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13월의 비화] 연말정산의 정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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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걸 
국민대학교 행정정책학부 교수
 

연말정산 대란, 무엇이 원인인가?


세금은 재정, 복지 등과 더불어 정치경제학 연구의 핵심주제 중 하나다. 나라의 살림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니 세금을 내지만 구체적으로 누가 얼마나 부담하는가라는 공정성의 문제는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특히 민주주의 국가에서 세금의 문제는 복지와 더불어 후보자와 정당에 대한 유권자의 지지 여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그러기에 선거 때마다 국민의 세금은 줄이면서 복지혜택은 늘리겠다는 공약이 난무하게 되고, 남유럽이나 중남미 국가들 중 상당수가 세금과 복지에 대한 포퓰리즘으로 인해 경제가 어려워져 만성적 경제난을 겪고 있다. 


즉 당장은 입에 달아 세금은 줄이고 복지는 늘렸지만 결국 누군가는 그 부담을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장기적으로는 빚더미에 눌려 국민 전체가 그 대가를 지불하지 않을 수 없게 된 나라가 부지기수다. 그래서 1970년대 복지국가의 위기를 경험한 유럽의 선진국들은 재정건전성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설정한 후 복지를 비롯한 지출을 결정하는 방향으로 국가재정을 운영하고 있다.


13월의 보너스에서 세금폭탄으로 바뀌었다는 연말정산 문제는 이러한 민주주의의 구조적 취약성과 함께 조세부담의 공정성에 대한 뿌리 깊은 의구심, 그리고 국민의 오해를 불러일으킨 고위정책담당자들의 거듭된 거짓말 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증세 없는 복지’를 약속했고, 이를 위해 공약가계부까지 만들었다는 것을 특히 강조했었다. 실제로 2013년 5월 31일, 당시 정홍원 총리 주재로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열어 140개 국정과제(공약)를 이행하기 위해 134조 8천억원 규모의 공약가계부를 발표한 바 있다. 


문제는 이러한 규모의 국가재정을 확보하는 방법에 있었다. 후보시절 박근혜 대통령은 증세 없이 지하경제의 양성화나 기존에 주어졌던 감세를 철회하는 등 비정상의 정상화를 통해 공약 이행을 위해 필요한 재정을 확보할 수 있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국민들은 ‘증세 없는 복지’라는 표현대로 자신들이 내는 세금에는 변화가 없이 복지혜택만 증가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갖게 됐다. 각종 조세감면제도를 정리하고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변경하면, 세율증가나 세목신설이 없이도 개개인이 부담하는 세금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평범한 진실을 누구도 얘기해 주지 않았고, 깨닫지도 못했다. ‘표’를 의식한 정치권으로선 당연하겠지만 국민의 입장에서는 ‘증세 없이’라는 말은 잘 들리고 ‘지하경제 양성화’는 당연한 것이니 월급생활자들이 신경 쓸 것이 없었으며, ‘기존에 주어졌던 감세를 철회’한다는 것은 별로 와 닿지 않았다. 


‘유리지갑’으로 불리는 봉급생활자들은 이미 모든 소득이 공개돼 있었고 그다지 많은 감세혜택을 받아왔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그들에게 각종 조세감면제도를 정리한다는 것은 ‘남의 일’로 생각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연말정산 사태의 기저에는 바로 이러한 조세부담과 관련한 민주주의의 구조적 취약성과 국민의 선택적 인지가 존재한다.


조세부담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인식도 이번 사태의 악화에 한몫 했다.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시절, 법인세를 25%에서 22%로 3% 포인트 내린 것을 두고 야권에서는 부자감세라는 프레임을 설정해 지속적인 부자감세 철회를 주장해 왔다. 


게다가 2014년에는 11조에 달하는 세수결손이 발생했는데, 경기가 나빠 모든 조세부담원에서 기대했던 세금이 걷히지 못했지만 오직 봉급생활자들의 소득세에서는 5천억원의 세수가 증가했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유리지갑은 탈탈 털어가면서 막대한 이익을 남기는 재벌들에게는 법인세를 감면해주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든 것은 담뱃값 2000원 인상, 주민세인상 등으로 국민들은 서민을 대상으로 한 실질적 증세가 이뤄지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세율인상이나 세목신설이 아니니 증세는 아니라는 강변을 반복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정부는 국민건강을 위해 담뱃값의 대폭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으나 그렇게 국민건강을 걱정하는 정부라면 왜 지금까지 담뱃값인상에 소극적이었는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사실 담뱃값과 주민세인상은 복지지출의 급속한 증가에 따라 이의 50%를 대응해야 하는 지방정부의 재정난을 완화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는데 정부가 국민 건강 운운하고 있었으니 스스로 신뢰를 잃는 행동을 하면서도 그 위험성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정부가 부자는 감세해주면서 서민의 주머니만 털고 있다는 국민의 인식이 확신으로 바뀌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국민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은 것은 정부나 정치권의 고위 정책담당자들의 거듭된 거짓말이었다. 2013년 세법을 개정하면서 정부는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전환해도 세금이 별로 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당초 기획재정부는 총 급여 3450만 원부터 세금이 늘어나도록 설계했으나 2013년 8월 13일, 새누리당과의 당정협의를 거쳐 세금이 늘어나는 대상을 연봉 5500만 원으로 상향조정한 바 있었다. 


김낙회 당시 기재부 세제 실장은 같은 해 12월 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에서 세액공제로 일부 전환하면서 총급여 기준 7000만원 정도부터는 세금이 좀 늘어나게 했지만 5500만원까지는 세금이 전혀 늘지 않고 5500~7000만원까지는 3~4만원 정도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의원들이 의료비와 교육비 등을 세액공제로 전환하게 되면 중산층의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하자 김 실장은 그 경우에도 총급여 8600만원까지는 세금이 늘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입장은 세금폭탄이 현실화돼 가는 2015년 1월 19일, 문창용 기재부 세제 실장에 의해서도 그대로 반복됐다. 


기재부 출입기자단을 대상으로 한 브리핑에서 문 실장은 한술 더 떠서 총 급여 7000만원 이하인 사람의 세 부담은 평균 2~3만원 증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개인사정에 따라 이 구간에 속하는 사람들의 세 부담도 수십만원 증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정치권은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의 전환에 대한 책임논쟁이 불거졌다.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비상대책위원회에서 2013년 세법개정 당시 정부여당이 밀어붙였다고 비난했지만 당시의 국회속기록에 따르면 세액공제로의 전환에 대해서는 여야가 이견 없이 합의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지속 가능한 복지모델의 정립이 필요하다


‘세금폭탄’으로 변한 연말정산 문제는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의 점증하는 복지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재원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다. 베이비부머들이 은퇴하기 시작하고 세계 최저수준의 출산율을 십수 년간 지속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급격한 복지수요의 증가와 함께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미래세대의 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이중의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복지지출은 OECD 국가들 중 평균 이하지만 그 증가속도는 가장 빠르다는 것도 문제다. 복지가 국가의 의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복지가 아무리 중요해도 이를 부담할 능력을 넘어선 과도한 복지는 국가의 미래를 불안하게 한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이중의 구조적 문제가 ‘지속 가능한 복지’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음에도 민주적 정치과정의 한계로 인해 미래 세대에 막대한 부담이 될 수 있는 복지지출이 너무도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속담처럼 말이다. 


연말정산 사태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나 조세저항의 문제가 아니다.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는 복지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해야 한다. 이념으로서의 보편적 복지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이를 실행하기 위한 재원은 분명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부담해야 한다. 


부담에 대한 합의 없이 복지혜택만 확대한다면 그 나라의 미래는 불을 보듯 뻔하다. 선거를 통해 정권을 교체하는 민주적 정치과정에서는 혜택만을 강조하고 부담은 숨기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 


3년 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무상급식은 무상복지의 봇물을 터뜨린다고 반대하며 시장직을 사퇴했던 것을 생각해보자. 당시 아이들에게 밥 한 끼 먹이자는 것을 못하게 한다고 비난했던 주장이 있었다. 현실은 어떤가? 2010년 510억원이었던 서울시 무상급식 예산은 2014년 5403억원으로 10배가 늘었다. 


전국적으로도 2010년 5631억원에서 2014년 2조 6239억원으로 4배 이상 늘었다. 아이들에게 주는 공짜 밥 한 끼 치고는 과다하지 않은가? 저출산대책으로 나온 무상보육 예산도 2011년 4조 9514억원에서 2014년 10조 3548억원으로 급증했다. 


이렇게 천문학적 예산을 쓰면서도 복지수혜자들의 만족도는 매우 낮고,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속담처럼 복지수혜를 공짜로 여기는 문화 속에 막대한 예산이 누출되고 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이렇게 한번 주어진 복지혜택은 거둬들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복지를 철회하면서 정권을 획득할 수 있다고 믿는 어리석은 정치세력이 있겠는가? 


선거 때마다 국민들에게 약속하는 복지규모는 커져 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반면 연말정산 사태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세금부담의 증가에 대해서는 매우 심각한 조세저항이 있다. 부자증세나 법인세증세 등을 고려할 수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에 적합한 복지모델을 확립해 급속히 늘어나는 복지지출에 대한 속도조정이나 구조조정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 한국적 복지모델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서둘러야 한다. 민주적 정치과정이 ‘지속 가능한 복지’를 만들어내기는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고 치열한 논쟁을 시작해야 한다. 갈등과 분열을 우려해 논쟁을 피하는 것은 당면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미루는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논쟁은 전문가집단에 의해 주도될 수도 있지만 정당들도 스스로 국가의 미래를 위한 자신의 입장을 정하고 이를 통해 정권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부도, 국회도, 시민단체도 모두 나서서 우리의 실정에 적합한 지속 가능한 복지모델의 정립에 힘을 모아야 한다.


지금이 바로 우리가 지속 가능한 한국형 복지모델을 수립해야 하는 시점이다. 중장기적 재정건전성과 성장잠재력을 유지하면서 우리의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부담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지속 가능한 복지모델을 만들고 합의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일단 선별적 복지를 통해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혜택이 집중될 수 있도록 해 수혜자의 만족도를 높이면서 복지지출의 효과성을 높여야 한다. 이것이 이번 세금폭탄이 된 연말정산의 교훈을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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