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시국은 흐림, 폭우의 연속이다. 이제는 개헌이라는 새로운 태풍이 몰려올 기세다. 개헌론자들은 한결같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헌법에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지방분권을 전문 연구하며 이 논의가 우리같은 단방국가와 미국, 독일, 캐나다 등의 연방국가를 엄연히 구분해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연방국가는 연방과 주 사이의 수직적 권력분립과 연방과 주에서 각각 수평적 권력분립이 이루어지고, 지방자치제도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수직적 권력분립과 중앙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 각각에서 수평적권력분립이 이루어진다. 우리는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수평적 권력분립에 관심을 갖고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현행 헌법에서 지방자치를 강조함으로써그 이전보다 지방자치에 있어서도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뤄냈다.
우리나라의 경우 북한이라는 변수가 있기때문에 군사 및 외교권한에서 연방제와는 달리 대통령의 역할을 강화시킨 것이지 의회권력에서는 대통령에게 의회해산권한도 없다. 오히려 전 세계에 그 유례를 찾기 힘든 헌법재판소라는 상왕제도, 검찰의 기소독점권 등 사법권한에 대한 국민통제가 안되는 게 문제다. 국민의 발의권한과 국민소환 권한이 헌법상 있었다면 매주 반복되는 촛불집회 없이도 헌법체계 내에서 금번사태의 수습이 보다 원활했을 것이다.
현행 헌법에서는 제왕적 대통령제 조항을 찾기 쉽지 않다. 문제는 나누기와 뺄셈에 능하고 덧셈에 약한 수직적 정치문화에서 기인한다. 수직적 권력분립은 구조적으로(중앙과 지방), 시간적으로(임기와 정년), 권한상으로(직급과 직책 분할)권력을 쪼개서 권력 집중을 방지하는 것을 의미하거나 대통령과 국무총리(또는 내각)와같이 동일한 권력에 속한 권력 간의 분립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역시 헌법상에서의 규정보다 실질적인 통제와 협업이 중요해진 현대 사회에 있어 각 기관 내에서각자의 기능을 다함으로써 숙의민주주의가 이루어진다고 볼 때 법률적 사항이지 헌법상 사항이 아니다.
또 다른 주장은 현행 헌법 하에서는 분권형 국가를 추구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방의 자율성에 한계가 나타나고 있고, 자주입법과 자주재정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개헌을 통하여 법률유보, 조세법률주의, 죄형법정주의 등이 개선될 필요가 있어 헌법개정을 요구한다. 실제로는 현행 헌법 개정없이 현재의 상황에서도 법률 제개정과 지방자치단체의 권한 및 재정의 조정으로 지방분권의 강화는 충분히 가능하다.
"문제는 국회가 자신들의 권한을 포함하여 중앙정부의 권한과 기능을 과감히 이양하는 입법행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회가 자신들의 권한을 포함하여 중앙정부의 권한과 기능을 과감히 이양하는 입법행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제왕적 대통령의 상징인 인사권한을 제한하기 위하여 국민의 정부에 서 설치한 중앙인사위원회 폐지, 각 부처의 장관에게 주어진 인사권한을 청와대의 비서실장으로 일원화시킨 현 정부의 제도적 개악이 문제이지 현행 헌법에서는 그 어디도 대통령에게 인사권한을 전횡하라는 조항은 없다.
작금의 혼란은 국가권력을 사유화시켰다는 데에 있는 것이지 단임제 대통령제 헌법 때문이 아니다. 프랑스 등 단임제 대통령제도는 얼마든지 있다. 경계해야 할 점은 현행 헌법에서 호가호위 하신 분들이 또 다시 옷바꿔 입고 호가호위하시기 위하여 개헌을 요구하는 것같이 들린다는 점이다. 이분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국민
기본권을 신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의회와 대통령의 권한을 나눠먹자는 식으로 들리는 것은 필자만의 느낌일까.
우리나라 헌법에서 지방자치 관련 규정은 제117조와 제118조에 명시되어 있다. 특히, 제118조 2항에 따르면 지방의회의 조직·권한·의원선거와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선임방법 기타 지방자치단체의 조직과 운영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지방의회 의원의 경우 선거로 선출함을 전제로 하고 있으나 지방자치단체장의 선임방법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헌법상에서 규정되어 있지 않다. 즉, 다양한 기관구성형태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 지자체장의 직선제를 폐지하고 기관통합형 구조를 도입하는데 있어 헌법상의 제약은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지방자치단체장의 선임방법은 하위 법령인 지방자치법 제94조(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선거)에 명시되어 주민의 직접 선거를 통해 선출하도록 하고 있다.
만약 2017년도에 분권형 개헌이 힘들다면 지방자치단체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협의체(지방정책결정협의체)에법률안의견 제출 권한을 부여하여야 한다.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국회에 법안을 제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헌법을 개정해야 하지만(헌법 제52조) 입법의견을 제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법률 개정으로 충분하다(현행 지방자치법 제165조 제6항 참조). 또는 입법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와 관련이 있는 법안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의 의견을 듣는 절차를 각 개별법에 설치하는 것도 가능하다.
최근 몇 년 동안 중앙과 지방자치단체들 간의 갈등은 사회복지에 관한 예산 및 권한위임에 관한 것이었다. 중앙정부가 해당 사무를 이양 또는 위임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지방 재정에 대한 지원 내지 확충 권한을 줘야 하나 전혀 그렇지 않다. 현행 헌법에는 지방자치단체의 자주재정권또는 지역 간 균형에 관한 규정이 없다.현재에도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재산을 관리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 자주재정권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에 대해 독일기본법은 법인세와 근로소득세에 관한 연방법률을 정함에 있어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수요와 재정능력을 고려하여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도록 규정하고 있고(제107조), 프랑스도 법률에 지방자치단체 간 평등을 촉진하기 위한조정 조항을 두도록 하고 있다(제72-2조).
즉, 우리나라는 지방재정법의 개정을 통해서도 지방 재정권을 실효적으로 강화가 가능하므로 현행 법률을 개정해서라도 국세와 지방세를 재배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