특히 농촌대학에서 농업디자인학과를 만들것입니다. 저는 그게 목표예요. 세한대학에서 농업디자인을 강의하는데, 이게 세한대의 스타학과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 여기에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국회의원을 만나서 지방대에 이 농업디자인 단과대학을 개설하게 하고, 교육부를 통해 기존 과를 바꾸도록 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싶어요. 전망이 어두운 학과를 비전이 있는 과로 바꾸도록 하는 거죠. 농업디자인, 농업경영학과, 치유농업과 등 농업 특화단과대학을 서산에 1차적으로 만들고 싶어요.

 

진정한 디자인 선진국 되려면 

농업을 포함한 모든 분야에 골고루 디자인 접목돼야

Q) 앞으로 할 일이 많으시네요.

A) 농업에서 늘상 진행하는 패키지 디자인이나 브랜드 디자인은 굉장히 소극적인 디자인 접목이에요. 제가 학생들에게 강의를 할 때 왜 농토는 변하지 않고 오로지 사람이 맨날 구부려서 일을 해야 하느냐고 질문을 합니다. 그 대안으로 수직 농장 스마트팜이 생겼지만 저는 농토디자인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떤 농작물을 하기 위해 농토의 구조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며 허리를 굽히지 않고 작업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거지요. 서양은 농기구도 다 서서 사용할 수 있는데, 왜 우리는 쭈구려 앉아서 하느냐 이겁니다. 진정한 디자인 선진국이 되려면 스타 품목에만 디자이너가 몰려 있는 게 아니라 모든 분야에 골고루 디자인이 접목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편리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지요.

굴지의 회사들에서 나오는 기계들은 디자인이 잘 정제돼 있지만 그렇지 않은 중소기업 제품은 그냥 기능적으로만 좋은 기계죠. 왜냐하면 훌륭한 디자이너들이 자동차나 전기, 전자에만 국한되어 있어서 그래요. 농업에도 훌륭한 A급 디자이너들이 투입되려면 그만한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서산시와 당진시에 가서 농업기술센터에 가니 공간이 많은데, 실평수 30평만 할애해서 서울에서 5~6명 되는 작은 디자인 회사를 아주 통째로 갖다 여기에 앉혀 놓자고 제안을 한 적도 있어요. 그래서 그 디자이너들이 1년 열두달 밭이나 논에 가서 농부들과 대화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농업에 디자인을 접목해 개선시킬 수 있을지 한번 제안을 해보게 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참 관심이 없어요. 그게 참 안타깝습니다. 디자이너들이 모여 사는 전원 마을 단지를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봤어요. 디자이너는 본질상 항상 문제점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문제를 개선하려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디자이너를 다른 말로 개선가라고 말해요. 이런 제안들을 하는데, 진짜 나이 들어서 정치하고 싶더라고요.

 


한기웅 교수가 말하는 농촌디자인은?

한기웅 교수가 생각하는 디자인은 한마디로 세상의 모든 것에 '물음표(?)' 마크를 붙여보는 것이다. 그 안에서 근원적인 문제점을 찾아내 모두에게 다가가는 해결점을 명쾌하게 제시하는 작업이다. 언제나 긍정적으로 살지만 그 속에서 크고 작은 문제점을 찾아내는 일들을 게을리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한 교수의 생활이요, 창조작업의 원동력이다. 

한기웅 교수가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분야는 농산업에 기존의 기술적 측면과 창의적 조형언어를 접목하여 경쟁력있는 브랜드산업을 견인하는 역할을 디자인이 담당하도록 구체적인 사례들을 하나씩 단계별로 일구어나가는 것이다. 실례로 여미리 문화마을은 관광마을로 조성하는데 디자인이 경관은 물론 다양한 콘텐츠를 가미해 다시 찾고 싶은 마을 여미리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또한 농부들이 참여하는 로컬푸드센터는 공간디자인은 물론 브랜드 디자인과 패키지 디자인을 단계적으로 추진해 나간다. 농부들의 진심, 웰빙 농업, 아름다운 농촌 등 감성 디자인 마케팅을 접목해 농민의 땀을 소비자와 직결시키는 일에도 디자인이 보이지 않는 역할을 하고 있고, 그러한 작업들을 조율해 나가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앞으로 6차 산업디자인 전공생들을 키워나가는 일은 향후 이와 같은 일을 담당하는 파이오니아로 키워내는 일련의 큰 작업이다.

 

대학과 마을주민간의 협업 사례

첫번째 협업사례로 여미리 신문화 공간 추진사업을 제시했다. 이 사업은 전문가와 주민들이 협업하여 성공한 농촌마을로 변화시킨 대표 프로젝트다. 여미리 신문화공간사업은 사라져 가는 근대 문화자산을 활용해 농촌의 새로운 현대 문화예술공간으로 재탄생시킨 선진 사례다. 이 사업 덕분에 여미리는 충남에서 수익, 체험분야에서 인정받는 마을로 선정되었고, 봄이면 '수선화 축제'로 1일 평균 5,000~6,000명이 한 달 이상 찾아오는 활력 농촌으로 재탄생하게 됐다. 

 

두번째 사례는 지역주민과 디자이너들이 모여서 2009년 창립한 '내포디자인포럼'이다. 농촌개발에 디자인을 접목하여 고품격, 고부가가치를 창출하자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시작한 시민포럼으로 올해 14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서산 지역의 크고 작은 농촌개발 사례를 연구하여 발표하고 있으며, 이 중에 현실로 접목해 빛을 발하는 사례도 있다. 그 중 서산시 운산면소재지 활성화 사업의 기초가 되어 정부 지원을 받아 사업을 추진한 사례와 당진 사관리 철탑 마을의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내는 일에도 연구 주제가 실현되어 가는 좋은 사례로 발전되고 있다. 이처럼 디자인이 농촌에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논의하며 발전하는데 좋은 매개체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회를 위한 디자인' 법인을 세우는데 뜻을 같이하는 지역 리더들이 사회를 위한 디자인 몸짓을 시작했다. 어려운 환경에 처한 장애인, 노약자, 결손가정 및 다문화 가정 등에게 다가갈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디자인을 통해 추진할 것이다.  3년여전에 창립했는데, 다양한 아이디어를 구상하며 실천 중이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철학과 멘토

빅터 파파넥의 '인간을 위한 디자인'

 

 

한기웅 교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저서는 빅터 파파넥의 '인간을 위한 디자인'이다. 젊은 시절 디자인이라는 학문에 맹목적으로 도전하며 깊이 있는 철학이 없었던 한 교수는 '인간을 위한 디자인' 책을 2번이나 정독하면서 디자인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기업에서 일선 디자이너로 일하던 시절 디자이너의 창의 작업은 단순히 기업 이윤을 위한 도구로만 사용되서는 안되며, 소비자 관점에서 어떤 이로움과 행복을 전해줄 방법을 고민하며 기업이익도 꾀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이후 34년간 대학 강단에서 교육자로 선배디자이너로 디자인 전공 학생들에게 자신의 철학을 녹여 교육에 전념했다. 

 

지자체 소멸을 막기 위한 디자인의 역할

한 교수는 2009년부터 '내포디자인 포럼'을 발족시켜 농촌의 활성화와 농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실현하는 연구와 실천 운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그 대표 사례로 6차 산업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 '여미오미로컬푸드'를 2018년 오픈해 농민의 생산품과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일과 농촌의 문화자산을 활용한 생활 관광화에 올인했다. 또한 국내 최초로 세한대학교에 '6차산업디자인' 전공을 개설해 브랜드 농업의 실천방법을 교육하는데 전념했다. 이와 같은 일련의 농촌, 농산업디자인의 활성화가 좀 더 확장될 때 농촌소멸의 문제해결에 그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생각했다. 

 

한 교수는 농업의 '6차산업디자인'을 활성화시켜 전국의 유명대학에 6차산업디자인의 후학들을 양성하는 학과가 확장되기를 소원하며, 서산에서 시작된 6차산업디자인이 꼭 성공한 신학문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 교수는 우리나라와 같이 국토는 좁고, 인구는 많고 특히 농촌이 소멸되어가는 이 시점에 농산업의 고부가가치화 노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행동으로 실천에 옮기고 있다. 디자인 학문은 어떤 측면에서는 문제점을 찾아내서 해결점을 제시하는 개선학문이다. 한 교수는 살아가면서 문제점으로 나타나는 사건들에 대해 그 문제점의 근원을 파악하고 자료조사, 분석을 통해 개선점을 추출해 내는 일에 항상 몰두한다. 실천으로 옮기는 추진력이 매우 높은 편으로 주위 사람 특히 아내와 제자, 동료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이기도 한다.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

한 교수는 깊고 넓게 생각하지만 옳다고 판단이 섰을 때 망설이지 말고 실천에 옮기라고 권고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실패를 두려워하거나 지나치게 두드리고 망설인 나머지 아무것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은 비록실패했을 지라도 실행에 옮겨서 온몸으로 느끼고 터득하며 재도전하는 의지의 사람에 비한다면 너무 초라한 삶이라고. 

 

70대 어르신들 중에서 젊은 시절 사회적으로 명성을 얻고 이제 노년이 된 후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을 살고 있는 분들을 인터뷰 해보라는 김홍진 전 KT 사장의 추천으로 한기웅 교수를 만났다.

기자의 고향을 내려가는 길에 만난 한기웅 교수의 여미오미 로컬푸드 센터. 교수님이 자리없어 센터 구석 구석을 둘러볼 수 있었다. 로컬푸드 매장에는 지역 농민들이 직접 생산한 갖가지 농산물과 가공품이 놓여 있었다. 서산농민들이 직접 생산한 것이라고 증명하듯 농민들의 사진이 일렬로 붙어 있었다. 믿음을 갖고 사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직접 만든 두부와 맛있는 찹쌀떡이 눈에 들어왔다. 알고보니 이 매장의 알짜배기 효자 종목이라고. 매장으로 안내했던 직원이 한 교수가 매장에 가져놓을 고기를 사러 갔다는 것이다. 70대 어르신이 누구에게 시키지 않고 직접 몸소 심부름까지 하는 모습에 정말 대단한 열정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장에 들어선 한 교수는 예상대로 거침이 없었다. 날마다 새롭게 기획할 것이 많아서 그럴까 상품판매대 바로 옆에 칸막이로 놓여진 조그마한 구석데기에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한 교수는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준비한 질의에 대해 빼곡히 답변을 달아 기자에게 전달했다. 기자를 그만큼 간절히 기다렸다는 모습이 아닐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잘 정리한 것에서 인터뷰를 하기 전에 한 교수가 현재 하는 일에 대해 얼마나 가치를 두고 사명감과 열정을 갖고 있는지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질문 하나에 그가 얽히고 설켜진 거미줄 처럼 연결될 기획의 단초들과 경험들 새로운 창조적인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언론을 상대하는 것에서도 거침이 없이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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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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