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찬희 퇴직공무원협동조합 이사장
평생을 옆길 생각할 겨를도 없이 열정과 사명감으로 30∼40년간을 자기의 직장이나 직업에 몸 바쳐 근무하다 은퇴한 65세 이상의 젊은 노인들이 600만명을 넘는다고 한다. 세상을 살아오며 축적된 경륜과 다양한 재능을 갖고 젊은이들 못지않은 건강함을 지닌 은퇴자들에게 좋은 일자리는 그리 많지 않다. 그동안 사회에서 일하며 쌓은 노하우가 있는데도 나를 몰라준다하여 서운해 하는 이도 많다. 퇴직한 공무원도 퇴직 후 두어 달 정도 국내외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못 만났던 지인과 친지들을 만나며 자유로운 시간을 1년쯤 보내고 나면 어떻게 “오늘(지금)과 내일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흔히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은 ‘황금·소금·지금’ 이라한다. 황금과 노동은 어느 집에도 살아갈 만큼 다 있다. 그러나 ‘지금’과 ‘내일’을 행복하게 보내는 법을 깨닫고 있는 사람이 가장 현명하고 행복한 사람일 것 같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는 언제일까? 어떤 이는 자신을 쏙 빼닮은 손주의 재롱이나 자녀가 결혼하거나, 원하는 직장에 취업했을 때, 건강검진에서 무탈한
결과가 나왔을 때 등 나와 우리 가정과 관련된 행복이겠지만, 그보다도 더 큰 행복은 정신적·경제적·육체적으로 힘들어하는 분들과 함께 동행 할 수 있다면 더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될 때다.
필자도 몇 년 전에 집에서 쫓겨난 할머니들의 쉼터에서 그분들과 함께 아픔을 나누던 일, 자살에 실패한 스무 살 처녀의 아린 가슴을 위로했던 일 등이 어려운 이웃과 나눔을 실천하려는 ‘퇴직공무원협동조합’을 설립, 운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설립 후 6개월은 임원 5
명이 매달 30만원씩 갹출해 사무실 운영비를 충당했었는데 지금은 조합원도 600명에 이르렀고 그중에는 끼 있는 조합원으로 구성된 공연 팀이 노인요양시설을 찾아가 난타, 색소폰, 마술 공연을 하기도 한다. 마냥 흥겨워하는 노인들을 볼 때 뿌듯한 보람을 느낀다. 또 배고프고 질병이 만연한 북한에서 죽을 고비를 넘어 탈출한 북한이탈주민의 우리 지역 안착을 위한 재래시장 장보기, 자녀 학교 교육 등 그들에게는 생소한 자본주의에 적응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전문직 분야에 근무하는 예비 신랑, 신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아름다운 짝 맺기’ 결혼 중매사업을 하다보면 가문과 품성 등 상대의 덕목과 비전보다 키 크고, 예쁘고, 잘생긴 외모를 너무 중시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결혼관에 씁쓸하기도 하다. 그래도 아름다운 사랑을 키워가면서 결혼식을 앞둔 여러 커플들 때문에 우리는 큰 보람과 행복을 누린다. 또 지역아동센터에서 공부에 재미를 되찾고 있는 미래의 꿈나무들인 초·중등 어린 학생들이 있기에 우리는 더 행복하다.
연말에 조합원 규모도 3000명이 넘어가고 ‘퇴직공무원협동조합’의 이웃과 나눔을 실천하는 사랑의 온도계가 빨갛게 물들어 감을 보며 우리는 더 행복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