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행정이 다시 근본을 묻는 순간을 맞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정부부처 업무보고에서 던진 메시지는 단순한 당부를 넘어, 국가 운영의 본질을 다시 세우라는 깊은 요청이었다. “여러분은 5,200만 국민의 삶을 손안에 들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나라가 흥하느냐, 망하느냐는 공직자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말은 공직자를 향한 압박이 아니라, 국가의 주춧돌로서 공직을 존중하는 선언에 가깝다. 조선시대의 선조가 나라를 어지럽혔다면, 정조는 나라를 빛냈듯 국가는 결국 그 시대의 공직자가 어떤 마음으로 일하느냐에 따라 명암이 갈린다는 뜻이다. 공직은 나라의 흐름을 바꾸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대통령의 발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이것이다. “공직자의 태도, 역량, 충실함에 그 나라의 운명이 달려 있다.” 우리는 종종 국가의 흥망을 정치나 외교, 경제 지표에서 찾는다. 그러나 실제로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힘은 각 부처의 책상 앞에서, 현장의 작은 행정적 결정 속에서 매일 쌓인다. 민원을 처리하는 한 문장의 어조, 투자를 심사하는 한 서류의 판단, 빗속을 걸으며 주민의 목소리를 듣는 단체장의 자세, 그 모든 것이 국민의 오늘과 내일을
2025년 정치는 시끄러웠다. 국감의 고성, 끝없는 정쟁, 책임 없는 주장들. 그러나 지방정부는 조용히 움직였고, 정치가 멈춘 날에도 정책은 국민에게 도착했다. 국민은 알고 있다. 누가 일했고, 누가 말만 했는지. 주민을 직접 찾은 단체장들 보고서가 아니라 주민 얼굴을 읽는 리더십이 올해 가장 신뢰받는 장면이었다. 청년을 붙잡는 도시들 청춘거리·창업공간·누구나가게… 도시의 운명은 청년에 달렸다는 사실을 지방정부가 먼저 이해했다. 돌봄의 완성도 전구 하나, 왕진버스 하나, 경로당 식사 한 끼. 이 작은 정책들이 삶을 지탱했다. 공모로 미래를 다시 그린 단체장들 서류 경쟁이 아니라 미래 설계 경쟁이었다. 기본소득·혁신타운·공공기관 유치가 그 증거다. 관광으로 도시 이름을 다시 쓴 지자체들 보고 싶고, 머물고 싶은 도시. 관광은 소비가 아니라 브랜드였다. 집값은 흔들렸고, AI는 불안을 키웠고, 정치는 방향을 잃었지만— 국민의 하루를 붙잡은 힘은 지방정부의 실행력이었다. 2025년 성적표는 명확하다. “정치는 요란했고, 정책은 조용히 사람을 살렸다.” 내년은 지방선거다. 국민은 이미 보고 있다. 말이 아니라 결과를. 〈월간 지방정부〉는 그 결과를 가리는 마지막 한
2026년 예산안, 영아보육의 질을 외면한 대한민국 저출산 정책의 민낯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말한다. “아이만 낳으면 국가가 키우겠다.” 하지만 이 말은 현실을 모르는 이들이 던지는 공허한 약속에 불과하다. 현장의 부모와 교사들은 안다. 지금 한국의 영아 보육 환경은 교사 1명이 만 0세 아이 3명을 동시에 돌보는 구조다. 이것은 엄마 한 명에게 세 쌍둥이를 ‘잘 키워보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한국은 아이에게 최악의 출발선을 제공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저출산 정책 실패의 결정적 증거다 2026년 교육부 예산 250억 증액, 0세반 아동수 줄이고자 국회에서 어느 소신있는 국회의원의 노력으로 예산결산특별위원회로 넘어가 있다. 그런데 영아 1:2 보육 기준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데 필요한 단 250억 원이다. 250억 원이 없다? 정말 몰라서 증액에서 제외한다면 정부는 현장을 모르는 것이고, 알면서도 뺐다면 국가가 아이의 ‘첫 1년’을 책임질 의지가 없는 것이다. 둘 중 어느 이유든 국가적 문제다. “아이를 낳으라”는 정부가 정작 아이를 맡길 어린이집 현실은 외면한다 기재부는 저출생 문제해결을 위해 증액에 주저해서는 안된다 영아 보육
국토의 지도는 단순한 선이 아니다. 그 선은 국민의 삶을 잇는 시간의 길, 삶의 축이다. 김이탁 전 국토교통부 1급 공무원은 그 길을 설계한 사람이다. 행정직 최초의 민자도로과장(2007년) 으로 발탁된 그는 ‘민자도로’라는 낯선 제도를 국가 인프라 확장의 실질적 도구로 바꿔냈다. 그 결과, 수도권 외곽순환고속도로 완공과 사패산터널 개통을 이끌어내며 출퇴근 시간을 단축시키고, 수도권 시민의 생활 동선을 새로 그렸다. 그의 이름이 걸린 고속도로는 단순한 교통망이 아니었다. 그는 제2외곽순환도로, 서울~세종 고속도로 등 대한민국의 심장을 연결하는 수도권 고속도로망 계획을 확정하며 “교통의 질이 곧 삶의 질”이라는 국가 철학을 실현했다. 김이탁의 행정은 ‘국민 중심’이었다. 그에게 길은 통행의 수단이 아니라 삶의 터전을 연결하는 사회적 혈관이었다. 그의 결단과 추진력은 도로 위의 숫자를 넘어, 국민의 하루를 바꾸고 가족의 시간을 되돌려준 정책의 실천이었다. 그는 늘 말했다. “국토의 혁신은 국민의 집을 짓는 일이고, 교통의 변화는 국민의 시간을 되돌려주는 일이다.” 지도 위에 선 하나를 긋는 대신, 그는 삶의 선(線) 을 그었다. 그 선은 오늘도 누군가의 출근길과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내년 국가 예산은 미래 성장과 포용 복지를 양축으로 삼았다.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AI를 비롯한 미래전략기술 투자 확대. 둘째, 신재생에너지와 해상풍력 등 탄소중립 산업 육성. 셋째,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 확충이다. 이 세 분야는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한 성장동력이며,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정치권이 지금부터 대비해야 할 구체적 과제다. AI와 첨단전략기술 투자는 산업 구조 전환을 가속화한다. 지방정부는 이를 중앙정부 사업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지역 대학·기업·스타트업을 연결하는 혁신 허브 구축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규제 개선과 인재 양성, 데이터 인프라 확충이 핵심이다. 에너지 전환의 동력은 신재생과 해상풍력이다. 해안권을 가진 지자체는 발전단지·항만·연계 산업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와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 중앙정부의 R&D와 인프라 지원 확대에 발맞춰, 주민 참여형 이익 공유 모델을 도입해야 지역 수용성과 지속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취약계층 복지 강화는 단순한 지출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다. 돌봄·주거·의료·교육의 빈틈을 메우는 정책은 기본 안전망을 강화하고, 복지 일자리 창출까지 이끈다. 하버드대 조지 처치(G
[지방정부티비유=티비유 영상팀]
여야가 또다시 당대표 선출을 끝내자마자 정쟁의 기류로 빠져들고 있다. 국민은 똑똑히 안다. 지금의 당대표 자리는 국민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권력 다툼의 전초전일 뿐이라는 사실을. 수십 년 동안 당대표 선출 방식은 변해왔다. 대의원 비율을 줄이고, 권리당원·여론조사를 확대한다며 “민주적 운영”을 외쳤다. 그러나 결론은 언제나 똑같았다. 국민의 민생은 뒷전이고, 여야가 서로를 향해 칼만 빼드는 정치판이었다. 존 듀이가 말했듯, “민주주의는 선거일 하루가 아니라 매일의 생활 속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지금 여야 정치권의 모습은 이 말을 정면으로 배반한다. 국민이 원하는 건 싸움 구경이 아니다. 내 삶이 달라지는 정치다. 국민 대다수는 지금 지쳐 있다. 물가가 치솟아 장바구니는 가벼워지고, 청년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노인은 고독과 빈곤에 시달린다. 지방은 인구가 빠져나가 소멸 위기. 폭염에 폭우까지. 정치가 진정 챙겨야 할 것은 바로 이런 삶의 현장이다. 국민의 분노는 단순한 불평이 아니다. 이제는 절규다. 여당 정청래 당대표에게 묻는다. “힘으로 밀어붙여 국민 목소리를 짓누르려는가? 그러다 민심은 더 크게 돌아선다.” 야당 장동혁 당대표에게 묻는다. “투쟁만
요즘 ‘갑질’이라는 단어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국회 청문회, 지방의회, 공직 사회, 기업까지 곳곳에서 위세와 오만이 드러나고 있다. 지방의회도 예외가 아니다. 의장을 끌어내고, 멱살을 잡고, 고성과 욕설이 오가는 장면이 온 나라에 생중계되었고, 국민은 실망한다. “저들이 과연 나를 대표하는가?” 이제 분명히 말할 때. 정치인은 특권층이 아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존재하며, 그 자리는 책임의 무게로 지탱되는 자리임을 기억하라. “정치인 갑질은 민주주의에 대한 폭력이다” 정치인이 가슴에 새겨야 할 다섯 문장 1.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온다. 2. 공직은 특권이 아니라 사명이다. 3. 갑이 아닌, 국민의 종이 되어야 한다. 4. 세금으로 존재하는 자리, 누구를 위해 쓰고 있는가? 5. 위는 높되, 자세는 낮게. 오늘도 누군가는 치매 환자를 돌보면서 복지 예산이 줄지 않기를, 소상공인 정책이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살아간다. 그들의 삶은 공직자의 판단 하나에 달려 있다. 정치는 국민의 삶을 설계하는 일, 그 말에는 품격이, 그 결정에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 이제는 보여주자. 권위가 아닌 태도로, 권한이 아닌 사명으로. * 8월, 다음을 위해 우리는 다시 기도
[지방정부티비유=이영애 발행인]
대한민국 헌정사상 인사청문회 제도는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 시절 도입되어 어느덧 25년의 역사를 가진 제도가 되었다. 앞으로 새 정부의 내각 구성과 주요 공직자 임명이 마무리될 때까지 이어질 청문회가 얼마나 국민들의 마음을 힘들게 할지, 이번 김민석 총리 예정자 청문회를 보며 걱정이 앞선다. 이 제도는 공직 후보자의 자질과 도덕성을 검증하여, 국민 눈높이에 맞는 인사를 선발하자는 취지로 시작되었지만, 제도의 운용이 잘못 되어 정쟁과 진영 간 갈등의 장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정권이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구조. 청문회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검증 기준의 제도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야당은 지난 3년간 너무 당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 제도 개선에 선뜻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청문회는 왜 필요한가. 공직자는 누구여야 하는가. 우리는 고위공직자의 얼굴에서 공정함과 책임감, 삶의 진정성을 보고 싶다. 그러나 지금의 청문회는 과거를 묻지 말라 하고, 국민을 가르치려 들며, 실수였다고 지나가자고 한다. 국민 고문이 목적은 아니지 않은가? 영원한 여당도, 영원한 야당도 없다. 그런데도 당장의 정략만 좇으며, 여야가 바뀌면 약속이나 한 듯 태도가 바뀌는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