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도시재생, 우리에게 곧 다가올 과제 - 스페인의 경험을 중심으로

 

1.png

​[박희권 주스페인 대사]

 

다수의 미래 전망 보고서에서 공통적으로 꼽는 2050년대 메가트렌드는 '전 세계의 도시화'이다. 현 50% 대의 도시화 진행률은 2050년에 이르러 90%까지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연히 도시민의 ‘삶의 질’ 향상이 인류의 관심사가 될 것이다.

 

현대 도시들 간의 경쟁은 점차 그 속도를 빨리하며, 도시의 수명 역시 짧아지고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도시의 판을 새로 짜는 도시재생의 개념이 생겨난 배경이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성숙단계에 접어든 미국과 유럽에선 이미 30~40년 전부터 도시재생사업이 시작되었다.

 

우리 역시 여러 지자체에서 지속가능한 도시건설을 위해 다양한 실험과 도전을 준비 중이다. 자기 지역이 가진 가능성을 바탕으로 각자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필자가 있는 스페인 역시 도시재생사업 분야에서 자주 거론된다. 스페인이 특유의 역동성과 지방에 대한 애착을 바탕으로 여러 도시재생사업 성공 사례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들의 선례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쇠퇴한 철강도시에서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 ‘빌바오’

  

스페인 북부 비즈카야주의 주도 '빌바오'는 질 좋은 철광산을 보유한 철강, 조선 산업의 중심지였다. 1975년 독재자 프랑코의 사망 이후 산업 관리의 기조가 통제에서 경쟁으로 전환되면서 도시는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10년 만에 제조업 일자리 10만 개 가 증발했고, 실업률은 25%까지 치솟았다. 스페인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라는 타이틀은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도시 부흥을 위해 빌바오 당국은 전략 개발에 착수한다. 서비스 중심 도시로 경제구조를 개편하고, 낡은 고철 덩어리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위해 글래스고, 피츠버그 등의 선배 도시들을 학습했다. 문화예술산업을 통한 도시 부활의 신노선을 택한 빌바오는 구겐하임이란 프로젝트 파트너와 운명적으로 조우한다. 문화유산 부족이라는 핸디캡은 단숨에 극복된다. 1997년 개관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곧바로 세계 미술계 최고의 브랜드로 부상하며 빌바오 효과*라는 도시건축계의 신조어까지 낳았다. 구겐하임 미술관의 상징성은 전 세계로 빠르게 전파되었고, (능숙하게 미디어를 다루는 미국 구겐하임 재단의 도움도 컸다) 빌바오는 켜켜이 쌓여있던 녹을 벗겨내고 품위 있는 예술의 도시로 환골탈태했다.  

 

*빌바오 효과: 구겐하임 박물관 건설 이후 한 도시의 랜드마크 건축물이 그 지역 전반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현상을 일컫는 말.

 

1.png

 

1997년 이전까지 도시 방문자의 60%는 비즈니스 출장자였다. 구겐하임 미술관 개관 이후 빌바오는 연 100만 명이 찾는 예술의 도시가 되었다. 당연히 구겐하임 미술관 건축물 자체가 도시 방문의 압도적 이유였다.

 

총 1억 달러에 달한 건설비는 3년 만에 회수되었다. 랜드마크 하나가 전체 도시 재생 프로젝트에 얼마나 큰 영향 을 줄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그렇다고 구겐하임 미술관 하나에 모든 도시재생사업의 공을 돌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문화예술 공간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도시 전체의 미적 잠재력을 일깨웠을 뿐이다. 이후 미술관을 중심으로 공항터미널, 전차와 같은 부가적 기반 시설이 확충되었고, ‘빌바오 메트로 폴리30’과 같은 민간협력체가 지역 축제, 네르비온 강 수변정리 등의 서비스 업데이트를 도맡아 프로젝트의 완성도를 높였다.  

 

첨단지식산업단지로 거듭 난 포블레노, ‘22@ 바르셀로나 프로젝트’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포블레노(Poblenou) 지역은 한때 ‘카탈루냐의 맨체스터’라 불릴 정도로 중요한 공업 중심지였다. 그러다 1965년 몬주익 지역에 신규 공업단지가 들어서며 서서히 퇴폐했다.

 

슬럼화되었던 이 지역은 1992년 올림픽을 계기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시내 중심가, 공항과 항구 사이의 연결고리를 맡게 되면서 점차 비즈니스의 메카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새로운 가능성에 고무된 바르셀로나는 2000년 7월 ‘22@바르셀로나’ 프로젝트를 출범시키며 도시의 미래를 걸었다. 22@는 도시계획상의 공업 전용지역 코드 ‘22a’ 에서 유래한 것으로, 공업 지역으로 묶여 장래가 제한되어 있던 포블레노 지역을 지식기반산업의 중심지로 탈바꿈시키자는 것이 골자였다.

 

주택·거리·녹지 등의 쾌적한 생활공간과 더불어 미래를 담보하는 ICT, 바이오 등의 지식집약형 산업을 안착시켜 세계 어느 도시와도 당당히 맞서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담았다.

 

바르셀로나 주정부의 이러한 의지는 자치주 경제발전계획 속에서 착실히 실천되었다. 굴지의 대형회사를 비롯 스타트업 기업과 창의적인 인재들이 22@ 지구를 채워나갔다. 정부(기업지원), 기업 (생산), 대학(연구 및 개발) 등의 다양한 주체들이 지식집약형 클러스터를 형성하며, 고용창출 및 지속가능한 성장이란 도시재생의 핵심가치를 키워냈다. 지식기반산업의 융복합 성장은 여타 산업을 연계하는 ‘바르셀로나 스마트 시티투어’ 같은 창조적 도시재생으로 진화하고 있다.  

 

사회적 문화가치에 대한 진지한 숙고, 마드리드 산 미겔 시장

 

마드리드 시내 마요르 광장 옆에 위치한 산 미겔 시장은 바르셀로나의 보케리아, 발렌시아 중앙시장과 함께 스페인 3대 전통시장으로 손꼽힌다. 1916년 처음 문을 연 이 시장은 리모델링을 통해 2009년 다시 열었다.

 

이 전통시장의 리모델링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리모델링 과정 속에서 발견된 이들의 사회문화가치 계승정신 때문이다. 리모델링 결정 당시 시장 전통의 보존에 대한 치열한 논의가 오고 갔다.

 

최종적으로 기존 붉은 철제 지붕과 기둥을 남겨두고 이를 통유리 벽면으로 감싸는 방식이 채택되었다. 붉은 철제지붕을 시장의 상징으로 남긴 것이다. 새롭게 문을 연 산 미겔 시장은 야시장 운영, 개방된 주방 등 사람냄새 나는 전통시장 요소에 냉난방 시설, 외국어 표기 등의 편의시설을 절묘하게 공존시켰다.

 

우리 역시 전통시장 활성화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시장논리에 기초한 날선 공방 속에서 전통시장이 가진 사회문화적 유산 가치에 대한 진지한 숙고가 자리 잡기 힘들다. 산 미겔 시장을 통해 다른 관점에서도 문제를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한다.

 

스페인 도시재생사업의 성공비결 

 

스페인은 지방 자치가 크게 발달하였다. 각 지방들의 자부심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그들은 때때로 이를 성역화까지 하며 선을 긋는다. 앞서 소개한 도시들 역시 상이한 문화, 역사와 다른 언어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보란듯 도시 재건에 성공했고, 도시재생사업의 모범생이란 공통분모를 갖게 되었다.

 

주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체성의 심지를 재생사업에 굳게 심어둔 것이 성공의 제1비결이라 생각된다. 흔히들 말하는 집단사고나 유행에 쉽게 매몰되는 경향이 있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스페인의 도시재생사업에 필자가 주목하고자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시재생사업은 단순 인프라 구축이 아닌 하나의 도시 생태계를 구축하는 중대한 작업으로 체계적인 준비와 전략이 필수이다. 바르셀로나는 크게 보고 프로젝트를 3단계로 세분화하는(1단계: 유관 인프라 구축, 2단계: 주체별 통합, 3단계: 인적 네트워크 환경 구축) 치밀함을 보였다.  

 

또한 이들 도시재생사업 내부를 들여다보면 사회구성의 모든 주체들이 유기적으로 촘촘히 엮여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정부 및 책임당국은 리더십을 가지고 모든 리스크를 떠안으며 판을 깔았다. 그 밑에서 준당국 성격의 지휘 메커니즘이 작동하여 큰 틀의 도시변형을 진행하였다. 지역공공 기관의 준민영화 및 유연화는 민간분야에서의 협력 및 상업화를 촉진시켰다.

 

빌바오는 구겐하임 미술관 운영에 있어 제도적 지원과 재원을 담당하였고, 구겐하임 재단으로부터 운영노하우와 미술품을 제공 받았다. 처음 전통훼손을 내세우며 맹렬히 반대했던 바스코 국가주의자들마저도 도시재생의 일원으로 끌어안으며 지역민주주의와 사업의 정당성까지 지켜냈다. 

 

바르셀로나의 경우 주요 산업들에 대해 민·관·학이 공존하는 클러스터를 구축하면서 사업의 누수를 최소화한다. 발전된 정보 기술을 이용하여 주민들이 직접 사회프로그램에 참여케 하고,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통해 원주민의 이탈을 막았다. 지역 담당자들의 역할도 중요했다. 지역 정치인 및 정책입안자들은 지역에 대한 전문성으로 무장해야 한다. 글로벌 컨설턴트들은 일반적인 ‘Best Practice(모범 경영)’에 집착하여, 각 도시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제도적 특수성을 간과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지역의 당사자들이 채워야 할 몫으로, 스페인의 경우 담당자들의 지역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사업을 정방향으로 이끌었다. 

 

도시재생,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많다 

 

철저히 준비한다 하더라도 도시 재생사업에는 여전히 도시양극화, 지역 민주주의 저항, 젠트리피케이션 등의 위험요소들이 남아있다. 그리고 세계적 회사들의 거대 자본이 본격 유입되는 순간 도시의 복제, 모방이 순식간에 이뤄져 공든 탑을 위협할 수도 있다. 도시재생의 성공을 위해서는 주민의 ‘삶의 질’ 개선이라는 본질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도시계획을 통한 규제, 민관협치를 통한 상권보호, 주민 자체 거버넌스 시스템 도입 등의 대응책들이 실험되고 있으며 이들에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 우리나라 서울 성동구는 얼마 전 여타 지방과의 젠트리피케이션 방지협약 (MOU)를 체결하는 적극성을 보여주었다. 

 

도시재생사업은 이제 곧 우리에게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다행스럽게 우리는 선진 유럽 국가들의 앞선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미래 사회의 경쟁은 국가단위에서 도시단위로 넘어갈 것이다. 도시재생사업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도시로 성장하고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기회이다. 차분히 머리를 맞대어 밑그림을 그릴 때이다. 도시재생사업의 성패를 넘어 향후 트렌드를 주도할 충분한 역량이 우리에겐 있다. 스페인의 도시재생사업은 엘리트, 거대자본 주도가 아닌 정치, 경제적 자립도를 바탕으로 지역구성원들의 높은 참여 속에서 진행되었다. 도시재생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 뚜렷한 비전과 혁신, 시민들을 설득하는 정치력 등이 요구된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배너
배너

발행인의 글


"박달스마트시티 본격 개발, 첨단 복합문화공간 탄생" [최대호 안양시장]

대춧빛 얼굴에 늘 웃음이 걸려 있고 좌중을 휘어잡는 호탕한 바리톤 목소리는 우물 속 깊은 메아리처럼 길게 여운을 던진다. 최대호 안양시장의 시민 사랑은 ‘안전’에서 드러나고 ‘민생’에서 빛을 발한다. 작년 11월말 농산물도매시장이 폭설에 붕괴될 당시 시민 사상자 ‘제로’는 최 시장의 ‘신의 한 수’에서 나왔다. 재빠른 선제 대응은 ‘안전’의 교과서로 이젠 모든 지자체 단체장들에겐 규범이 됐다. ‘민생’은 도처에서 최 시장을 부르고 있다. 쌍둥이 낳은 집도 찾아가 격려해야 하고 도시개발사업은 매일 현장 출근하다시피 하고 장애인 시설도 찾아 애들을 안아주기도 한다. ‘안전’에 관한 한 그는 축구의 풀백이다. 어떤 실수도 허용하지 않으려 온몸을 던진다. ‘민생’에는 최전방 스트라이커다. 규제의 장벽과 민원의 태클을 뚫고 기어이 골을 넣는다. 그래서 그의 공약은 이렇게 ‘발’로 해결한다. 최 시장이 축구광이라는 건 시 청사에 나부끼는 깃발을 보면 안다. 태극기 옆에 안양시기(市旗)와 나란히 펄럭이는 시민구단 FC안양 깃발을 보라. 이런 시장을 ‘레전드’라 부른다. 장소 안양시장 접견실 대담 이영애 발행인 정리 엄정권 대기자 사진

OECD 고용률 및 노동력 참여율, 사상 최고 수준 기록

글로벌 노동시장 동향 안정 속에서 주요 국가별 차이 뚜렷 OECD가 2024년 1월 발표한 ‘Labour Market Situation’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3분기 OECD 회원국의 평균 고용률은 70.3%, 노동력 참여율(LFP)은 74%로 나타났다. 이는 각각 2005년과 2008년에 통계 집계가 시작된 이래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다. 특히 프랑스, 독일, 일본, 터키를 포함한 38개 회원국 중 13개국이 해당 지표에서 최고 기록을 경신하거나 그에 근접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별 고용률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3분기 OECD 회원국 중 약 3분의 2가 평균 고용률인 70.3%를 초과했으며, 스위스, 네덜란드, 아이슬란드가 80% 이상의 고용률로 상위를 차지했다. 반면, 터키는 55.2%로 가장 낮은 고용률을 기록했으며, G7 국가 중에서는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평균 이하의 고용률을 보이며 주목받았다. 분기별 고용률 변화를 살펴보면, 15개국의 고용률은 전분기와 유사한 수준을 유지했으나, 12개국에서 고용률이 감소했고, 11개국에서는 증가했다. 이 중 룩셈부르크와 칠레는 고용률 감소폭이 가장 컸으며, 코스타리카는 가장 큰 상승폭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