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

공공재정 관리의 효율성 원칙과 재정성과주의

  • 등록 2022.12.23 17:49:03

 

민주성(재정민주주의), 효율성(재정성과주의), 건전성(재정건전주의)은 공공재정 관리에 있어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 내지는 추구해야 할 가치라고 할 수 있다. 민주성에 대해서는 지난 호에서 소개했고, 이번 호에서는 효율성, 즉 재정성과주의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1

 

저성장 시대, 재정성과주의는 피할 수 없는 선택

고도성장 시기에는 지출보다 수입이 더 빠르게 증가함으로써 양출제입(量出制入), 즉 투입 중심의 점증주의적인 예산운영이 가능했다. 그러나 재정압박(age of austerity)을 겪는 저성장 시대에는 이러한 점증적 지출 관행은 더 이상 지속 가능성이 없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석유나 천연가스 같은 국가자원이 부족하고 조세저항까지 큰 국가라면 재정자원의 압박은 더 크게 다가온다. 만일 재정압박을 피하기 위해 무리하게 차입을 추진한다면 재정관리에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재정압박에 대한 해법은 비교적 명확하다. 재정성과주의를 도입해 예산 과정 전반에 걸쳐 낭비를 최소화하는 한편, 보다 적은 자원을 투입해 보다 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보다 높은 성과를 달성하는 것이다. 재정성과에 대한 개념이나 측정 방법에 대해서는 명확한 규정이 없지만, 투입(inputs)이 자동으로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따라서 재정성과주의는 투입(또는 비용)에 대비한 산출(outputs)이나 결과(outcomes)의 상대적 크기의 관점에서 성과를 보려고 한다.2 

 

최소 투입으로 최대의 산출물이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재정사업을 설계하고 집행한다면 재정성과는 높아지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재정성과주의는 정부 재정지출의 효율성(efficiency: 투입 대비 산출)이나 효과성(effectiveness: 투입 대비 결과)을 높이려는 노력이라고 할 것이다.

 

공공 분야, 재정성과주의 정착이 어려운 이유

정부의 재정정책과 사업을 성과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공공재정은 시장과 달리 비용부담자와 편익 수혜자가 분리된 공유자원(common-pool)의 성격을 지니며, 집합적 의사결정 방식이 작동한다. 만일 재정 운용을 맡은 정부나 이를 감시·견제하는 의회가 도덕적 해이에 빠져 사적 이익을 추구한다면 재정관리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여기에 정부와 의회 사이에 정보 왜곡이나 비대칭 문제까지 결합한다면, 재정성과를 제고하는 노력은 물거품이 될 것이다. 또한 공공서비스의 상당 부분은 정부 기관이나 공기업 등을 통해 독점적으로 공급됨으로써 경쟁을 통한 추가적 효율성(x-efficiency)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실무적으로도 재정사업에 성과주의를 적용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먼저 정부 활동 대부분이 성과측정이 어려운 무형적 서비스라는 것이다. 정부 활동 중 계량적 성과평가가 가능한 시장적 혹은 영업적 활동은 매우 제한적이며, 대부분은 공기업을 통해 추진된다. 또한 공공재정의 투입과 산출(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뚜렷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재정사업의 결과를 온전히 정부 정책의 효과라고 설명하기도 어렵다. 예를 들어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 효과는 정부 정책 외에도 개인의 인식 변화 등 외부적 요인이 크게 작용할 수 있다.

 

재정성과를 활용할 때도 어려움이 따른다. 성과주의예산(performance budgeting)은 재정사업의 성과를 평가하고 그 결과를 다시 예산 규모의 조정에 반영함으로써 전반적으로 재정성과를 높이려고 한다. 문제는 성과 저조의 원인이 예산을 충분히 지원받지 못한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단지 성과가 저조하다는 이유로 예산을 감축한다면 이는 매우 잘못된 처방이 되고 만다. 성과 정보를 예산 또는 보상과 기계적으로 연계하는 것도 인센티브 구조를 왜곡시킬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성과지표 자체가 처음부터 잘 못 설정된 경우라면, 기관이나 개인이 성과평가에 매달릴수록 본질적인 정책목표와는 더 멀어지기 때문이다.

 

공공 부문 효율성 제고를 위한 지속적인 재정혁신 노력

OECD 국가들은 공공 부문의 효율성 제고 및 재정성과주의 정착을 위해 프로그램예산제도, 발생주의 회계제도 등 다양한 제도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가히 ‘재정성과 전쟁’이라고 할 만하다. 우리나라도 성과 중심의 재정 운용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선 재정성과 목표 관리제는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사전에 성과지표별로 성과 목표를 결정하고 사후에 성과 목표 달성 여부를 평가하는 방식이다. 특히 성과보고서는 재정사업에 대한 각종 평가자료와 함께 지출구조조정을 위한 지출심사(spending review)에서 중요하게 활용될 수 있다.

 

대규모 공공투자 사업에 대한 타당성 평가 및 총사업비 관리도 재정성과 제고를 위한 중요한 제도 중 하나다. 일정 규모 이상의 비용이 수반되는 개발사업에 대해서는 예산안 편성 시 이미 타당성이 확보돼야 하며, 예산편성 방식에서도 기본계획 수립, 기본설계, 실시설계, 발주, 시공 등 공정별로 총사업비 협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으며, 총사업비가 일정 비율 이상 증가하거나 국회 또는 감사원이 요청한 경우 타당성 평가나 수요예측을 재조사하도록 하고 있다.

 

한편 예산 낭비는 재정사업 성과를 갉아먹는 대표적 요인으로, 우리 정부는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도입했다. 우선 국가재정법에서는 조직 내부적으로는 예산 절감에 기여한 공무원에 대해, 외부적으로는 불법 지출 등을 신고한 국민들에게 성과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과 『공공재정 부정 청구 금지 및 부정 이익 환수 등에 관한 법률』에서는 보조금 등을 부정 또는 과다 청구하거나 부정 사용한 자에 대해 제재부가금을 부과하는 한편, 신고한 자에 대해서는 포상금이나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비용과 편익이 분리돼 있을 뿐만 아니라 투입과 산출의 인과관계가 뚜렷하지 않으며 재정사업 산출물이 무형적인 경우가 많아서 재정성과주의를 정착시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다. 그렇다고 하여 재정성과주의를 포기할 수는 없다. 공공부문의 예산 낭비나 정책 실패의 폐해가 국가 경제와 국민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특히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재정성과까지 저조하다면 결코 ‘좋은 예산’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 정부의 재정성과주의 정착을 위한 노력이 앞으로도 지속돼야 하는 이유다.

 

1  효율성의 원칙(재정성과주의)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필자의 《대한민국 공공재정론》 제5장 제3절을 참고하기 바란다.

2  산출(outputs)은 투입을 통해 제공한 재화나 서비스의 양을 의미하며, 결과(outcomes)는 산출물이 제공돼 나타나는 당초 정책이 의도했던 결과로서 정책목표의 달성 정도를 의미한다. 영향(impacts)은 공동체에 파급되는 거시적 변화로서 정책이 의도하지 않은 긍정적 혹은 부정적 영향을 포괄한다.

배너
배너

발행인의 글


"공직자 ‘권력’과 ‘봉사’는 같은 말...시민 목소리 늘 경청" [유정복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회장 겸 인천광역시장]

인터뷰는 개헌 얘기가 강을 이루며 민주주의의 바다에 이르렀다. 난파당하지 않고 견고한 몸으로 정박한 목선 유정복은 강인했다. 아니 처절했다. 공직생활을 꿰뚫는 봉사 정신은 권력에 대한 ‘지론’이었고 시민 국민과의 대화로 몸에 밴 ‘낮은 눈높이’는 권력을 쓰는 ‘정도’로 설명됐다. 달변이 아니어서 ‘선동’에 능하지 않고 제스처는 화려하지 않아 ‘분신술’과 거리가 멀다. 대한민국 시도지사협의회장으로서 더 큰 권력은 ‘지방분권’ 실현이었고 인천광역시장으로서 진정한 권력은 ‘시민 배부른 행복’ 쟁취였다. 시도지사협의회장으로서 지방분권 ‘완전’ 정복은 지역 경쟁력 강화로 이루어질 것이다. 개헌으로 인사 재정 조직의 권한을 중앙에서 넘겨받고 헌법 전문에 지방자치 실시를 못 박아야만 전체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대통령의 결단만 남았다. 전국에 메아리치는 지방자치 숙원민의가 가장 큰 원군이다. 인천의 성공 사례는 저평가된 것 같아 낯설다. 저출생을 뚫은 아이 플러스 드림 정책 시리즈나 부쩍 자란 지역경제는 전국구 모범사례다. 그러나 저출생 타개를 위해 인구 부처 신설안을 국회에 냈으나 ‘권력’에 막혀있다. 좋은 일

"산업 간 격차 해소 입법, 사회 통합의 정치 실현" [어기구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절실해진 시대, 그 해답을 진심으로 고민하는 정치인이 있다. 바로 어기구 국회의원이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을 아우르는 농해수위원장으로서 그는, 국민의 먹거리와 국토를 지키는 최전선에 서 있다. 하루에도 서너 건 이상의 민원과 간담회를 소화하며, 때로는 법안 발의로, 때로는 정부 부처를 설득하는 끈질긴 노력으로 지역과 나라를 동시에 돌보고 있다. 하지만 어 의원이 주목받아야 하는 이유는 단순한 ‘성실함’만이 아니다. 경제 펀더멘탈 붕괴를 경고하며 지금의 저성장 고착화를 막기 위해 ‘경제의 인공호흡’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정치권 안팎에 진중한 울림을 준다. 또한 사회 양극화 해소를 한국 사회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으며, 지역균형 발전과 사회통합을 향한 구체적 해법을 제시하는 그는, 단순한 선심성 발언이 아니라 구조적 대안을 이야기하는 보기 드문 현실주의자다. 특히 고향 당진에서는 철강산업 보호, 농공단지 활성화, 해경 인재개발원 유치 등 지역 생존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뛰고 있다. 작은 민생부터 거대한 국가 아젠다까지, 문제를 정확히 짚고 해법을 준비하는 사람. 지금 우리가 어기구를 주목해야

호주 노동委 “보육교사 등 50만명 임금 최대 35% 올려라”

호주 공정노동위원회(Fair Work Commission, FWC)는 여성 근로자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직종에 대해 최대 35%의 임금 인상을 권고했다. 이 조치는 약 50만 명의 근로자에게 영향을 미치며, 특히 유아교육, 사회복지, 보건 및 약사 등 전통적으로 여성 비율이 높은 직군이 대상이다. 4월 발표되 이 권고는 단순한 임금 조정이 아닌 성평등 실현을 위한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호주는 OECD 국가 중에서도 성별 임금 격차가 비교적 적은 국가 중 하나로 알려져 있으나, 여성 중심 직종에서의 ‘구조적 저평가’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2023년 기준, 호주의 성별 임금 격차는 13.3%였으며, 이는 여성들이 남성과 같은 일을 하더라도 연간 약 13,200 호주 달러(약 1,170만 원) 적은 수입을 가져간다는 의미다. FWC는 이러한 구조적 격차가 여성 다수가 종사하는 돌봄·복지 직종의 사회적 가치가 임금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성중립적 평가 대신 ‘성인지적 가치 평가’를 적용한 최초의 판결을 내렸다. 여성 중심 산업의 임금 인상 배경 이번 결정은 2022년 알바니지(Albanese) 정부가 도입한 ‘공정노동법(Fa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