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현재까지 전 국민의 가슴을 뜨겁게 달군,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일대의 사건이 있다. ‘최순실 게이트’라고 하는 국정 농단 사태가 그것이다. 급기야는 어린아이에서부터 고령의 어르신들까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전국적으로 1000만명이 넘는 국민이 ‘현직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촛불집회에 참가하였다. 역사 이래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민심의 물결이 요동친 것이며, 이로 말미암아 결국에는 일국의 대통령이 국회 ‘탄핵소추’라는 불명예스러운 멍에를 안고, 직무가 정지되었다.
그리고 ‘비선 실세’, ‘신뢰 붕괴’, ‘허탈’, ‘암담’, ‘부정’이라는 키워드가 이 시대를 그대로 관통하고 있는 것 또한사실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국민적 불안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이로 인해 달걀 값이 폭등하는 등 민생 물가도 들썩이고 있다. 온 나라가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 있을진데,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조기대선이라는 구도 아래 복잡한 셈법 속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이합집산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필자는 한 가지 희망은 있다고 본다. 국가정세의 혼란과 위기 속에서도 그나마 우리 사회가 안정을 유지하면서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지방자치’라는 토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지방자치를 하지 않은 채 대통령으로부터 임명된 지방행정기관의 장들을 존치했다면, 아마도 국가 전체가 마비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못내 지울 수 없다. 중앙정국의 불안정에도 지방자치가 이를 최소화하고 민주주의의 틀을 지킬 수 있게 버팀목이 되어준 점에 대해서는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이에 공감하는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지난 20여 년간의 지방자치 역사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1995년 지방자치단체 출범 이후, 지방자치제에 대한 평가에는 명(明)과 암(暗)이 있다. 주민이 지역의 주인으로 등장하게 되었고, 지역의자율성과 창의성을 전제로 한 발전 기반을 만드는 성과도 거두었다. 지역의 특성을 살린 발전전략을 수립·추진함으로써 국가와 지방이 동반 성장하는 효과도 가져왔다.
그러나 자치권의 보장 측면에서는 아직도 미흡하다는 의견이 다수 있다. 진정한 의미의 지방자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로부터 재정분권이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된 견해다. 중앙정부와지방정부의 관계도 ‘지시’와 ‘통제’에 의한 중앙집권체제를 벗어나지 못하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부인할 수는없을 것이다. 특히 지방재정 확충과 자율권 확대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주민의 삶과 직결된 모든 공공서비스는 기초자치단체가 담당하도록 권한을 재배분하고, 세원도 재분배해야 할 것이다. 이는지역 간 재정력 격차를 조정해 모든 지방정부가 최소한의 균질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지방정부에 조례제정권이 있지만, 범위가 한정되어 지방이 스스로 지역 실정에 맞는 자주적인 조례 제정도 어려운 실정이다. 법령의 범위 내에서만 조례 제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령의 조례 위임범위를 충분히 확대할 필요가 있다. 자치입법권, 자치행정권, 자치재정권 등을 보장하는 지방분권 정책은 그 실
현 성과가 여전히 미흡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방분권 및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이 있기는 하나, 포괄적으로 규정되어 있어 실효성 부분에서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여기서 잠깐 선진국 사례를 들어 보고자한다. 프랑스는 1982년 신지방자치법 시행과 함께 1983년 사무배분법을 별도로 제정하였으며, 1986년부터 실질적인 지역정부체제 구축함은 물론, 2003년 헌법을 수정하여 지방분권에 관한 사항을 헌법 1조에 규정해 놓았다. 이탈리아도 2000년부터는 지방분권의 가속화를 위하여 지방정부의 특별한 지위를 완전히 헌법에 명문화하여 지방정부 중심의 지방분권체제를 촉진시켰다.
이처럼 선진국에서는 ‘지방자치’와 ‘분권’을 최상위법인 헌법으로 명문화하여 지방정부의 존재성, 지방자치권,지방재정권을 헌법으로 인정·보장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도 국민이 행복한 선진 일류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방분권 확대가 무엇보다 필요할 것이다.
앞선 논거에도 언급을 하였지만, 비선 실세에 의한 국정 농단 사태는 “중앙집권체제의 폐단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영역에서 중앙집중 현상이 심각한 상황에 지역 균형개발과 지방자치 내실화를 위해 지방분권의 필요성이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풍조가 흐름을 타면서 정치권은 물론 전문가 집단에서부터 지방분권에 대한 개헌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탄력을 받고 있다. 따라서 지방자치와 분권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지금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언제할 것인지’에 대한 시기상의 문제만 남았을 뿐이지 미래 국가와 지방발전을 위해서는 꼭 해야만 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난해 지방분권과 관련한 여론조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지방분권 걸림돌’ 1순위가 ‘중앙정부’이며, 중앙정부에 대한 높은 재정 의존율과 중앙정부의 과도한 관여라고 답한 사람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지방분권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이루어야 할 공동과제다. 하지만 성공적인 지방분권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방분권에 대해 소극적인 중앙정부와 국회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지난 20여 년의 지방자치와 분권이 험난하고 고단한 여정을 거쳐 왔지만, 반드시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지방자치와 분권은 당면한 국가·사회적 위기를 극복하고 급변하는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일 것이다. 중앙정부와 국회, 지방자치단체 상호 간 심도 있는 논의와 협의로 시대가 요구하는, 전향적·미래지향적인 입법화를 통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실질적인 ‘지방자치와 분권’이 강력히 추진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