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년 연속 정부가 선정한 우리나라 대표축제인 진주 남강유등축제가 글로벌육성 축제로 선정되며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해외 진출에 성공했다. 축제의 원조도시 진주는 잘 만든 축제를 통해 도시경쟁력을 키우는 것은 물론 세계 축제도시로서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연재 순서
➊ 축제의 원조도시 진주 ➋ 대한 민국을 넘어 글로벌 명품축제로 ➌ 진주남강유등축제의 우수성 ➍ 세계축제도시로 발돋움하다
축제의 원조도시
예로부터 진주는 ‘북평양 남진주’라 불릴 정도로 전통문화·예술이 뛰어난 고장으로 유명했으며 1949년 우리나라 지방종합예술제의 효시인 개천예술제가 개최된 축제의 원조(元朝)도시다. 대한민국 1호 축제인 개천예술제는 아직 축제의 개념이 없던 우리나라에서 1949년에 처음 만들어진 축제로 올해 65회째를 맞고 있다. 개천예술제는 6·25 전쟁과 1979년 10·26을 제외하고는 매년 개최돼 왔으며 특히 1964년부터 1968년까지 당시 대통령도 참석할 정도로 유명했다. 우리나라 축제의 대부분이 개천예술제를 모델로 창제되고 발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개천예술제의 프로그램에서 분리돼 특화된 대한민국 글로벌육성축제인 진주남강유등축제는 이제 진주의 대표적 축제로 발돋움했다.
진주시는 국가 1등 축제이자 글로벌 축제인 진주남강유등 축제를 비롯해 우리나라 지방 종합예술제의 효시인 개천 술제, 코리아드라마페스티벌, 진주논개제 등을 개최하는 도시로 2010년 세계축제협회(IFEA)로부터 ‘세계축제도시’로 선정되는 등 문화예술의 도시이자 세계 축제도시로서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역사성과 정체성이 뚜렷한 진주남강유등축제
진주남강유등축제는 420여 년의 유구한 역사에 기원을 두고 진주의 역사성을 브랜드화해 야간축제로 특성화했다. 진주에서 남강에 유등을 띄우는 ‘유등놀이’는 임진왜란 진주성전투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1592년 10월 충무공 김시민 장군은 3800명에 지나지 않는 적은 병력으로 진주성을 침공한 2만명의 왜군을 크게 무찔러 민족의 자존을 드높였다. 이때 당시 성 안에서는 풍등을 하늘에 띄워올리며 성 밖의 의병 등 지원군과 신호를 주고받았고, 남강에는 등불을 띄워 강을 건너는 왜군을 저지하는 군사기술로 쓰이다가 이후에는 진주성에 갇혀 있는 병사와 백성들이 멀리 두고 온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으로 이어진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축제에 쓰이는 유등은 기름으로 등을 밝히는 유등(油燈)이 아니라 강에 흐르는 유등(流燈)으로, 다른 지역의 일반 등(燈)과는 차별되며 사전에도 ‘유등놀이’는 경 상남도 진주에서 행하는 풍속의 하나로 기록돼 있다. 이런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 오늘의 물·불·빛의 진주남강유등축제로 자리 잡았다.
진주남강유등축제는 진주시 및 진주문화예술재단이 주최하고 진주남강유등축제 제전위원회가 주관해 매년 10 월 1일부터 진주성 및 남강 일원에서 7만여 개의 등(燈) 을 밝히며 본행사, 참여체험행사, 부대행사, 동반행사로 구성해 개최된다.
2000년에 처음 시작된 남강유등축제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2002년 지역특성화 축제, 2003년 문화관광 예비 축제, 2004년 육성축제, 2005년 우수축제, 2006~2010 년 최우수 축제, 2011~2013년 3년 연속 대한민국 대표축제, 2014년 대한민국 명예대표축제를 포함해 올해 또다시 대한민국 글로벌육성축제로 선정됐다. 또 세계 축제협회(IFEA) 피너클 어워즈(Pinnacle Awards)에서 금상 4개와 은상 1개, 동상 1개를 수상했고, 2010년에는 세계축제협회(IFEA)로부터 ‘세계축제도시’로 선정되며 대한민국 최고를 넘어 글로벌 축제도시로 다시 한 번 인정받았다.
진주남강유등축제가 짧은 기간 동안 눈부신 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데에는 이창희 시장과 35만 시민의 헌신과 열정,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창희 시장은 정부의 축제 일몰제로 좋은 축제가 축소되거나 정체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글로벌 축제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 진주시민의 3 분의 1 이상이 축제에 직접 참여할 정도로 애정과 관심도 뜨겁다. 이런 노력과 열정 덕분에 진주남강유등축제는 ‘진주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보고, 느끼고, 체험하고 이야기하는 축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