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텔라데이지호 대책위원회, 8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 개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의결된 2차 심해수색 예산 100억, 예비비 편성 요구
기획재정부 측은 "원칙적으로 민간선사 책임, 정부도 적극적인 역할 하기 위해
1차 예비비 53억 원 지원했던 점 고려돼야”
지난 2017년 3월 31일 오후 11시 20분(한국시간), 스텔라데이지호로부터 다급한 메시지가 날아왔다.
"긴급 상황입니다. 본선 2번 포트에서 물이 샙니다. 포트쪽으로 긴급하게 기울고 있습니다."
연락을 받은 한국측 선사(船社: 선박으로 사람이나 화물을 운송하는 사업을 하는 회사) 폴라리스쉬핑 측은 11시 21분과 23분, 상황을 묻는 메시지를 재차 보냈으나, 스텔라데이지호는 11시 21분에 발송된 메시지만 확인한 상태로 연락이 두절됐다.
2017년 3월 26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위치한 발리 사의 일랴 구아이바 항에서 철광석을 싣고 중국 칭다오로 향하던 스텔라데이지호는 3월 31일 긴급 상황이 발생한 후 4월 1일 우루과이 인근 남대서양 해역에서 완전히 침몰했다.
스텔라데이지호가 4월 1일 오전 3시 57분과 오후 1시에 위성통신 신호를 보낸 것이 확인됐다. 하지만 마지막 구조신호를 보낸 지 5분 만에 스텔라데이지호는 바다로 가라앉았다. 배에는 한국인 8명과 필리핀인 16명이 타고 있었다.
침몰 하루 만에 구조된 필리핀 선원 2명을 제외하고, 한국인 8명과 필리핀인 14명 등 도합 22명은 지금까지도 '실종' 상태로 남았다.

스텔라데이지호의 길이는 311.89m, 선폭은 58m, 적재 중략은 26만 6,141톤에 달하는 초대형 광석운반선(VLOC)이다. 스텔라데이지호의 크기를 알기 쉽게 비교하면, 63빌딩을 눕혀 놓은 것보다 무려 70m나 더 크다.
유조선에서 철광석운반선으로 개조된 선박은 전 세계를 통틀어 52척에 불과하다. 60%에 달하는 30척이 한국에 있고 스텔라데이지호가 그중 하나다.
스텔라데이지호의 침몰은 필연적으로 세월호를 떠올리게 한다. 두 배 모두 일본의 노후선을 값싸게 구입해 개조한 배라는 점에서 유사성이 많다. 사람을 주로 태우는 관광선의 역할을 한 세월호와 달리 스텔라데이지호는 철광석 등 화물을 주로 실어 나르는 선박의 역할을 했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세월호에는 엄청난 중량의 철근이 실려 있었고, 이미 많은 문제점이 노출돼 있었다는 점은 알려진 바와 같다.
스텔라데이지호의 생존자는 브라질 구아이바 섬의 항구를 떠나기 전부터 배에 문제점이 노출됐다고 밝히고 있다. 이미 선실이 기울어져 있었고 부목으로 여러 곳을 받쳐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는 전언이다. 즉 노후선 그것도 용도 면에서 유조선으로 쓰이던 선박을 개조해 철광석 수송선으로 바꿔 사용하기에 스텔라데이지호는 적합하지 않았고 그런 상황에서 어마어마한 중량의 철광석을 싣고 항해를 한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무리였다.
22명의 생명과 26만 톤의 광물을 삼킨 상태로 3,460m 심해로 가라앉은 스텔라데이지호의 침몰 원인은 3년 8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생존자는 인근 해역을 지나던 그리스 국적의 엘피다 호에 의해 구조된 직후, 처음에는 사고 상황을 명확하게 밝혔다. 배가 V자로 꺾이면서 두 동강 났고, 배 내부에 물이 쏟아지면서 바로 침몰했다는 증언이다. 배가 침몰하기 전에 바다로 즉시 뛰어내린 사람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생존자에 대한 추가 인터뷰는 불가능했다. 치료비를 받는 조건으로 배가 침몰하던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하지 않기로 계약을 했기 때문이었다.

스텔라데이지호 조타실에 '블랙박스 본체' 추정 물체 보여
생존자 증언 토대로 선원 11명 유해 조타실에 있을 걸로 추정
2차 심해수색 통해 유해 수습 및 사고 원인 규명 한 번에 가능
대한민국 정부가 스텔라데이지호 문제에 손을 놓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침몰한 지 2년 가까이 지난 2019년 2월, 1차 심해수색이 시작됐다.
"처음 사고가 난 이후 정부에서는 심해수색은 선례가 없기 때문에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심지어 실종자 가족들 앞에서 정부 관계자가 직접 심해 3,000m 이상의 심해수색을 할 수 있는 기술은 없다고 설명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전혀 사실이 아니었고, 실종자 가족들이 직접 알아본 결과 4,000m, 4,500에서도 심해수색을 통해 유해를 수습하고 블랙박스도 수거해 사고원인을 밝혀냈던 해외 사례가 있었다." (허영주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 공동대표)
스텔라데이지호 대책위원회는 2017년 10만 명의 국민 서명을 받은 내용을 청와대에 전달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1호 민원이 됐다. 2018년 1월 2일에도 민원을 넣어 새해 첫 민원이 됐고, 이날은 언론에 약 90건에 달하는 관련 기사가 보도된다. '이슈화'에 성공했고, 정부도 관심을 보였다.
2018년 8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관한 국무회의에서 스텔라데이지호 심해수색을 위한 예산 53억 원이 통과됐다.
하지만 1차 심해수색은 실패로 끝났다. 심지어 유해를 1구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외교부와 계약해 심해수색을 진행한 미국의 오션 인피니티라는 업체는 '유해 수습에 관한 내용이 계약에 없다'는 이유로 발견된 유해를 3,460m 심해에 두고 그냥 돌아왔다. 국회에서 열린 평가공청회에선 '1차 심해수색은 미흡했고 침몰원인 규명과 유해 수습을 위해 2차 심해수색을 해야 한다'고 결론내렸다.
이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선 2차 심해수색을 위한 예산 100억을 의결해서 예결위에 올렸으나 최종 단계에서 기획재정부의 강력한 반대로 전액 삭감됐다. 100억 원이 졸지에 '0원'이 되고 말았다.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수색에 대한 기획재정부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안일환 기재부2차관은 “이 사안은 원칙적으로 민간선사 책임"이라며 "정부도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 1차 예비비를 53억 원을 지원했다는 점이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향후 유사 사례에 대해 민간선사의 책임으로 인한 사고 조치 비용을 정부가 지원하는 선례로 남을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입장을 내놓았다.
실종자 가족과 스텔라데이지호 대책위원회 측은 반대로 "올바른 선례를 이번 기회에 남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예기지 못한 사고를 당해 피해를 입었을 때, 이것을 수습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는 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이자 책무라는 주장이다.
아래는 스텔라데이지호 대책위원회 기자회견문 전문.
스텔라데이지호 2호 심해수색 예산 또다시 0원!
기획재정부, "민간인 사고는 국가예산 쓸 수 없어"
국민들은 규탄한다!
문재인 대통령 1호 민원,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수색 예산이 기재부의 반대로 '또다시 0원'이 되었다.
힘든 과정을 거쳐 지난해 1차 심해수색을 했지만 침몰의 진상은 밝혀진 바 없고 3,400m 바다 속에 가라앉은 우리 아들들의 유해는 돌아올 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내년에도 스텔라데이지호 심해수색 재개를 위한 정규 예산을 배정받지 못했다.
여·야당 국회의원들은 한 목소리로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수색을 위한 예산 100억 원 증액을 강력하게 요청했으나,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기획재정부는 끝까지 강경하게 반대했다.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수색을 요구하고 있는 시민사회의 입장은 절대 무리한 것이 아니다.
1차 심해수색 이후 국회는 '1차 심해수색 평가 공청회'를 개최하여 1차 심해수색이 실패했으며 침몰원인을 명확히 밝히고 발견된 유해를 데려오기 위해 2차 심해수색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또한 올해 9월, 여·야 17인 국회의원들이 공동주최한 '제2차 심해수색 추진을 위한 국회 공청회'에서는 침몰원인을 밝히고 유해수습을 할 수 있는 과학적·기술적 방법과 장비를 확인했다.
우리는 1차 심해수색으로 단 3일 만에 남대서양에 가라앉아 있는 스텔라데이지호를 찾아냈다. 그리고 부서지지 않고 멀쩡히 보존된 조타실 내부에는 11명의 선원 유해가 남아있을 개연성을 확인했다. 1차 심해수색 때 회수하지 못했던 블랙박스 본체 추정물체도 영상으로 확인했다.
우리는 불가능한 일을 해달라고 억지를 쓰는 것이 아니다.
침몰원인을 정확하게 밝혀내고 또 다른 유사 사고를 막아달라는 실종자 가족들의 요구는 정당하다. 1차 심해수색 당시 눈앞에 뻔히 보이는 유해를 보고도 데려오지 못한 그들의 피맺힌 절규를 이제는 들어주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더이상 성장 중심의 경제 논리만 앞세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도외시하는 나라가 아니어야 한다. 심해수색 비용 100억 원이 없어서 국민의 유골조차 수습하지 못한다는 것은 국제사회에도 부끄러운 일이다. 스텔라데이지호 심해수색 예산은 단순히 한 사건을 종결짓기 위한 매몰비용이 아니라 재발방지를 위한 예방비용이다.
그런데 기획재정부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군인이나 경찰이 아닌 민간인의 사고에는 국가예산을 편성할 수 없다"는 입장을 국회에서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것은 누구의 논리인가? 공무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기획재정부의 주장은 대체 어느 시대의 사고방식인가?
민간인도 당연히 대한민국 국민이다. 국민이 사고를 당했을 때 무엇이 잘못되어 사고를 당했는지 확인하고, 또 다른 사고의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는 것은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끝까지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이다. 이를 포기한 국가는 더이상 국민이 주인인 민주국가라 할 수 없다.
기획재정부가 민간인의 경우에는 사고를 당하더라도 국가 예산을 투입할 수 없다고 한다면 민간인인 국민은 국가에 세금을 낼 이유가 없다. 의무만 부담해야 하고 권리는 주장할 수 없다면 이 또한 헌법정신에 반하는 일이다.
기획재정부는 지금이라도 조속히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수색을 위한 에비비 편성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더이상 시간끌기를 해서는 안 된다.
기획재정부는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의 특별조사보고서가 나오면 그에 따라 2차 심해수색 필요성을 검토해보겠다고 한다.
그러나 국회는 이미 두 번의 공청회를 개최하여 2차 심해수색의 필요성과 기술적 성공 가능성을 확인했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여·야당 한 목소리로 2차 심해수색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획재정부는 국회 공청회의 공신력을 무시하고 갖은 핑계를 대며 시간만 끌고 있다.
민간인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가의 보호를 받을 당연한 권리가 있다.
이미 늦었지만, 더는 늦춰져서는 안 된다.
하루빨리 예비비를 편성하고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수색을 추진해야 한다.
내가 언제 어떻게 재난참사의 피해자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제는 보다 안전한 국가로,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국가로 한걸음 나아가야 할 때이다.
202년 12월 8일
스텔라데이지호 대책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