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편집부
진주에는 진주남강유등축제와 개천예술제가 유명하다. 이 두 축제는 직·간접적으로 제2차 진주성 전투와 연관이 깊다. 그런데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장렬하게 산화한 의병자들은 상대적으로 주목을덜 받고 있다. 진주성 삼장사 가운데서 김천일 장군과 최경회 장군은 그나마 주목을 받고 있지만 삼장사 중의 효열공 준봉 고종후 장군의 경우는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
고종후 장군의 위업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한 진주 남강유등축제가 거행됐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절반의 성공에 불과할 따름이다. ‘효열공 준봉선생 기념사업회’ 는 이 점을 안타깝게 여기고 준봉선생의 위업을 선양하기 위해 《준봉 고종후의 수평적 리더십》을 출판했다.
고종후 장군은 진주에 거주하는 장흥 고씨의 할아버지 다. 충렬공 제봉 고경명 장군의 맏아들로서 23세에 문과에 급제하고 임피현령을 지냈으며 임진왜란 시 창의토 적의 선봉에 섰던 의병장이었다. 금산전투에서 가친과 아우를 잃고, 절치부심하며 복수의 칼날을 갈다가 400의병을 거느리고 진주성에 입성해 용전분투하다가 6만여 민·관·군과 함께 유명을 달리했다. 진주성과 고종후 장군의 관계가 이처럼 긴밀한 탓에 진주성이 고종후 장군이고 고종후 장군이 진주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진주성 전투는 조선군이 이길 수 없는 곳이었다. 왜적은 10만여명이고, 아군은 6천여 명이라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400의병은 죽을 곳인 줄 알면서 왜 고종후 장군을 따랐을까? 400의병은 고종후 장군과 범상한 관계가 아니었다. 고종후 장군은 의병들을 형제요 동지로 여겼고, 400의병은 그런 의식과 태도에 감복되어 고종후 장군을 따랐다고 볼 수 있다.
고종후 장군의 의식과 태도를 시쳇말로 수평적 리더십이라고 할 때 수평적 리더십은 오늘 날에도 여전히 크나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 ‘효열공 준봉선생 기념사업회’는 수평적 리더십이 고종후 장군의 정신을 집약한 용어라 여기고, 수평적 정신을 통해 그동안 가려졌던 고종후 장군의 진면목을 밝혀보고자 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의의는 매우 크다.
준봉을 본격적으로 고증한 최초의 저서라는 점, 준봉이 과거의 영웅에서 현대의 영웅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게 된 점, 영남과 호남의 화합을 도모하는 계기가 된 점 등이 그러하다.
준봉은 오늘날 가고 없지만 그 정신은 오늘날에도 살아서 남아 있다. 수평적 리더십이 바로 그것이다. 민주적 합의 내지는 상하평등을 외치는 자들도 막상 조직과 체계 속으로 들어 가기만 하면 수평적 리더십을 은근히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수평적 리더십이 효율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준봉의 수평적 리더십은 바로 이런 점에 경종을 울린다.
효율성의 원칙이 능사일 수 없고 신뢰에 바탕을 둔 장기적인 인간관계만이 삶의 원칙이 돼야 한다는 점이 경종의 내용이다.
준봉의 의리정신이 실체적으로 드러난 시점은 국난위기의 임란을 당한 때다. 이 시기는 준봉의 리더로서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드러난 시점이다. 의리정신의 발양으로 리더라는 몫이 주어질 때 준봉이 지향하는 리더십은 구체화된다. 위난의 시기에 나타난 준봉의 의리는 대의명분에 집약됐다고 할 수 있다. 준봉의 리더십은 명분에 따라 자신의 몫을 감당하는 과정 에서 이뤄지며 의리가 그 중심적 역할을 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준봉의 수평적 인간경영 방법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 수평적 인간경영의 특징을 추출해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아주 큰 목표를 내걸고 그 아래에 이질적인 여러 성향을 하나로 통합했다. 신분과 계층이 다른 의병들을 ‘복수’라는 군호 속에 포괄한 점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둘째, 자기 자신의 구국관, 전술 및 전략, 인간관을 다른 사람들에게 누차 피력하고 이해를 구했다. 6차례의 격문이 그런 사실을 말해준다. 격문을 작성한 다음 의병부대 구성원들에게 그 취지를 알리고 내용을 첨삭했다고 볼 때, 6차례의 격문은 준봉이 의사소통을 중시했 다는 증거가 된다.
이런 사실을 통해 수평적 인간경영의 특징을 정리하면, 내부의 갈등을 보다 큰 목표를 통해 잠재우고 원활한 의사소통으로 각자의 힘을 하나로 결집시켜나가는 인간학적 행위라고 규정할 수 있다.
수평적 인간경영방법을 사회갈등의 명약으로 인식한다면 사회지도자는 수평적 인간경영 방법을 수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 권위를 고집하는 자리에는 수평적 인간경영 방법이 도입될 수 없다. ‘여럿은 하나, 하나는 여럿’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촉매제로 활용할 때 수평적 인간경영 방법이 꽃피울 수 있다. 준봉의 수평적 리더십은 바로 이런 점에서 교훈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