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예산은 기다리는 돈이 아니다 유럽연합은 2021~2027년 결속정책 예산으로 프랑스에 184억 유로, 한화로 약 32조 원을 배정했다. 결속정책은 지역 간 격차를 줄이고 고용, 사회통합, 친환경 전환, 혁신을 지원하는 EU의 대표 투자 정책이다. 이 예산은 중앙정부가 일괄적으로 나눠주는 돈이 아니다. 지역과 도시가 어떤 사업을 설계하고 신청하느냐에 따라 실제 확보 규모와 활용 방식이 달라진다. 프랑스 제3의 도시권인 리옹 메트로폴(Méropole de Lyon)은 이 구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도시다. 리옹은 EU 예산을 도시 정책을 실행하는 핵심 수단으로 본다. 사회통합, 일자리, 도시재생, 기후중립, 스마트시티 사업을 EU 공모와 연결하고, 전담 조직과 도시 네트워크를 통해 사업을 발굴한다. 사회정책도 EU 자금으로 설계하다 리옹 메트로폴은 유럽사회기금 플러스(ESF+)의 위임 관리 기관이다. ESF+는 고용, 교육, 사회통합,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EU 재원이다. 리옹은 이 재원으로 2022~2027년에 사회적 취약계층의 직업 재통합, 여성 자립, 고용 접근성 강화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리옹은 지역의 사회정책 목표를 먼저 세우고, 그 목표에 맞
박용진은 쉽게 물러서는 사람이 아니었다. 유치원 3법을 밀어붙일 때도, 재벌개혁을 말할 때도, 그는 박수보다 먼저 비난과 고립을 견뎌야 했다. 정치적 유불리보다 제도의 변화를 앞세웠고, 불편한 싸움 앞에서도 끝내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소신은 차갑기만 하지 않았다. 첫아이를 품에 안았던 순간을 인생의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꼽고, 아내에게 “여보, 고마워.”라고 말하는 사람. TV 속 강한 정치인과 달리, 실제의 박용진은 편안하고 유쾌했으며, 단단함 속에 따뜻함을 품고 있었다. 이제 그는 대통령 소속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다시 제도 변화의 한복판에 섰다. 낡은 규제는 과감히 걷어내고, 필요한 규제는 새 질서로 세우겠다는 그의 말에는 정치인의 신념과 생활인의 감각이 함께 담겨 있었다. 그에게 규제혁신은 구호가 아니라 국민의 불편을 덜어내는 일이고, 지방정부가 스스로 도전할 수 있도록 길을 여는 일이다. 소신을 지키되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 할 말은 하고 할 일은 끝까지 해내려는 정치인 박용진. 대한민국에 필요한 새로운 길을 품고 날아오르는 그의 도전이 기대된다. 이영애 월간 지방정부 발행인_
쓰레기 처리 비용을 수익으로 바꾸다 덴마크 칼룬보르(Kalundborg)는 인구 약 2만 명의 소도시다. 그러나 산업생태학 분야에서 이 도시는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기업들이 서로의 폐기물과 부산물을 원료로 교환하는 ‘산업 공생(Industrial Symbiosis)’ 모델이 이곳에서 가장 먼저 작동했기 때문이다. 칼룬보르의 실험은 거창한 환경 정책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1970년대 초, 기업들이 물과 에너지, 원료를 더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협력하면서 시작됐다. 한 기업의 폐기물이 다른 기업에는 필요한 원료가 될 수 있다는 발견이 시작이었다. 폐기물 처리 비용을 줄이고, 원료 구매 비용도 낮출 수 있다면 기업이 협력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공장과 공장이 자원을 나누는 방식 칼룬보르 심비오시스(Kalundborg Symbiosis)에는 현재 17개 안팎의 공공·민간 기업과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대표적인 참여 주체는 세계적 제약회사 노보 노르디스크(Novo Nordisk), 효소 기업 노보자임스(Novozymes), 아스네스 발전소(Asnæs PowerStation), 칼룬보르 정유소(Kalundborg Refinery), 지방정부와 공공 유틸리티 기관
보조금보다 중요한 도시의 조건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Austin)은 2020년대 들어 미국에서 빠르게 성장한 도시 중 하나다. 한때 대학도시이자 라이브 음악과 스타트업의 도시였던 오스틴은 이제 전기차와 반도체, 인공지능 산업이 모여드는 첨단 제조 거점으로 변하고 있다. 그 전환의 중심에는 테슬라 기가팩토리 텍사스와 삼성 오스틴 반도체가 있다. 오스틴의 변화는 한국 지방정부에도 익숙한 질문을 던진다. 기업은 왜 특정 도시를 선택하는가. 대규모 보조금과 세금 감면만 있으면 기업 유치가 가능한가. 오스틴이 보여주는 답은 조금 다르다. 기업을 실제로 움직이게 하는 것은 빠른 행정, 안정적인 인력 공급, 대학과 기업이 연결되는 산업 생태계다. 테슬라가 바꾼 고용 지도 테슬라는 2020년 오스틴 인근 트래비스 카운티에 기가팩토리 텍사스 건설을 발표했다. 약 2,500에이커(약 1,011만㎡) 규모의 부지에 들어선 이 공장은 전기차와 배터리, 부품을 생산하는 대형 제조 거점이다. 공장 건물 면적만 1,000만 제곱피트(약 93만㎡)로 세계 최대급 단일 공장 건물 중 하나다. 공장이 들어서면서 전기차 산업을 중심으로 공급망과 고용 구조도 함께 이동했다. 고용 효과는 빠르게
인구 감소에 다른 방식으로 답하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북유럽 복지국가로 알려진 핀란드도 인구 구조 변화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핀란드의 대표 도시 탐페레(Tampere)는 이 문제를 출산 장려금만으로 풀지 않았다. 아이를 더 낳으라고 호소하는 대신, 전 세계의 청년과 전문 인력, 창업자를 도시로 끌어들이는 전략을 택했다. 탐페레는 2025년 기준 인구 약 26만 명인 핀란드의 세 번째 도시다. 핀란드 남부의 주요 산업·교육·문화 거점으로 꼽히는 이 도시는 지역 대학과 기업, 시청을 하나의 인재 유치 시스템으로 묶었다. 외국인 유학생과 전문 인력을 일시적 체류자가 아니라 지역에 남을 생활인구이자 경제인구로 본 것이다. 외국인 유학생을 지역 인재로 바꾸다 핀란드 정부는 2021년 교육정책보고서에서 2030년까지 외국인 학위 유학생 수를 세 배로 늘리고, 외국인 졸업생의 75%가 핀란드 노동시장에 진입하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유학생을 많이 받는 데서 그치지 않고, 졸업 이후 취업과 정착까지 연결하겠다는 전략이다. 탐페레는 이 국가전략을 도시 차원에서 구체화했다. 탐페레에는 탐페레대학교(Tampere University)와 탐
보조금에 기대지 않은 철도 모델 도시철도는 지방정부에 부담이 큰 사업이다. 건설비가 막대하고, 개통한 이후에도 차량·역사 관리, 안전 점검, 유지보수 비용이 계속 든다. 이용객이 많아도 운임 수입만으로 건설비와 운영비를 모두 회수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도시철도는 중앙정부 보조금, 지방비, 공기업 부채에 기대어 추진된다. 홍콩 MTR(Mass Transit Railway, 도시철도)은 이 구조를 다르게 풀었다. 도시철도 운임 수입만으로 운영하는 대신, 역 주변 개발권을 활용해 아파트, 쇼핑몰, 오피스에서 나오는 분양 수익과 임대 수익을 도시철도 건설과 운영 재원으로 돌렸다. 이른바 R+P 모델이다. 철도(Rail)를 놓고, 그 주변 부동산(Property)을 함께 개발해 수익을 내는 방식이다. 철도가 들어서면 역 주변 토지 가치가 오른다. 홍콩은 이 가치 상승분을 민간에만 맡기지 않고 도시철도 재원으로 회수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철도역을 도시개발의 출발점으로 R+P 모델의 핵심은 개발권이다. 홍콩 정부는 MTR에 철도 노선과 역 주변 토지의 개발권을 부여한다. MTR은 이 권리를 바탕으로 민간 개발사와 공동 개발을 추진한다. MTR은 철도역만 지은 것
The best way to predict the future is to create it.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7월 1일, 민선 9기가 다시 출발한다. 선거의 함성은 잦아들고, 축하의 꽃다발과 현수막은 내려가지만 주민의 기대는 이제부터 시작된다. 남는 것은 단 하나다. 진짜 힘들어하고, 물가 고공행진 속에서 가장 큰 부담을 감내하는 주민들의 삶을 얼마나 따뜻하게 바꾸었는가. 새롭게 시작하는 단체장과 공직자에게는 변명할 시간이 없다. 중앙정부를 탓하거나 예산 부족을 이유로 핑계를 삼는다면 지방정부는 주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좋은 단체장은 “안 됩니다.”라는 보고를 듣고 끝내는 사람이 아니다. 방법을 찾게 하고, 공직자를 움직이며, 의회를 설득하고, 기업을 불러오고, 주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사람이다. 행정은 관리가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어야 하며, 공직은 관성이 아니라 책임이어야 한다. 앞으로 4년, 지방정부의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다. 스스로 길을 만드는 도시와 누군가의 지시를 기다리는 도시는 전혀 다른 미래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제 지방정부는 보여주어야 한다. 민원이 얼마나 빨라졌는지, 골
해외의 만남 지원 정책이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다. 일부 정책은 ‘세금으로 소개팅을 시켜 주느냐’는 냉소와 함께 예산 낭비 논란에 휩싸였다. 문제는 만남 지원 자체가 아니라 설계 방식에 있었다. 청년의 삶과 지역 정착을 이해하지 못한 채 단체장의 홍보성 행사로 접근하거나, 참가자 수와 커플 성사 건수만 성과로 내세운 사업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실패 사례를 직시하는 일은 한국 지방정부가 이 정책을 도입할 때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실패한 정책의 공통 패턴 ● 보여주기 행사 지역 홍보용 사진만 찍고 끝나는 단발 이벤트 ● 억지 참가 관공서 직원 동원, 참가자 수 채우기 급급한 구조 ● 성과 숫자 집착 커플 성사 건수만 성과 지표로 삼는 방식 ● 사후 연계 부재 행사 후 관계 지속을 돕는 구조 없음 ● 인구정책과 단절 주거, 취업, 지역 정착 정책과 연결되지 않는 고립된 이벤트 실패한 만남 정책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사진 찍기 좋은 행사, 동원된 참가자, 커플 성사 건수 중심의 성과 관리, 사후 모임 부재가 반복된다. 행사 뒤 다시 만날 공간과 커뮤니티가 이어지지 않으면 만남은 일회성 경험으로 끝난다. 공공은 ‘중매인’이 아니라 ‘관계 설계자’다 일본의 여러
덴마크는 다른 나라와 접근 방식이 다르다. 정부가 소개팅 행사를 직접 주관하기보다, 사람들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만나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주거 환경과 공동체 구조를 만드는 데 초점을 둔다. 이 배경에는 덴마크의 코하우징, 즉 ‘보펠레스스카브’ 문화가 있다. 코하우징은 각 세대가 독립된 주거 공간을 갖되, 공동 식당, 공용 주방, 세탁실, 텃밭, 작업실, 놀이 공간 등을 함께 쓰는 주거 방식이다. 덴마크의 합계출산율은 한때 1.7명 안팎을 유지하며 북유럽 국가 중 비교적 안정적인 편으로 평가됐지만, 최근에는 하락세가 뚜렷하다. 여기서 합계출산율이란 한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를 뜻한다. 현재의 연령별 출산 수준을 가정할 때 여성 1명이 생애 동안 몇 명의 아이를 낳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덴마크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합계출산율은 약 1.47명 수준까지 낮아졌다. 억지 소개팅 대신 관계의 장 덴마크 코하우징의 출발점은 1970년대다. 세계 최초의 현대적 코하우징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세테담멘(Sættedammen)은 1972년 덴마크에서 조성됐다. 이곳은 여러 가구가 독립된 집에 살면서도 공동주택과 공동 공간을 중심으로
공공기관의 특별한 직원 복지 중국은 지방정부, 공공기관, 국영기업, 관광지가 함께 청년 만남에 애쓴다. 싱가포르가 정부 인증과 민간 서비스 관리에 초점을 둔 것과 결이 다르다. 중앙정부가 전국 단위 매칭 시스템을 운영한다기보다, 지역별로 청년 교류 행사, 직장인 만남 프로그램, 관광지형 소개팅 이벤트가 다양하게 펼쳐진다. 중국에서도 결혼 감소가 문제다. 혼인 등록 건수는 2013년 1,346만 쌍 수준으로 정점을 찍은 뒤 하락했고, 2024년에는 610만 6,000쌍으로 전년보다 20.5% 줄었다. 2023년에 일시적으로 반등했지만 다시 감소하면서, 지방정부와 공공기관은 결혼 문제를 청년정책과 지역 활력 정책의 일부로 다루고 있다. 지역 문화도 ‘즐기는’ 만남 행사 중국의 대표적인 특징은 만남 행사를 지역 문화·관광 자원과 결합한다는 점이다. 항저우 시후 일대, 허난성 카이펑 등 일부 관광지에서는 청년 만남 행사나 공개형 매칭 이벤트가 열려 왔다. 참가자는 단순히 소개팅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공연, 게임, 산책, 지역 문화 체험, 관광을 함께 즐긴다. 부담스러운 맞선이 아니라 청년들은 ‘놀러 가는 행사’처럼 참석한다. 허난성 카이펑의 이른바 ‘왕포 매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