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국제 NGO 클린 시티즈 캠페인(Clean Cities Campaign, CCC)은 'City Ranking 2025: Streets for Kids Edition – Streets for Kids, Cities for All'을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유럽 주요 36개 도시를 대상으로, 그 도시가 어린이가 직접 걸어 다니고 자전거를 타며 스스로 이동하기에 얼마나 안전하고 편리한지를 점수화한 것이다.

CCC는 유럽 내 다양한 NGO, 시민단체, 건강, 환경 단체들이 모여 만든 연합체로서 도시 교통, 이동 수단을 제로배출(Zero-emission) 중심으로 전환함으로써 도시 내부의 대기질 개선, 기후변화 대응,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한다. 이 캠페인은 Transport & Environment (T&E)가 주관하거나 호스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활동 시한 목표로 2030년까지 도시의 이동수단을 제로배출(즉, 오염을 유발하는 차량 대신 전기차, 공유차,
걷기, 자전거 등)로 바꾸자는 비전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캠페인은 여러 가지 하위 활동, 프로젝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보행, 자전거·킥보드 등 ‘활동적 이동(active mobility)’ 확대
도시 내에서 자동차 중심의 이동이 아닌 걷기, 자전거 타기, 휠체어, 스쿠터 등 친환경 이동수단을 더 활용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 공공교통 및 공유 모빌리티(shared mobility)의 강화
차 한 대가 아닌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이나 공유차량, 공유자전거 등으로 전환을 촉진하고 있다.
■ 고배출 차량·화석연료 차량의 퇴출 / 저·무배출 구역 설정
예컨대 화물트럭을 대상으로 제로배출 차량만 운행하도록 하는 구역(zero-emission zones)의 도입을 지원한다.
■ 특정 주제 캠페인
“School Streets” (학교 앞 도로의 차량 통행을 제한하여 아이들의 보행 안전 및 대기질을 개선) “Streets for Kids” 행사 등을 통해 부모, 아이, 교사들이 참여하는 거리 활동을 전개
■ 정책·연구 활동
도시 모빌리티 변화를 위한 정책 권고서, 분석 보고서, 시민운동 자료 등을 발행하고 있다. 배경을 보면, 유럽연합에서 15세 미만 어린이는 전체 인구의 약 15%, 15–24세 청소년은 약 11%를 차지한다. 인구 구성상 결코 적지 않은 비중인데도, 도시계획에서는 ‘어른 기준’의 교통, 도로 정책이 여전히 주류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이번 랭킹은 단순한 아이 친화 이미지가 아니라 교통, 속도, 자전거, 학교 주변 도로 구조를 기
반으로 한 실제 인프라 지표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클린 시티즈 캠페인은 36개 도시를 세 가지 핵심 지표로 평가했다.
1. 스쿨 스트리트(School streets)
· 초등학교 주변에서 차량 진입을 전면 또는 시간대별로 제한하는 도로
· 등·하교 시간에 어린이와 보호자가 차량 없이 보행, 자전거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든 거리
2. 저속 도로 비율(30km/h 이하 속도 제한 적용 비율)
· 도시 전체 도로 중 시속 30km 이하 속도 제한이 적용된 도로의 비율
· WHO, OECD, 유럽교통안전위원회(ETSC)가 모두 “사고, 오염을 줄이는 ‘노 리그렛(no-regret)’ 정책”이라고
강조하는 핵심 지표
3. 보호형 자전거도로(Protected cycling infrastructure)
· 차도와 물리적으로 분리된 자전거도로가 도로망 중 얼마나 차지하는지
· 아이가 혼자 타도 안전한 수준의 인프라를 얼마나 갖추었는지를 보는 지표
이 평가에서는 여러 지표를 합산해 0~100%의 점수로 환산한 뒤, 그 결과를 다시 A부터 F까지의 등급으로 나타냈다. 흥미로운(그리고 다소 충격적인) 점은, 많은 도시들이 시속 30km 이하의 속도 제한 정책에서는 비교적 좋은 성과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스쿨 스트리트(등하교 시간 차량 제한 구역)’ 정책과 보호형 자전거도로가 매우 부족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종합적으로 높은 점수를 낸 상위권 도시들조차 A등급을 받은 곳은 단 하나도 없었다. 즉, 도시 안
전 정책 중 일부는 잘 진행되고 있지만, 정작 아동과 보행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핵심 요소들이 부족해
전체적으로 높은 등급을 받지 못한 것이다.
또한, 보고서에 따르면 36개 도시의 보호형 자전거도로 평균은 도로 길이의 17%에 불과하고, 10개 도시는 스쿨 스트리트가 아예 0개, 5개 도시는 30km/h 이하 도로 비율이 10%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유럽조차 “아이 우선 도시”라는 말에 걸맞은 인프라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의미다.

파리 1위 75점, 암스테르담 2위 63점
여러 언론 보도와 유엔 유럽경제위원회(UNECE) 정책보고서에 따르면, 상위 10개 도시는 다음과 같다.
파리는 불과 10년 전만 해도 차량 정체와 대기오염으로 악명 높은 도시였다. 그러나 2024년 하계 올림픽을 계기로 대규모 교통, 공간 개편이 이뤄졌고, 이번 랭킹에서 광범위한 인프라 변화가 수치로 확인됐다. 이번 평가에서 이 도시는 종합 점수 75%로 36개 도시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특히 스쿨 스트리트가 약 220개에 달해 아동 중심의 안전한 통학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두드러졌다. 또한 전체 도로의 89%가 시속 30km 이하 속도 제한을 적용 받아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에게 매우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전거 인프라 역시 매우 우수한데, 보호형 자전거도로가 전체 도로 길이의 약 48%를 차지해 헬싱키와 함께 공동 1위를 기록했다. 즉, 파리는 통학길 안전, 속도관리, 자전거 인프라 등 아동 친화 교통정책 전반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학교 운동장을 ‘오아시스(Oasis) 놀이터’로 바꾸는 사업을 추진해 131개 학교 운동장을 그늘과 녹지가 있는 놀이터로 재설계했고, 저소득 가정을 위한 초저가 급식(최저 0.13유로 수준), 유기농 급식, 방과 후 활동, 아동용 무료/할인 교통정책 등을 함께 묶어 공간 + 복지 + 이동권을 통합한 “아이 우선 도시 패키지”를 실험하고 있다.
이번 랭킹은 직접적으로 복지, 도시계획 전부를 평가하진 않지만, 교통 인프라의 급진적 전환이 아이 친화적 도시정책의 토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수치로 보여주었다.
암스테르담
암스테르담은 오랫동안 전 세계가 인정하는 대표적인 자전거 도시다. 하지만 이번 평가에서는 단순히 자전거 이용률이 높은 지보다, “어린이 기준에서 얼마나 안전한가?”라는 새로운 질문을 받게 됐다. 종합 점수는 63%로 전체 2위를 기록했지만, 파리 등 다른 도시들이 보다 급진적인 교통 실험을 펼치면서 오히려 기존 의 자전거 선진 도시들이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감도 드러난다.
현재 암스테르담은 기존의 방대한 자전거 인프라를 기반으로 스쿨 스트리트 확대, 30km/h 속도 제한 구역 확장, 아동 중심 네트워크 구축 등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즉, ‘성인 자전거 중심 도시’에서 ‘아이도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자전거 도시’로의 진화를 추진하는 중이다.

앤트워프
안트베르펜은 대형 항만과 물류 산업 중심지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최근에는 도심 교통 체계를 완전히 재편하면서 놀라운 성과를 냈다. 종합 점수 62%로 3위를 차지했으며, 새롭게 연결된 자전거도로, 스쿨 스트리트 확대 등 ‘아이도 항만도시 한복판에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겉으로 드
러나는 화려한 혁신은 아니지만, 꾸준한 도심 교통공간 재설계가 상위권 진입의 배경이 됐다.
런던
흥미롭게도 런던은 스쿨 스트리트가 무려 525개로 유럽 최다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속도 제한 정책이나 자전거 인프라가 파리, 암스테르담처럼 균형 있게 갖춰진 것은 아니어서, 종합 순위는 상대적으로 낮다. 이 사례는 “좋은 정책 1~2개만으로는 도시 전체 안전도를 높일 수 없다”, 즉 보행, 자전거, 주차, 대중교통, 도로 설계가 하나의 패키지처럼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벨기에·핀란드
벨기에의 브뤼셀과 헨트는 30km/h 전면 도입과 차량 진입 규제 강화로 높은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 핀란드 헬싱키는 파리와 함께 보호형 자전거도로 비율이 48%로 최고 수준, 최근 몇 년간 어린이 교통사고가 크게 줄어든 도시로 평가됐다.

‘아이 우선 도시’는 도시의 품격을 결정한다
이번 유럽 도시 랭킹은 결코 “어느 도시가 더 예쁜 놀이터를 만들었나” 를 평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평가의 핵심은 놀랍도록 단순한 두 가지 질문에 있다.
첫째, 아이가 혼자서 안전하게 걸어서 학교에 갈 수 있는가?
둘째, 친구 집에 자전거를 타고 찾아갈 때 부모가 걱정 없이 보낼 수 있는가?
도시는 이 두 질문에 대해 도로 설계, 차량 속도 제한, 보호형 자전거도로 같은 교통 인프라, 그리고 대기오염 관리 정책 등을 통해 정책적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한국의 도시들 역시 이제는 스스로의 현 수준을 냉정하게 평가할 시점에 와 있다. 어디가 강점이고, 무엇이 부족한지 수치로 드러내고 그에 맞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바로 이 유럽 랭킹이 앞으로 한국형 ‘아이 우선 도시(Child-First City)’ 전략을 설계하는 데 가장 현실적이고 유용한 벤치마크가 될 것이다.
우리 동네, 아이에게 얼마나 안전한 도시인가?
오른쪽 QR은 ‘내가 사는 동네가 아이에게 얼마 나 안전한 도시인가?’를 알아보기 위한 간단한 자가진단 리스트이다.
이 체크리스트는 당신의 도시가 아이의 통학 안전, 차량 속도 관리, 자전거 인프라, 학교 주변 환경, 시민 참여 등이 얼마나 갖춰져 있는지를 빠르게 파악하도록 돕는데 기반을 두었다. 그럼 지금부터, 우리 동네의 ‘아이 우선 도시’ 수준을 함께 진단 해 보자.
[티비유=최원경 리포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