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

재정건전성과 공공부채의 관리(2)

 

2022년 10월호 주제 : 정부재정,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2022년 11월호 주제 : 공공재정 관리,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2022년 12월호 주제 : 공공재정 관리의 민주성은 어떻게 확보되는가?

2023년 01월호 주제 : 공공재정 관리의 효율성 원칙과 재정성과주의

2023년 02월호 주제 : 재정건전성과 공공부채의 관리(1)

 

지난 호에는 공공부채 관리의 중요성과 부채관리를 위한 3가지 개념적 요소(상환위험, 재정 여력, 지속가능성)에 대해 설명했다. 이번 호에서는 우리나라 부채관리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부채관리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본다.

 

진퇴유곡의 대한민국 재정

IMF 외환위기 전,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국가채무는 감소 추세였다. 그러나 이후 25년이 지난 현 시점까지도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국회예산정책처의 전망으로는 앞으로도 증가 추세를 꺾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렇게 보는 이유가 있다.

 

우선 수입 측면에서 보면, 본격적인 저성장 시대로 돌입하면서 세수 증가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산업구조 고도화로 투자수요는 사실상 정체 상태이며, 생산인구 감소로 우리 경제의 잠재 생산능력도 지속해 하락하고 있다.

 

지출 측면에서도 암울하다. 인구 고령화와 노인 빈곤으로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 사회보험수지의 구조적 악화가 예견된다. 노동유연성 확대와 일자리 감소에 따라 근로소득 분배가 악화되면서 복지지출 수요는 더 증가할 것이다. 

 

대한민국 재정은 한마디로 진퇴유곡의 상황에 놓여 있다. 복지국가로 진입하기도 전에 저성장 시대로 진입해 복지 해체를 요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축소사회, 부채 주도 성장의 한계

대한민국은 그동안 부채 주도로 성장을 일구어왔다. 가계든 기업이든 정부든 부채를 재원으로 소비와 투자수요를 창출해왔으며, 이 전략은 주효해 부채와 성장의 선순환구조를 만들어냈다.

 

이 모델이 성공한 이유는 간단하다. 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투자할 거리는 넘치는, 이른바 ‘경제 팽창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는 전 산업에서 규모의 경제가 창출된다. 정부 주도의 대규모 투자사업에서도 경제적 타당성 확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민간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파급 효과도 상당하다. 부채의 비용(이자율)보다 수익(성장률)이 더 높으니 빚 갚을 걱정도 없다. 한마디로 차입해서라도 필요한 재원을 확보해 투자함이 마땅한 시기라 할 수 있다. 생산인구가 감소하고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는 축소사회로 진입하면 정반대 현상이 나타난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이를 말해준다.

 

경제적 타당성을 늘 떠받쳐주던 인구 증가와 실질소득 증가는 이제 유효하지 않다. 규모의 경제 효과는 점차 사라지고 있으며, 인구 배당 효과도 이미 소멸 단계다. 이런 상황에서 추진하는 팽창정책들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갚을 능력이 떨어지는데도 무리하게 부채를 늘렸다간 파산 위기에 봉착하고 만다. 물론 정부는 민간에게 고통을 전가함으로써 파산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 정책을 믿고 뛰어든 그 많은 민간 사업자와 정부지출 축소로 인한 국민 고통은 어찌할 것인가?

 

대한민국 부채관리의 해법

인구감소·저성장의 축소사회에서 부채 주도의 확장정책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렇다면 앞으로 대한민국 재정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부채의 증가 속도를 점진적으로 제어해야 할 터인데, 세수 확대나 지출 축소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국가 간의 살아남기 위한 원가 경쟁이 격화된 상황에서 기업의 조세 부담을 증가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외국 자본이나 기업의 이탈은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나라에 치명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내국민에게 부과되는 소득세나 보유세를 인상하는 방안이 있지만, 조세 저항과 정치적 부담은 상상을 넘어선다. 국가자산을 매각하는 방법도 있긴 하나, 충분하고도 지속적인 세수 확보 수단은 될 수 없다. 공기업 민영화는 궁극적으로 일반 국민의 부담 증가로 귀결되고 생활 필수 서비스의 질과 안정성 확보도 어려울 수 있다.

 

결국 남은 대안은 대대적인 지출구조조정이다. ¹ 그동안 재정 당국은 해마다 예산편성 과정에서 소폭의 지출구조조정을 시행해왔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인구감소, 기후 위기, 일자리 양극화와 중산층 붕괴 등 새로운 재정환경에 맞춰 분야별 지출 우선순위부터 다시 따져봐야 한다. 나아가 기존 지출사업도 영기준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특히 대규모 투자지출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 축소사회에서는 과거와 같은 규모의 경제나 긍정적 파급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복지정책의 방향도 다시 살펴봐야 한다. 복지와 성장을 조화시키는 방안, 즉 생산적 복지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근로능력 유무에 따라 그에 합당한 복지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복지지출에는 소비적 지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생산성 제고와 연계되는 투자성 지출도 있다. 예를 들어 출산율 제고를 위한 복지지출은 노동력 공급을 확대해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주거·문화·체육·교육·의료 등 사회서비스 분야의 지출 확대는 사회적 SOC 투자수요는 물론, 사회서비스 인력 수요까지 창출한다.

 

한편으로 기득권 저항을 이겨내고 지출구조조정이 성공하려면 지출 한도(spending ceiling)와 같은 준칙의 도움도 절실하다. 지출 한도가 설정되면 해당 부처는 불필요하거나 낭비적 지출을 스스로 감액한다. 물론 지출 중에는 경로의존성이 강하게 작용해 증가를 억제하기 어려운 항목도 있지만, 정부가 의지를 갖고 재량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유형도 있다.

 

지출준칙 중에서 황금률(golden rule)은 지속 가능성과 세대 간 형평성을 동시에 고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정부가 차입한 재원을 현세대의 소비를 위한 경상지출에 사용하지 않고 성장잠재력 제고를 위한 자본축적에 사용하도록 하면, pay-go 정신² 과도 부합하며 부채와 성장의 선순환 고리도 만들 수 있다. 자본예산(Capital Budgeting)은 황금률과 pay-go 정신을 예산에 접목한 제도로 도입을 검토할 만하다. 정부지출을 경상지출과 자본지출을 구분해 자본형성을 위한 투자 소요를 국공채로 충당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차입을 통해 마련된 재원을 재정승수가 장기적으로 나타나는 물리적 SOC, 디지털 SOC, 생활 SOC 등에 투자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잠재성장률을 높이고 세수 여건을 개선할 수 있다. 그 결과 재정의 건전성과 지속 가능성이 높아짐은 물론이다.

 

1  지출구조조정의 구체적인 시행방안은 필자의 《대한민국 공공재정론》 제5장 『지출심사론』을 참고하기 바란다.

2 현세대의 소비를 위한 지출경비는 현세대로부터 마련하는 것이 공정하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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