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

공공재정 관리,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현대 재정 국가에 부여한 국민의 명령

 

과거 국가 기능이 소극적인 질서 유지에 그쳤던 시대가 있었다. 이 시기 재정 관리는 납세자의 재산권 보호와 국고 사용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주된 관심이었다. 현대 복지국가가 등장하면서 공공재정의 기능은 크게 변했다. 재정은 규제와 함께 산업화·도시화로부터 파생되는 각종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수단이 됐다. 그 결과로 재정 규모는 크게 확대됐으며, 재정 체계나 방식은 고도로 복잡해졌다. 재원 조달 방식에도 질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조세 수입만으로는 재정 수요를 충당할 수 없게 돼 민간 차입에 대한 의존도가 커졌다. 이 같은 변화로 공공재정 관리의 초점도 다변화됐다. 단순히 민주적 통제만으로는 부족하게 된 것이다. 한정된 재원으로 더 많은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해야 했으며, 부채를 적정 수준으로 관리하는 것도 중요해졌다. 그런 점에서 현대 재정 국가에 국민이 부여한 명령은 “한정된 재원을 건전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민주적으로 배분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라”로 요약할 수 있겠다.

 

공공재정 관리의 첫 번째 원칙 :

민주성(재정민주주의)

 

민주성 혹은 재정민주주의는 전통적으로 중시돼왔던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는 왕권의 하나인 재정권의 남용을 방지하고 개인의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투쟁의 결과로 등장했다. 이후 재정민주주의의 가치는 재정 운용에 있어 민주적 통제를 위한 각종 절차적 규범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예로는 의회의 사전의결 없이는 어떠한 자금도 국고에서 인출될 수 없다는 ‘사전의결의 원칙’, 모든 수입과 지출을 빠짐없이 기록해야 한다는 ‘예산총계주의 원칙’, 회계연도를 명확히 구분해 운영해야 한다는 ‘회계연도 독립의 원칙’ 등이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절차적 규범만으로는 의회의 재정권 확보에 중요한 기여는 하지만, 실질적인 재정권 행사까지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특히 정부와 의회 간 정보의 비대칭은 의회의 재정권 행사에 가장 큰 장애 요인이 된다. 의회 스스로 필요한 정보를 생산하고 분석할 수 있는 역량이 중요한 이유다. 최근에는 대리인인 의회의 도덕적 해이와 사적 이익 추구를 어떻게 막을 것인지가 숙제이다. 각국은 내부 재정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민들의 예산 과정 참여를 확대하는 등 재정 운용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공공재정 관리의 두 번째 원칙 :

효율성(재정 성과주의)

 

효율성 가치는 현대 복지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인구 및 경제구조의 변화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인구가 고령화되면서 재정지출 수요는 급속히 증가하는 반면, 저성장구조의 고착화로 세입 여건이 악화하면서 심각한 재정압박(financial pressure)을 겪는다. 이 시기에 공공 부문의 생산성 하락은 민간 부문이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을 공공 부문이 과도하게 사용함으로써 국가 전체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떨어트리는 것으로 여겨졌다. 각국은 공기업 민영화, 정부 조직 감축 등으로 공공 부문의 지출 규모를 줄이는 한편, 정부 지출의 낭비 요인을 제거하고 공공지출의 효율성을 높임으로써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이러한 노력은 성과 중심 재정 관리를 위한 다양한 제도개혁으로 이어졌다. 개혁의 초점은 투입 중심의 점증적 예산편성 관행에서 벗어나 정책 또는 프로그램의 목표와 성과에 집중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프로그램 중심의 예산 편성 방식과 발생주의 회계 기준을 도입함으로써 프로그램의 원가관리를 강화하는 한편, 주요 재정사업에 대한 평가 기능을 강화하고 평가를 통해 생산된 정보를 상시적인 지출조정을 위한 지출심사(spending review)에 활용하고자 한다. (지출심사의 구체적 방법에 대해서는 필자의 《대한민국 공공재정론》 제5장을 참고하기 바란다.)

 

공공재정 관리의 세 번째 원칙 :

건전성(재정건전주의)

 

건전성 혹은 지속 가능성은 국가부채의 과도한 증가로 국가도 파산할 수 있으며, 채무상환의 부담을 미래 세대로 이연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는 인식이 강화되면서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양입제출(量入制出)과 균형예산 원칙(balanced budget norm)에 따라 추가적인 국채발행 없이 수입 범위 내에서 지출한다면 건전성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저성장 시대에 재정자원의 한계에 부딪힌 현대 복지국가들이 적자재정의 늪에서 벗어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지출 총량 자체를 규율해야 하지만 인구 고령화와 복지 수요 증가로 지출을 감축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잘못하면 미래세대를 위한 투자지출을 줄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미 높아진 조세 부담으로 추가적인 증세도 어렵다. 결국 적자예산 편성이 일상화되고 국가채무는 누적적으로 증가하는 악순환에 빠지고 만다. 물론 국가부채의 증가가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현대 신용경제 체제에서 부채는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위한 중요한 수단(leverage)이기도 하다.
차입 재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국부를 창출할 수 있다면, 국가채무가 증가하더라도 지속 가능성에는 문제가 없게 된다. 그러나 부채가 적정 수준을 초과하면 경제 위기 시 대응력이 약화할 수 있으며, 지대추구나 투기적 용도에 활용됨으로써 경제성장의 선순환 고리가 끊기면 재정의 지속가능성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공공재정 관리의 핵심은 세 원칙 간 조화와 균형

 

공공재정 관리의 세 원칙인 민주성과 효율성, 건전성은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하기도 하지만, 서로 충돌하기도 한다.

 

민주성이 잘 작동해 정부재정운용에 대한 견제가 효과적으로 이뤄져야만 재정이 효율적이며 건전하게 잘 관리될 수 있다. 재정의 건전성 확보를 위해 지출 한도(spending caps)를 설정하면, 한도 내에서 지출구조조정이 촉진돼 재정사업의 효율성이 강화될 수 있다. 특정 가치, 예를 들어 건전성이 절대적인 가치가 돼서도 안 된다. 일시적으로 건전성이 악화하더라도 효율성(성장)이 뒷받침되면 재정은 지속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건전성과 효율성이 확보되더라도 분배 악화로 사회분열이 심화한다면 민주성의 가치는 크게 훼손될 수 있다. 반대로 민주성 가치가 과잉 추구될 경우 효율성과 건전성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정된 재원이 미래를 위한 투자지출보다는 투표권을 가진 현세대의 소비지출에 집중된다면 재정의 지속 가능성에 문제가 발생한다. 따라서 공공재정 관리의 세 원칙은 조화롭고 균형적으로 추구돼야 한다.

 

현대 재정 국가에서 예산은 그것이 정치 과정이든 분석 과정이든 민주성·효율성·건전성이라는 3가지 가치 사이의 황금률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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