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APEC 정상회의 개최로 경주가 다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낮에는 국제 외교 무대가, 밤에는 세계 정상과 대표단이 경험할 새로운 도시의 얼굴이 펼쳐진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고즈넉한 불빛은 경주가 교류와 협력의 장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경주의 밤’은 이제 문화와 관광을 넘어 경제와 외교가 만나는 글로벌 플랫폼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달빛 아래 걷는 발걸음마다 천년의 시간과 현재의 우리가 하나가 된다.
달빛테라피 경주 야경 산책
낮의 경주가 천년 역사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고도(古都)라면, 밤의 경주는 그 역사 위에 은은한 빛을 더해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어둠이 내리면 왕릉은 달빛을 두르고, 첨성대는 별빛과 조명 속에서 더욱 신비로운 자태를 뽐낸다.
경주시는 이러한 야경의 매력을 한층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도록 ‘달빛테라피 경주 야경 산책’이라는 특별한 코스를 소개하고 있다. 천천히 걷다 보면 조명에 비친 유적들이 시간의 흐름을 잊게 하고, 발걸음마다 신라의 역사를 따라 걷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첫발걸음은 해질녘 황리단길에서
황남동 일대에 몇 해 전부터 젊은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서점, 소품점, 트렌디한 카페와 음식점이 들어섰다. 경주여행의 필수코스가 된 황리단길. 내남사거리에서 오릉으로 향하는 포석로 양쪽 길가에 다양한 상점이 밀집해있고, 최근에는 골목으로 영역이 확장되어 황남동, 사정동 동네 안까지 아기자기한 카페와 식당, 체험 상점이 속속 들어서는 중이다.
늦은 오후 황리단길을 거닐다가 루프탑이 있는 카페를 만난다면, 그곳에서 황남동 한옥의 스카이라인을 붉게 수놓는 해질녘을 만끽해보자. 높은 건물은 많지 않은 대신, 낮은 건물에서도 옥상에 오르면 황리단길의 골목골목을 담을 수 있다.
왕들의 잠든 밤, 대릉원의 고요함 속으로
낮에는 왕릉의 웅장함이 두드러지지만, 밤이 되면 조명 아래 부드러운 실루엣만이 남아 한층 신비롭다. 특히 천마총 주변은 은은한 조명이 비춰 ‘왕들의 정원’을 거니는 듯한 착각을 준다. 이곳은 신라 왕과 귀족들의 무덤이 밀집한 지역으로, 역사적 의미와 시각적 아름다움이 공존한다.

황리단길에서 대릉원으로 갈 때에는 정문이 아닌 후문을 이용해 들어가는 것이 더 빠르다. 대릉원 야경의 백미는 ‘대릉원 포토존’이라 불리는 목련나무가 있는 곳이다. 일출, 일몰 전후 30분을 사진 찍기 가장 좋은 시간대인 매직아워(magic hour)라 부르는데, 일몰 매직아워 시간대에 대릉원 포토존을 찾으면 SNS 인생샷을 찍을 수 있다.
별빛, 달빛으로 물든 첨성대와 계림
신라의 주요 고분을 둘러보고 대릉원 정문으로 나가면 가까운 곳에 밤하늘을 수놓는 달 아래, 별자리 아래, 그만큼 빛나는 첨성대가 있다. 선덕여왕 때 축조된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첨성대의 365개 돌은 신라 시대 천문학의 상징으로, 달빛과 함께 조명이 더해져 그 자체가 거대한 예술 작품이 된다.

주변의 계림은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의 탄생설화를 간직한 천년의 숲이다. 아름다운 조명으로 꾸며져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늦은 시간에는 인파가 줄어 조용히 산책하기 좋고, 곳곳에 놓인 벤치에서 잠시 쉬어가기에도 제격이다.

월정교, 신라 다리 위에서 만나는 황홀한 밤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랑이야기를 품은 ‘사랑의 길’, 신라 궁성과 남쪽을 잇는 ‘관문’. 모두 월정교에 대한 이야기다. 복원된 신라의 다리는 낮에는 장엄함을, 밤에는 황홀함을 자랑한다. 다리 중앙에 서면 남천을 따라 흐르는 불빛이 강물에 반사되어 마치 별빛이 흩날리는 듯한 장관을 연출한다.

월정교 앞에 설치된 징검다리 중간에서 월정교를 감상하기 좋고, 교량 아래 산책로는 연인들에게 특히 인기 있는 장소로,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다. 밤 10시까지 교량이 개방되니 외관 감상 후, 다리 위를 직접 거닐어보자.
동궁과 월지, 연못 위의 빛은 궁전
야경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동궁과 월지’다. 신라 태자가 기거하던 별궁으로 ‘안압지’라는 이름이 더 익숙할 수도 있다. 조선시대 폐허가 된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 무리가 있는 연못이라 하여 ‘안압지’라 불러왔는데, 지난 2011년 ‘동궁과 월지’라는 제 이름을 찾았다.

연못에 비친 건물의 불빛이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한다. 고대의 화려함을 상상하며 걷다 보면, 자연과 인공이 빚어낸 완벽한 조화에 감탄하게 된다.
마지막은 야식 천국 ‘중앙시장’에서
동궁과 월지에서 중앙시장까지는 거리가 제법 된다. 걸을 여력이 남아 있으면 도보로, 체력이 소진되었다면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을 추천한다.
중앙시장은 1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경주의 대표시장으로 경주사람들은 경주역 인근의 성동시장을 윗시장, 중앙시장을 아랫시장이라고 부른다.

중앙시장은 요즘 밤이 더 즐겁다. 야시장 공모사업에 선정되며 중앙시장 북편 가로에 아케이드를 설치하고 20개 내외의 한옥형 판매대를 꾸려 다양한 먹거리를 선사한다. 열심히 걸었으면 당연히 야식은 0칼로리, 경주에서의 아쉬움은 식도락으로 채우자.
[지방정부티비유=한승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