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감록》에서 전쟁, 전염병, 흉년이 없다고 말한 십승지 중 단연 일승지로 유명한 풍기면의 금계마을을 끼고 있는 영주시는 모든 국민이 한 번쯤 가볼 만한 힐링장소다. 풍기인삼과 사과로 유명한 영주시를 책임지고 초선 시장답게 열심히 발벗고 뛰고 있는 장욱현 시장을 만났다.
이영애(《월간 지방자치》 편집인)_ 지난달 책임읍면동제를 본지 특집으로 다뤘는데, 공무원들이 주민을 직접 찾아와 매우 좋아한답니다. 시장님의 철학과도 맞는 정책인 것 같은데요.
장욱현(경상북도 영주시장)_ 저도 선거 때 시민이 주인이 되는 지방자치를 선언했습니다.
이영애_ 그런 생각은 공직생활을 하면서 느끼신 것인가요? 아니면 단체장을 맡으면서 고민한 것인가요?
장욱현_ 중앙부처에 근무할 때만 해도 제조업자나 무역업자를 주로 만났습니다. 단체장을 하면서부터는 정말 다양한 분을 만납니다. 기업과는 완전히 다르더군요.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를 시작한지 반세기가 지났고, 지방자치도 20년이 되었지만 아직 일천합니다. 여전히 국민에게 주권이 있는 문화가 아닙니다. 오랜 문화와 전통이 깊은 뿌리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시민들이 시청에 가서 공무원을 상대하면 ‘안 된다’, ‘어렵다’는 소리를 들어 답답하다고 하십니다. 시민들이 법 내용이나 예산을 얼마나 알겠어요? 시청의 오너는 시민입니다. 시민을 정말 주인으로 받드는 그런 행정문화를 만드는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영애_ 많은 공공기관이 전문가보다 시민참여를 늘리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이게 사실 선진국형 행정입니다. 앞으로 영주를 비롯해 우리나라가 그렇게 변해야 합니다.
장욱현_ 맞습니다. 일제치하 후 민주화되었지만 왕정시대나 일제치하에서는 관 주도였습니다. 고려, 조선시대에는 지방수령이 재판권까지 삼권(입법·사법·행정)을 다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나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관이 행정을 주도해 끌고가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그만큼 민간이 전문화되었어요. 이제 민간의 좋은 생각들을 북돋아주는 것이 행정의 역할이 되어야 합니다.
이영애_ 결국 공무원들이 마음으로 따라줘야 할 텐데요. 그 차원에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장욱현_ 문화가 바뀌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행정문화를 민간이 주도하는 쪽으로 변화시키려고 열심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직원들도 종합성과평가시스템을 도입해 부서별 시정업무 추진성과와 직원 개개인의 직무역량에 대해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하려고 합니다. 사실 공공분야는 민간기업과 달리 실적 평가를 하기 쉽지 않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성과를 객관화해서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도록 시민을 주인으로 잘 모시는 것을 기준으로 평가하겠습니다.
이영애_ 공직에 오래 계셔서 뼈 속까지 공무원 조직을 잘 아시지 않겠습니까?
장욱현_ 네, 그렇긴 한데요. 제가 근무한 중앙부처는 분야가 한정돼 있지만 이곳은 외교, 국방을 빼고 다 집행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기본적인 행정조직문화는 비슷합니다.
이영애_ 중소·중견기업이 성장하는 나라가 탄탄한 나라라고 하는데, 지역경제활성화를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계신가요?
장욱현_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지역경제입니다. 수도권에 인구는 절반이, 경제는 70%가 집중돼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대가를 치르고 있어요. 중앙부처에 근무할 때는 잘 몰랐는데, 지방에 와보니 정말 심각합니다. 예를 들어 FTA 대책으로 농촌을 지원하는데, 농림부의 틀을 가지고 지원하다보니 지방의 사정이 고려되지 않습니다. 일률적으로 가는 거죠. 그러다보니 쓸데없는지원이 되고 꼭 필요한 곳은 묵살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건 꼭 개선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지방 재정권이 확대되어야 합니다. 2할 지방자치지만 지방이 전체의 60%에 달하는 돈을 씁니다. 자립도가 20%니 40%는 중앙에 가서 얻어 와야죠. 얻어오는 건 좋은데, 지방의 구체적인 사정을 잘 모르고 지원하는 게문제입니다. 좁은 땅에서 지자체들의 여건이 비슷하다보니 차별화 전략이 중요한데, 이에 영주시는 뛰어난 자연과 문화를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소백산은 온대와 한대 경계선 상에 있는 산으로 생물군이 아주 다양합니다. 해발고도 1430m로 좋은 농산물이 많이 납니다.
이영애_ 어떤 작물이 많이 있나요?
장욱현_ 우선 사과가 전국 생산량의 14%를 차지합니다. 생산량이 많을 뿐 아니라 일교차가 심해 당도도 높고 단단합니다. 영주산 국화꽃도 조직이 단단해 늦게 시들어 양재 화훼시장에서 제일 비싸게 팔립니다. 소고기도 아주 우수합니다. 강남구와 자매결연을 맺어 명절마다 강남구청 앞마당에서 영주소고기를 판매하는데, 주부들이 2~3시간이나 기다릴 정도입니다. 또한 올 9월에 전국 최초로 산림청이 운영하는 산림치유원이 소백산에 들어섭니다. 산림을 이용한 최초의 힐링특구로 힐링관련 산업을 묶어 치유농업도 펼칠 계획입니다. 힐링을 주제로 하는 산업을 집적화시켜 나갈 계획입니다.
이영애_ 힐링은 앞으로 10년, 100년 후에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장욱현_ 맞습니다. 갈수록 시장도 커질 것입니다. 영주시는 인근 15개 시군 중 교통, 특히 철도 교통이 잘 발달된 곳입니다. 과거 영주철도청이 있었고, 석탄산업이 한창일 때 물류 중심지로 경제의 활력이 넘쳤습니다. 석탄산업과 철도교통이 줄어들면서 이제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야 하는데, 제조업을 정책적으로 다루려고 합니다. 주변 도시 중 제조업이 제일 강하고 안동과 비교해 제조업 출하액이 4~6배 많습니다. 다국적 기업도 있고, 동양제철화학그룹의 반도체 공장도 있습니다. 중부내륙 중심에 제조업 특화도시를 추진하겠습니다. 특히 베어링 관련 업체를 묶어 클러스터 단지를 하나 만들려고 합니다.
이영애_ 1년 동안 시정을 펼치시면서 중앙부처에 제안하고 싶은 것은 없으신가요?
장욱현_ 앞으로 총선, 대선에서 핫 이슈가 될 만한 것은 지방재정입니다. 지방자치가 이대로 가서는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습니다. 지방재정권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이영애_ 중앙부처도 다 넘겨주고 싶지만 아직 못 미더운 게 많다고 합니다.
장욱현_ 지방자치를 시행한지 20년이 되었고, 중앙부처에서 지방의 특성과 다양성을 인정해줘야 합니다. 민주 정부의 힘은 거기서 나옵니다. 획일적인 잣대를 들이대면 여러 문제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 FTA를 대비해 과수농가의 어려움을 돕기 위해 추진하는 사업의 경우 영주에서 포화상태인 사과나무를 계속해서 지원하는 것은 안 되죠.
이영애_ 수요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생기는 문제인데, 이를 개선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장욱현_ 지방의 구체적인 사례까지 다 조사하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지방재정을 확충시키고 중앙정부에서 지자체가 적절한 시책을 펼치도록 재정을 다양하게 추진할 길을 열어줘야 합니다.
이영애_ 영주시에서는 예비 농업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젝트를 잘 운영하고 계신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신가요?
장욱현_ 전국 최초로 체류형 농업창업지원센터를 만들어 귀농귀촌하실 분들이 센터에 입주해 6개월~1년 동안 경험을 해보도록 하고 있습니다. 시가 나서서 귀농귀촌인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돕는 것입니다. 영주는 귀농귀촌하는게 좋은 이유가 농특산품이 많고 이곳은 정말 해볼 수 있는 것이 사과와 전국 최대 집산지로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풍기인삼이 있습니다.
풍기는 우리나라 최초로 밭에서 경작해 산삼을 인삼으로 만들기 시작한 지역입니다. 소백산이 산삼을 인삼으로 배양하기 좋은 곳입니다. 지원센터에서 실습과 적응기간을 걸쳐 특화된 아이템을 선정하고 노후생활을 여유롭게 지내려는 분도 많이 찾아옵니다. 무엇보다 영주시는 《정감록》에서 말한 십승지 중 일승지이기도 합니다.
이영애_ 열 곳의 지역 중 최고라는 말이겠네요.
장욱현_ 맞습니다. 옛날 《정감록》에 기록되기를 십승지는 흉년, 전염병, 전쟁 3가지 재난에서 안전한 곳을 말하는데요. 풍기읍의금계동이 바로 그 지역입니다. 십승지 열 곳 중 일승지는 단연 영주입니다. 그런데 요즘 산림학 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소백산은 음이온 방출량이 다른 산의 6배라고 합니다. 현재 십승지 지자체들이 모여 농축산물 공동 브랜드 사업도 추진하고 있는데요. 작년 연말에는 국회에서 출범식을 갖기도 했습니다.
이영애_ 정말 대단하네요. 끝으로 영주시민들과 공직자들에게 당부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장욱현_ 이제 시작입니다. 취임 후 문화나 섬김행정에 대한 조그만 성과도 있었고, 국민권익위원회가 평가한 민원만족도 조사에서 경북에서는 1위, 전국에서는 11위를 했습니다. 매니페스토 운동본부 공약이행에서도 최우수등급을 받았습니다. 지방정부든 중앙정부든 궁극적인 목표는 결국 주민행복입니다. 가치를 거기에 둬야 합니다. 일자리 창출도 필요하고 문화육성시대에 문화도 중요한 자산입니다. 일상 생활의 불편을 해소하는 것이 다 일인데, 제가 처음 약속한 시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일을 임기동안 계속 추진하겠습니다. 이 모든 게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으니 꾸준히 노력해 목표를 달성하겠습니다.
이영애_ 좋은 자연자원을 많이 갖고 있는 영주시가 전국제일의 관광명소가 되길 바며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